지난 주 몇 년 만에 장마다운 장마를 보낸 남녘의 하늘은 이제 연일 땡볕을 쏘아 대고 있다. '살인적인 무더위'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터라 달랑 두 식구임에도 아내는 땟거리 챙기는 게 귀찮다며 무얼 만들까를 고민하는 눈치다.
한여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7월 밥상의 키포인트는 텃밭에서 기른 푸성귀 몇 가지를 뚝 따와서 먹는 맛이 아닐까? 자기 손으로 농사 지은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선물인 셈. 매일 푸성귀만 먹을 수는 없어서 가끔 '남의 살'도 먹어 주곤 한다. 아래 음식 중에서 돈 들인 것은 문어랑 닭뿐일 정도로 여름철엔 모든 먹거리를 자급자족 한다.
비빔국수
여름철에는 아무래도 물국수보다 비빔국수가 땡긴다. 매콤달콤하게 양념장을 만들고 텃밭에서 기른 오이, 당근, 깻잎, 양파는 송송 채썰어 둔다. 양배추는 지난 해 가을파종을 늦게 하는 바람에 발아가 늦어져 결구가 제대로 된 게 없었는데 운좋게 한 통을 수확할 수 있었다. 우리 집 고추장이 유난히 매운 탓에 비빔국수의 매운 강도가 먹으면 먹을수록 진하지만 오랫만에 먹으니 후끈 달아오른다.
감자전
감자 농사가 너무 흥해서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등장하는 우리 집 대표 막걸리 안주이기도 하다. 어중간한 감자 5~6개 껍질 벗기면 후라이팬에 딱 두 쪽 부칠 분량이 나온다. 감자전을 할 때는 믹서기에 갈지 말고 좀 힘들어도 강판에 갈아야 제맛이다. 물이 생기면 쭉 따라 내고 소금은 티스푼으로 8부 정도 넣으면 간이 대충 맞는 것 같다. 예전에는 밥숟갈로 밀가루 한 스푼 넣고 각종 야채도 다져 넣곤 했는데 요즘은 부추, 감자, 소금만 넣는다. 이 방법이 감자 자체의 맛이 살아나서 더 좋은 것 같다.
문어숙회
우리가 사는 면의 중심가(?)를 지나다 생물 파는 할머니가 계시기에 사 온 문어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물을 세 마리 이만오천 원에 샀으니 그저라 생각하고 업어 왔다. 문어도 해산물이므로 소금으로 문지르고 손질하는 것부터 삶는 것까지 모두 나의 몫이다. 문어는 금방 삶아서 김이 폴폴 날 때 썰어서 기름장에 살짝 찍어 먹는 것이 제일 맛나는 것 같다. 먹다가 남으면 냉동한 뒤, 나중에 얇게 썰어 먹어도 좋다.
닭볶음탕
가끔씩 '남의 살'도 이렇게 먹어 준다. 우리 집 고춧가루와 고추장이 좀 매운 편이라 여기서 새빨간 비쥬얼에 욕심내다가는 속에 불나서 119 불러야 한다^^. 닭은 한 번 씻어서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고추장, 고춧가루, 매실청, 다진 마늘, 후춧가루로 양념장을 만들어 붓는다. 손질해서 썰어둔 감자, 당근과 함께 긴시간을 들여 졸이다가 나중에 양파, 고추, 대파를 넣고 숨을 죽인다. 감자를 좀 많이 넣었더니 닭보다 감자가 주연 같다.^^ 소주 안주로도 그만이다. 닭고기와 감자 등 건더기 건져서 먹는 것으로 한 끼 때우고, 먹고 남은 양념에 김치와 깻잎 송송 썰어 넣고 김가루를 잘게 부숴 넣어 볶음밥 해 먹으면 또 한 끼 해결된다. 그야말로 싸게 여러 끼 때울 수 있는 보양식이다.
죽순회
울산에 있을 때는 왕대나무 죽순 꺽어서 가마솥에 잔뜩 삶은 후 장아찌도 담곤 했었는데, 올해는 때를 놓쳐 버렸다. 진주에서 아내의 큰어머니께서 멧돼지가 훓고 간 후 조금 남겨 둔 것을 삶아서 챙겨 주셨는데, 조금이라도 맛본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