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리좀:내재성, 혹은 외부의 사유 - (2)
2. 리좀의 몇 가지 특징들
1) 접속(connexion)의 원리
“리좀은 어떤 다른 점과도 접속될 수 있고 접속되어야 한다.”(I, 11) 따라서 접속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은 원리상 모든 곳이다. 또한 접속되는 항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접속의 지점이 달라지는 것 역시 전체의 의미를 변용시킨다.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의 행보와 접속하는 붉은 깃발은 접속의 상이한 양상과 결과, 그리고 접속의 지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93쪽)는 걸 보여준다.
cf. 어쩌면, 『모던 타임즈』의 찰리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은 접속의 연속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여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이나 안정과 같은 접속의 목적지를 갖지 않고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혹은 절망하지 않고 유쾌하게 살 수 있는 길은? 가능하다면 어떻게?
(1) 이접(離接 disjonction, soit...soit..., 이것이든 저것이든, 이것이냐 저것이냐) : A냐 B냐를 선택하는 것. 이항적 선택으로서 호오(好惡)의 가치판단을 포함하고 있다.
① 배타적(exclusive) 이접(이것이냐 저것이냐)
② 포함적(inclusive) 이접(이것이든 저것이든)
(2) 통접(統接 conjonction, donc.., 그리하여..) :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어떤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 것. A와 B는 물론 C, D등등이 모여 어떤 하나로 귀결되는 것. 예를 들면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등의 기관이 모여 국가장치를 구성하는 경우나 여러 장들이 모여 하나의 책이 되는 것 등이다.
① 유기적 통접 : 각각이 부분적인 기관이 되어 하나의 유기체 내지 통일적 전체로 통합되는 것.
② 흐름으로의 통접 :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이 되는 경우(통화량).
(3) 접속(...et..., ...와...) : 와(et, und, and) 로 연결되는 모든 경우를 지칭하는데, A와 B가 등위적으로 결합하여 A도 B도 아닌 제3의 새로운 무언가를 생성. 입과 식도가 접속하여 먹는 기계가 된다던가 하는 것. 여기에는 어떤 귀결점도 없고 호오의 선별도 없다.
이접과 통접은 관련된 항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몰고 가지만, 접속은 두 항이 등가적으로 만나서 제3의 것, 새로운 무언가를 생성한다. 귀결점도 없고, 호오(好惡)의 선별도 없음. 따라서 접속이 리좀의 원리.
2) 이질성의 원리
* 리좀은 이질적인 모든 것에 대해 새로운 접속 가능성을 허용한다는 의미. 맑스의 텍스트는 헤겔과 레닌과 에피쿠로스, 구조주의 등과 접속한다. 맑스의 사유가 다양한 외부와 뒤섞이며 새로운 사유의 선을 증식하는 것이다. 어떤 사유가 다양하고 이질적인 외부와 서로 뒤섞여 새로운 사유의 선들이 여러 가지 방향으로 증식될 때, 그 사유는 ‘리좀적 증식’을 한다고 할 수 있다.
3) 다양성(multiplicité)의 원리
* 차이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 동일자의 운동에 포섭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 곧 차이가 어떤 하나의 중심, ‘일자’(the one)로 포섭되거나 동일화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양성.
* 다양성의 종류들 :
① 수목형 다양성, 사이비 다양성 : 종류가 늘거나 무언가 추가되면 ‘다양성’이 증가하기는 하지만, 전체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런 종류의 다양성
② 리좀적 다양성 : 어떤 하나의 척도, 하나의 원리로 환원되지 않는 이질적인 것의 집합, 따라서 하나가 추가되는 것이 전체의 의미를 크게 다르게 만드는 다양성. “배치란 접속되는 항들에 따라 그 성질과 차원수가 달라지는 다양체.”(I,12) 이런 점에서 “다양체는 외부에 의해 정의된다.”(I, 13) 즉 그것은 어떤 다양체에 다른 것이 접속되면서 그 성질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탈주선 내지 탈영토화의 선에 의해 정의된다. --> 접속되는 항에 따라 차원수가 달라진다(프랙탈 기하학).
cf. 반면, 수목형의 다양체는 새로 출현한 모든 것을 이미 그려진 수형도 내부에 위치지음. 따라서 새로운 것이 추가되어도 분류표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음.
