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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의 종언 논쟁 2] - 근대문학 종언론은 상상 혹은 소동일 뿐 / 최원식

by 내오랜꿈 2007.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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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 종언론은 상상 혹은 소동일 뿐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나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0 26 


» 근대문학 종언론은 상상 혹은 소동일 뿐
우리시대 지식 논쟁 / 

2. 끝나지 않았다 

지난 주 문학평론가 조영일씨는 근대문학의 특수한 성격을 부각하면서, 이 시대에 그 특수성이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풀어 말하자면, 가라타니 고진(일본 비평가, 1941~)은 근대문학은 ‘공감’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하나로 만들어 ‘네이션’(국민국가)을 형성케 하는 매체라고 했는데, 현재 한국사회의 문학은 그런 특별한 중요성이나 가치를 담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조씨는 작가적 경험·통찰이 아니라 ‘문예창작과’라는 창작코스를 통해 문학이 생산되고 있는 점이나 비평의 경우 거의 대부분 국문과 출신으로 구성되고 있는 점 등을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보기로 들었다. 

그는 사정이 이럴진대, 우리의 문학시스템은 근대문학의 특수성을 일반적인 것으로 옹호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시스템 역시 붕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붙였다. 

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이런 주장을 ‘신판 해소론’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가라타니가 근대문학종언론을 확정한 ‘한국문학의 종언’은 일종의 상상에 가깝다고 했다. 가라타니는 1990년대 만났던 한국 문예비평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떼었다고 했으나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씨를 제외하곤 문학을 떠난 비평가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고진이 나아가고 있는 문학 바깥의 실천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근대문학이 정말로 끝났다면 진정한 의미의 저항도 끝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한국 문학계의 논란이 좀체 수그러들지를 않는다. 이 기이한 열(熱)이 과연 우리 몸으로부터 내발한 것인지 의심스런 구석도 없지 않은데, 이처럼 지속될 때는 그저 상상에 의한 헛열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겠다. 상상이 곧잘 현실로 전화하기도 하매, 우선 이 소동의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원래 “2003년 10월, 긴키대학 국제인문과학연구소 부속 오사카 칼리지에서 행한 연속강연의 기록에 기초하고 있다.”(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06, 86쪽) 강연원고를 “전면 수정”하여 이듬해 <와세다문학>(2004년 5월호)에 발표하고, 이를 다시 <근대문학의 종언>(2005)에 수록했던 것이다. 가라타니는 요즘 한국에서 바로바로 소개되곤 하는데 이 글도 ‘근대문학의 종말’이란 제목으로 <문학동네> 2004년 겨울호에 역재(譯載)된 이후, 논란의 덕택인지 책도 2006년에 번역되었다. 다시 확인하건대, 이 글의 모태는 일본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록이다. 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말의 자의성, 더구나 학생 대상 강연이 지니게 마련인 어떤 직정성(直情性)을 염두에 두더라도 일본에서는 잠잠한 근대문학종언론이 왜 한국에서는 이처럼 ‘소문난 잔치판’이 되었는지 난감한 바 없지 않다. 

곳곳에 빛나는 통찰들이 박혀 있긴 하지만 이 글은 전체적으로 보아서 진지한 독서를 요구하는 일류의 평론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진지한 학구 뒤, 그 휴식의 시간에 놀리는 경쾌한 두뇌회전에 가까운 탓인지, 강연의 어조도 시종일관 반어적이다. 이는 통념에 물든 학생들의 의식에 충격을 가해 그 사유를 자유로이 풀어놓으려는 가라타니식 수사학의 발로일 터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과 달리
문학 떠난 한국 문예비평가들 없어
잘못된 풍문만이 사실로 부풀려진 것
징후는 있지만 ‘종언’ 단정은 일러
 

