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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역사소설은 “일종의 도피”

by 내오랜꿈 2007.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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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김훈의 역사소설은 “일종의 도피”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출처:<뉴스메이커> 747호 2007 10/30 

평론가들의 지적, 현실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 한 단계 걸러서 이야기 전개


베스트셀러 작가로 입지를 굳힌 작가 김훈.


<칼의 노래>(생각의나무)를 시작으로 <현의 노래>(생각의나무) 그리고 <남한산성>(학고재)까지 김훈의 역사소설이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남한산성은 30~40대 남성 독자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소개될 정도다. 여기저기서 한국소설의 위기라는 소리가 나오지만, 김훈은 이런 한탄에서 비켜나 있다. 

이런 기현상에 대해 평론계는 김훈에 관한 여러 가지 담론을 내놓고 있다. 특히 계간지 ‘창작과비평’과 ‘문학의문학’ 가을호는 김훈의 역사소설 비평을 동시에 내놓아 화제가 됐다. 창작과비평은 문학평론가 김영찬씨의 ‘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이라는 평론을 실었고, 문학의문학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씨의 ‘김훈 소설, 혹은 그 이마고에 관하여’라는 글을 담았다. 두 평론은 김훈의 역사소설과 작가 김훈에 대한 장점과 한계점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point 1 김훈의 역사소설이 사랑받는 이유

‘김훈의 소설에서, 전쟁이란 그가 생각하는 세상의 됨됨이를 축약해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알레고리다. … 따라서 그의 소설은 역사소설이라는 외양을 하곤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역사의 옷을 빌려 (작가가 생각하는) 세상의 이치와 자아의 자리를 되새기는 자의식적 소설이다. … 따라서 사실은 이렇다. 그것은 모두 ‘세상의 길’ 위에 선 ‘나’의 이야기다.’(‘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중에서)

‘역사는 오늘의 삶과 자기 정체성을 되비쳐 볼 수 있는 유력한 준거틀이다. 소설가들이 역사를 빌려오는 것은 얼크러진 현실의 복잡한 정황 때문에 그것을 전체로서 그러쥐고 통찰하기 어려울 때다. … 1인칭 서술자 이순신의 목소리는 실은 김훈 자신의 목소리다. 김훈은 교묘하게 복화술을 한다. 이순신이 모멸과 치욕의 현실 앞에서 드러내는 자의식은 실은 김훈 자신의 자의식이다.’(‘김훈 소설, 혹은 그 이마고에 관하여’ 중에서)

김영찬씨와 장석주씨는 김훈이 역사소설에 매진하는 이유를 ‘도피’라고 설명한다. 김영찬씨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불편하니까,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한 단계 걸러주는 것이다”면서 “독자는 역사소설을 통해 현실과의 거리감을 느끼면서, 김훈의 문체가 보여주는 미학적인 아우라 같은 것을 함께 느낄 수가 있다”고 설명한다. 장석주씨는 “김훈의 역사소설은 현실과 맞서기 어려울 때 찾는 일종의 도피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현실소설에서 하는 것보다 역사소설을 통해서 하는 것이 독자나 작가 모두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현실소설에서는 많은 제약을 받지만, 역사소설에서는 역사적인 인물을 통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point 2 변하지 않는 허무주의

‘김훈의 소설에서 세상의 참혹함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세상이 살육과 유혈로 얼룩지고 지배와 폭력이 창궐하며 고통과 죽음이 흥건한 곳이라는 뜻이 아니다. 참혹함이란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세상의 질서에 압도되는 김훈의 인물들을 강렬하게 사로잡고 있는 정념이다. 그것은 무력한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어떻든 피할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고 굴욕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하고 도저한 체념에서 나오는 것이다. … 김훈의 소설은 그렇게 저 불가피를, 그리고 불가피 앞에 선 자의 우울과 허무를 냉정한 시선으로 드러내놓는다.’(‘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중에서)

