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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소국’ 설움 씻은 ‘해양대국’의 위용 문명과 바다 8. 포르투갈 : 삼대륙에 걸친 해상제국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1 16
포르투갈이 유럽 해상팽창의 서막을 연 것은 십자군 출신의 위험한 ‘정복파’ 귀족들을 나라밖으로 내보내야 했던 사정과 이즈음 형성된 상인층의 이해가 맞물린 결과다. 또한 포르투갈이 서구와 이슬람·지중해와 대서양의 ‘경계’에 있는 나라라는 점도 짚어보아야 한다 흔히 역사가들은 이 점을 두고 ‘미스터리’ 혹은 ‘기적’이라고 불렀다. 설명하기 힘들다고 해서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이 별로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 나라의 급격한 팽창에는 분명 특기할 만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은 나라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많은 인구 유출이 불가피했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의 해외 유출 인구는 1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것이며, 남자 인구로만 본다면 35%의 비중이었다. 또 외국에 나간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사망했는데, 인구 대비 비율을 계산해 보면 각 세대마다 남자 인구의 7~10%가 희생된 셈이다. 이런 정도로 큰 희생을 치러가며 해외 사업을 벌인 경우는 역사상 흔치 않다.
포르투갈 사회의 특징은 ‘경계’ 혹은 ‘변경’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나라는 우선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의 경계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므로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기독교권의 영토 회복을 완수한다는 강력한 종교·군사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권의 발달된 문화를 흡수하였고, 금과 향신료 같은 아프리카 산물을 교역하면서 부를 쌓아 갔다. 이슬람권에 대한 공격이 국가의 기본 이데올로기라고 하지만 놀랍게도 리스본 시내에는 이전부터 내려오던 이슬람 구역이 존재했다. 이런 편협성과 관용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상태가 나중에 아시아의 고아나 말라카에서 한편으로 지배와 정복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교역과 전도에도 주력하는 모순적인 태도로 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포르투갈인들이 외지에서 기꺼이 현지인들과 결혼하여 정착하는 태도 역시 일찍부터 이민족 문화와 접촉한 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포르투갈은 또 대서양 세계와 지중해 세계의 경계에 위치해 있었다. 이 나라의 해외 팽창은 지중해권의 지원을 받아 대서양으로 발전해 나간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본디 중세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은 지중해권이었으며, 유럽의 경제적 무게중심은 오랫동안 이탈리아에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 부의 원천 가운데 하나는 이탈리아 상인들이 주축을 이루는 레반트(동부 지중해 지역) 교역이었다. 그런데 15세기부터 터키의 힘이 강대해지면서 동지중해 사업 전망이 어두워졌고 그 결과 이탈리아의 대상인들은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제노바를 비롯한 이탈리아 상업 도시의 자본과 인력이 이베리아 반도로 많이 유입되었다(이탈리아 출신이면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에서 일할 기회를 찾던 콜럼버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므로 포르투갈의 해외 팽창은 분명 매우 독특한 현상이지만 사실 그것은 중세 이래 준비된 것이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혹은 남부 독일과 같은 기성세력이 먼저 해외 팽창에 나서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해외 팽창은 모험적 성격이 큰 사업이다. 이미 다른 분야에서 튼튼한 사업 기반을 갖추고 있는 상인들로서는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해외탐험을 스스로 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냐와 같은 주변부 국가들이 힘들고 위험한 사업을 한참 진행하여서 어느 정도 사업이 안정되고 큰 이윤 가능성이 보일 때 영국이나 네덜란드 같은 중심부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달려들었던 것이다. 해외로 과감하게 팽창해 나가는 일처럼, 시대의 한계를 돌파하는 원동력은 대개 중심권보다는 변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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