4) 비의미적인(asignifiante, 비기표적인) 단절의 원리
들뢰즈/가타리는 ‘의미적인(signifiante, 기표적인)’과 ‘비의미적인’을, ‘절단(coupure)’과 ‘단절(rupture)’을 대비
① 절단 : 어떤 대상이나 흐름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자르는 것. ‘의미적인’과 함께 사용. 통상 언어적인 ‘분절’은 ‘의미적인/기표적인 절단’의 일종임.
② 단절 : 어떤 주어진 선과 연을 끊는 것이고, 그 선에서 벗어나는 것, 그 선 안에서 만들어지는 의미화의 계열에서 벗어나는 것. ex. 노다지 / no touch
→ 소리의 절단은 의미적인/기표적인 기호를 만드는데, 단절은 기존의 기표적인 계열에서 벗어나 다른 계열의 일부가 됨. 따라서 ‘탈영토화’ 내지 ‘탈주’와 상관적인 개념으로 사용.
* 이러한 단절은 언어와 비언어, 동물과 식물 등 이질적인 지층( ex. 말벌과 오르키데, 고양이와 바이러스, 한국어와 영어 등) 사이에서 벌어짐. 저자들은 두 개의 지층 간에 탈영토화의 선을 그리는 이러한 비기표적 단절을 두 지층간의 평행론이라고 말한다. 가령 ‘개’라는 개념은 짖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와 다른 지층을 이루지만, 동시에 그것은 짖는 개와 상응하는 개념이란 점에서 평행하다. 평행론은 이처럼 ‘만나지 않는다’와 ‘상응한다’를 동시에 내포함.
5) 지도그리기(cartographie)와 전사술(décalcomanie)
모상과 모방, 재현과 재생산과는 반대되는 개념. 들뢰즈/가타리는 리좀이란 “모상이 아니라 지도”라고 한다. 여기서 지도는 단순히 길이나 지표의 형상을 정확히 재현하는 모상적 지도보다는, 삶의 길을 제시하고 사유의 경로를 표시하는 다이어그램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동의 다이어그램으로서 지도!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동과 삶의 길/방법(way)이 접속되고 분기하는 양상이고, 그 경로들의 관계이며, 그 경로를 가는데 만나게 될 장애물이나 위험물의 표시다. 여기서 선들의 접속으로 구성되는 ‘다양체로서 리좀’이란 개념이 등장. ⇒현실에 따라 지도를 그리지만, 그려지는 지도에 따라 변형되는 현실.
복제와 원본, 기계와 창조성의 전통적 이분법 ― 조립 내지 콜라주라는 새로운 구성 원리 안에서 어떠한 요소가 복제인가 아닌가, 모상인가 아닌가는 별 의미가 없다. 복제물, 모상들의 조립은 전혀 다른 것이 되기 때문이다. 복제들 중에서 원본이 등장하기도 한다. cf. 「아이로봇」
들뢰즈/가타리는 지도그리기와 전사술을 통해 현실에 따라 지도를 그리지만, 그려지는 지도에 따라 변형되는 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임. 그들은 『천의 고원』을 통해 우리들이 지도제작법을 배우고,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지도를, 행동과 실천의 지도를 그릴 수 있게 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삶을 둘러싸고 그것을 포섭하는 거대한 몰적(molaire) 선분성의 선들(관료제, 군중화, 리더쉽, 파시즘화)과 거기서 갈라져 나가는 유연한 분자적(moleculaire) 선분성의 선들의 배치를 그려주는 잠재적 지도(-->미시정치학, 분열분석). ‘몰적’ 방식에서 ‘분자적’ 방식에로의 전환. 몰적 양태가 영토성을 지녔다면, 분자적 양태는 다원적이고 유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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