‘이순신의 사유, 고뇌, 외로움, 불안, 절망은 박제된 역사적 인물의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구체적 현전이다. … 오로지 제 운명의 버거움을 힘겹게 견인해가는 자의 버거움이 드러난다. 대타적세계(세상과 불화로 인해 고립되는 것)와의 되먹임(피드백)의 고리가 끊긴 곳에 제 실존을 세운 자는 필경 허무주의자로 나아간다. 허무주의자는 생존 상의 가치가 결여된 선택과 행동을 취한다.’(‘김훈 소설, 혹은 그 이마고에 관하여’ 중에서)

작가 김훈에게는 ‘허무주의자’라는 단어가 항상 따라 다닌다. 하지만 김훈의 허무주의는 독자들에게 큰 사랑과 동감을 얻어내고 있다. 김훈이 펴낸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나무)이나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나무) 등의 에세이집에서도 그의 허무주의는 극명하게 나타난다. 김훈의 역사소설에서도 허무주의가 깊숙이 깔려 있다고 두 사람은 평가하고 있다. 김영찬씨는 “김훈에게는 허무주의, 파시스트, 남성우월주의 등의 단어가 따라다닌다”면서 “그의 작품을 읽으면 왜 그런 규정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point 3 김훈은 역사소설을 계속 쓸 것인가

“거대한 불가피 앞의 무력한 우울과 신음을 통절하게 그리는 동시에 그것을 유려하게 미학화하는 김훈의 소설은 … 그러면서도 김훈은 일각의 그들과는 달리 결코 공상이나 판타지, 취미나 텍스트 등으로 도주하지 않고 현실의 감각을 환기시키면서 그것을 진지한 사유와 성찰의 영역으로 끌어오고 있다. 저 스스로 2000년대 문학의 흐름에 동참하면서도 바로 그 안에서 그와는 또다른 길과 가능성을 열어 보여주는 김훈 소설의 미덕은 바로 거기에 있다.’(‘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중에서)

‘김훈 소설은 진화 중이다. 진화의 단계에서 역사소설은 악보 상의 휴지부(休止符), 잠시 쉬어가는 쉼표다. 김훈은 이 휴지부, 쉼표를 빠르게 건너갈 것이다. 지금까지 김훈 소설은 그 본질에서 독백이다. 앞으로 나올 소설은 독백에서 벗어나 다향의 울림을 가진 대화일까?’(‘김훈 소설, 혹은 그 이마고에 관하여’ 중에서)

역사소설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김훈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앞으로도 역사소설을 통해 그의 매력을 계속 발산할 것인지, 아니면 현실소설로 변신을 꾀할 것인지. 두 평론가는 김훈이 이제는 현실소설로 넘어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장석주씨는 “‘남한산성’의 인물 캐릭터가 너무 기계적으로 나뉘어 있고, 리얼리티가 많이 떨어진 것 같다”고 평하면서 “(김훈이) 언제까지나 역사소설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 작품은 현실소설이 될 것이다”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작품성 측면에서 보면 현실소설이 실패할 확률은 60% 정도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예상을 하는 이유는 역사소설에서는 그리 눈에 띄지 않은 단점이 현실소설에서는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성우월주의나 몸에 대한 파시슴적인 요소들이 현실을 다루면 다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평가다. 

김영찬씨 역시 “역사소설은 이제 그만 쓰고 현실문제를 다룰 것 같다”면서 “그렇다고 그의 작품 성격이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평한다. 또한 “현실소설을 펴냈을 때는 역사소설이 보여줬던 흡입력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두 평론가의 이야기처럼 역사소설에는 김훈의 매력과 장점을 부각하고 동시에 독자들이 불편할 만한 내용을 상쇄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김훈이 현실소설을 냈을 때는 그동안 잠복해 있던 불편함이 여과 없이 나올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예상한다. 김훈의 다음 행보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내오랜꿈 ---------------------------------------------------------------- 

분명 현실도피요, 현실역사에 참여하지 못한 자의 비겁함이리라. 그래서 현실이 아닌 소설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할말이 많아지는 허기짐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 허기짐은 사소한 행위 사소한 말 하나하나에도 비장하고 숭고한 고뇌와 결단 끝에 내린 선택으로 승화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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