우선 그의 주장을 한번 따라가 보자. “소설 또는 소설가가 중요했던 시대”로 대변되는 “근대문학이 끝났다는 것”(44쪽), 다시 말하면 혁명정치의 보수화에 대항하여 “영구혁명을 담당했”(45쪽)던 근대문학이 이제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 이 글의 골자다. 더 쉽게 풀면, “네이션 형성의 기반”(62쪽)인 동시에 ‘네이션 이후’를 치열하게 모색한 근대문학이 조건의 변화 속에서 그 도덕적 과제로부터 해방되어 이제 “그저 오락이 되”(53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징후를 1960년대의 프랑스, ‘에크리튀르’(글쓰기)의 대두에서 읽어낸다. “그들은 사르트르처럼 소설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도리어 그것을 부정하고 그 대신에 사르트르가 ‘문학’으로 서술했던 것을 에크리튀르라는 개념으로 바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46쪽) 재미있는 지적이다. “대중문화가 좀 더 빨리 발전”(47쪽)한 미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이 현상이 진행되었는데, “작가가 대학의 창작 코스에서 나오”(47쪽)는 것이 중요한 징표라는 주장이다. 드디어 그 바이러스는 일본에 도착한다. 그리하여 하루키의 횡행 속에 일본 “근대문학은 1980년대에 끝났다”(46쪽)고 선고한다.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문학의 위의(威儀·위엄있는 모양)가 현저하게 쇠퇴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상에서 펼친 그의 파악이 크게 새삼스런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런데 한국으로 이동하면서 종언론은 감전(感電)된다. “그러나 내가 근대문학의 종언을 정말 실감한 것은 한국에서 문학이 급격히 영향력을 잃어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충격이었습니다.”(48쪽) 이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는 1990년대에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문학자들과 교유하면서 ‘일본 문학은 죽었어도 한국 문학은 살아 있다’고 한국문학에 대한 신뢰를 표명한 바 있는데, “1990년대 말경부터 문학의 쇠퇴가 급속하게 전개되었다”(49쪽)는 소식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그 중요한 제보자가 김종철(영남대 교수·<녹생평론> 발행인)이다. 문학을 떠나 생태운동에 투신한 그에게 그 이유를 묻자, “언제부터인가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어 버”(49쪽)려서 그만두었다는 대답에 가라타니는 “동감을 표시”한다. 김종철이 전해준 이 소식은 다른 소문으로 확정된다. “그 후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1990년대에 만났던 한국의 문예비평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떼었다는 것입니다.”(49쪽) “나는 한국에서 그와 같은 사태가 이렇게 빨리 진전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문학의 종언은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50쪽) 

대학 강연록으로 출발한 종언론
일본선 잠잠한데 한국선 들썩들썩
민족문학 해체 부추기는
이름만 바꾼 ‘신판 프로문학 해소론’
 

근대문학종언론을 확정한 ‘한국문학의 종언’이 풍문에서 부풀려진 일종의 상상에 가깝다는 점이야말로 놀랍다. 우선 그가 교유한 한국의 평론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떼었다는 지적은 아무리 수사학이라도 왜곡에 가깝다. 아마 그중에는 동아시아론에 참석해 온 나도 포함된 듯싶은데, 비평활동을 게을리한 것을 탓하면 할말이 없지만 내 자신 문학에서 아주 손을 뗀 적은 없다. 이는 내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터인데, 내가 알기론 김종철을 제외하고 문학을 떠난 비평가는 없다. 가라타니가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나라 문학사정에 대해서 그것도 그저 소문에 의지해서 어떻게 이처럼 단정할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닌가? 문학의 현장, 일본을 이탈한 가라타니가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해 한국을 동원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이런 대세에 대한 투항을 고무하는 것은 아니다. “근대문학이 끝났다고 해도 우리를 움직이고 있는 자본주의와 국가의 운동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한복판에서 대항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점에 관해 나는 더는 문학에 아무것도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다.”(86쪽) 문학에 대한 자본의 포섭이 날로 강화되는 현실에서 문학 바깥에서 저항을 조직할 수밖에 없는 그의 곤경을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근대문학이 정말로 끝났다면 진정한 의미의 저항도 끝났기 때문이다. 근대문학 종언 이후의 저항, 그것도 텍스트 바깥의 저항이란 비관주의자의 자기위안으로 떨어지기 십상이 아닐까? 

일본의 변혁 가능성에 대한 절망 또는 체념에 기초한 그의 근대문학종언론이란 의상을 갈아입고 다시 나타난 프로문학해소론이다.
 한국으로부터 전해진 풍문을 통해 완성된 신판 해소론이 다시 한국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기이한 형국이 가엾다. 요컨대 종언론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그 후신 민족문학작가회의, 그리고 창비가 주도한 한국의 민족문학운동 또는 민중문학운동의 해체를 촉진하는 나팔로 활용되고 있으니, 종언론을 둘러싼 저간의 소동이란 가라타니를 빙자한 신판 해소론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요즘 한국문학이 종언론을 싱싱하게 배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확실히 한국 문학은 종언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다른 세상을 꿈꾸고 그곳으로 가는 통로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근대문학’으로부터 ‘가비얍게’ 이탈하는 경향이 처처에 출몰한다. 

» 최원식 교수
이 사태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이탈을 축복하면서 또는 저주하면서 문학의 집에서 가출하는 것이 능사인가? 그 쇠퇴의 원인을 궁구하고 극복을 위해 함께 토의하는 것이 현대라는 노예선에 동승한 문학인의 자세일 것이다. 더구나 세계사적 모순의 결절점인 한반도 분단체제의 변경이 목하 진행되는 이 역사적 고비에서임에랴. 

최원식 인하대 교수 겸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최원식 교수는 1949년생으로 한국 근·현대 소설사 연구를 주로 해왔습니다. 현재는 동아시아 맥락속의 한국학 연구 방법론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대표 저서로 <문학의 귀환>(2001) <한국 계몽주의 문학사론>(2002)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1997)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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