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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내리는 비는 여름날 폭우 같고 우는 바람은 태풍 같다. 마당 이곳저곳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창틀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은 나의 적막함을 깨뜨린다. 날이 날인지라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제까지만 해도 며칠 화창한 봄날에 취해서인지 주말에 폭풍을 동반한 비가 내릴 거라는 기상청 예보를 선뜻 믿기 힘들었다. 오늘 이렇게 화창한데, 내일 태풍에 버금가는 15m/sec의 바람이 분다는 걸...
▲ 사나운 바람이 걱정스러워 한밤중에 나가본 고추밭
오늘 오전, 잔뜩 흐린 하늘을 보면서도 긴가민가 하며 어제 옮겨심은 고추와 토마토 모종 줄매기 작업을 했다. 보통은 고추 모종의 경우 옮겨심은 뒤 20일 정도 뒤에 줄을 매준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작물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끼게 만들어 더 빨리 뿌리내리게 하기 위함이다. 물론 보통의 봄날씨일 때 이야기. 태풍 같은 비바람이 몰아친다면 뿌리내리지 못한 모종이 쓰러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적막한 밤. 우당탕거리는 소리, 창틀에 울어대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기상청 예보를 믿은 보람을 만끽한다. 삶이 언제나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보람을 느끼며 행복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에는 지금 세상은 모든 것들이 내 삶과 너무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이 순간에도 한쪽에선 매듭지어지지 않은 죽음에 울고 한쪽에선 끝없는 재앙에 울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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