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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문화예술

밥 딜런, 양희은 그리고 이명박

by 내오랜꿈 2007.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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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양희은 그리고 이명박 

<한겨레21> 제683호 2007년11월01일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영웅의 이미지를 조작해서 대중에게 팔아먹는 자들을 떠올리다 

대선이 코앞이다. 웬만큼 굵직굵직한 진영의 후보들은 다 확정된 모양이다. 그 후보들 중 아무리 봐도 이상한 사람이 있다. 의혹도 많고 그 의혹이 해명된 것도 아닌데 지지율이 당최 움직이지 않는다. 부동의 1위다. 그 후보를 지지하는 어른들에게 이런저런 의혹이 있지 않느냐, 얘기해봐도 요지부동이다. “지금 정부보다는 낫지” 정도는 양반이다. 아마도 한 드라마를 통해 신화화된 그의 이미지가 지난해의 황우석처럼이나 단단히 박혀 있는 듯싶다. 성장과 발전의 화신이고, 따라서 그가 집권하면 ‘사소한’ 부도덕이나 비리를 무릅쓰고 당장 대한민국이 1970년대처럼 쭉쭉 고도성장의 길을 걸을 거라고, 그분들은 굳게 믿어 의심치 않나 보다. 

“난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니라 목동” 

△ 밥 딜런은 저항적 포크가수의 이미지에서 탈출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가족과 음악이지, 시대의 선봉에 서는 게 아니었다.

1960년대의 밥 딜런은 이미 저항의 상징처럼 여겨져 있었다. 그의 가사들은 시위대의 피켓에 인용되기 일쑤였고, 그의 노래는 집회 현장에서 울려퍼지며 새로운 시대로 가는 송가처럼 불렸다. 지금도 밥 딜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저항의 음유시인이다. 그러나 당시의 밥 딜런은 그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나 보다. 자서전인 <바람만이 아는 대답>에서 밥 딜런은 당시를 분노에 찬 태도로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내가 한 일이라곤 새로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강하게 표현하는 노래를 부른 것뿐이었다. 나는 내가 대변하게 되어 있다는 세대와 공통적인 것이 별로 없고 잘 알지도 못했다. 불과 10년 전에 고향을 떠났고 누구에게도 큰 소리로 내 의견을 외친 일이 없었다. 앞날의 내 운명은 삶이 인도하는 대로 가게 되어 있었고, 무슨 문명을 대표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솔직히 이런 상황이었다. 나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보다는 목동에 가까웠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목동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아니,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게끔 강요하고 몰아갔다. 그래서 밥 딜런은 밤마다 집 주변으로 몰려들고, 심지어 집으로 ‘침입하는’ 히피들을 ‘퇴치하기’ 위해 라이플총을 집에 둬야 했다. 결국 그들이 집 주변을 둘러싸고 “시대의 양심으로서의 임무를 회피하지 말라”며 횃불 시위를 벌였을 때, 그는 도망치듯 이사가야 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통곡의 벽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자신을 시온주의자로 포장했고, 컨트리 음반을 내며 저항적 포크가수의 이미지에서 탈출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가족과 음악이었지, 시대의 선봉에 서는 게 아니었다.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양희은이 재학 중이었던 서강대에서 집회가 열릴 때마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들이 나타나 그녀를 어디엔가 격리시켰다고 한다. 학교에서 축제가 열리고 양희은이 무대에 오르면 역시 뒤편에서 ‘맨 인 블랙’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학생들 앞에서 <아침이슬>을 못 부르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양희은은 학교 무대에서 <아침이슬>을 부르지 않았다. 그러면 학생들은 그 자리에 드러누워 <아침이슬>을 부르라고 요구했다. 양희은은 70년대를 회상할 때마다, 자신이 <아침이슬>을 부른 건 그 노래가 좋아서였지 다른 뜻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 노래를 만든 김민기도 마찬가지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은 투사가 아닌, 뮤지션이라는 요지의 얘기를 여러 차례 했다. 

그들을 그런 위치에 올려놓은 건 대중이었다. 대중이란 언제나 신화를 필요로 한다. 신화의 주인공인 영웅을 필요로 한다. 현대 사회에서 신화와 영웅을 만드는 건 매스미디어다. 왜 미디어는 이미지를 조작하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영웅담을 그럴싸하게 잘 풀어놓는 사람이 저잣거리의 인기 이야기꾼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 조작으로 매스미디어가 이익을 취하고 기득권을 지키려 할 때 문제가 생긴다. 밥 딜런으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본 곳은 어디였을까. 그의 집까지 찾아가 횃불 시위를 벌였던 군중들? 아니면 그들에 의해 본의 아니게 영웅으로 추대된 밥 딜런? 그렇지 않다. 그의 음반을 찍어 팔았던 레코드사와 사소한 말 한마디를 무슨 경전처럼 취급했던 언론이다. 그에 비하면 김민기나 양희은의 시대야 이 땅의 음악 마케팅이 그리 영민하지 않았던 시기였으니 누구 하나 큰 이익을 본 사람은 없었겠지만. 아, 그들의 음반은 판매금지 조치를 당했으니 이익을 보려 해도 볼 수가 없었으려나. 

조작된 이미지는 승리를 부르는가 

다시 한국 대선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이미지 조작이야 사실 이번 대선만의 일은 아니다. 김대중에게 ‘DJ와 함께 춤을’이란 노래가 없었다면 선거 판세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노무현에게 ‘기타 치는 대통령’ 같은 감성 코드가 없었다면 ‘노풍’이 그리 거세게 불었을까. 이 경우에는 ‘조작’이라는 거센 단어 대신 ‘컨트롤’ 정도의 순한 단어가 무방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저 부동의 1위 후보의 경우는 단언컨대 조작이라는 말을 써도 거리낄 필요가 없어 보인다. 보수언론에서 거의 올인하다시피 허물은 덮고 장점이라기보다는 위험 요소마저도 모두 입에 침을 발라가며 미화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를 덮고 있는 조작된 이미지가 두려운 건 그 때문이다. 밥 딜런이 그의 지지자들을 향해 엽총까지 쏘고 이사를 다니는 동안 음반사는 앉아서 돈다발을 셌다. 이명박을 둘러싼 이미지 조작이 대선 승리로 실현되는 날 가장 큰 소리로 만세를 부르는 건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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