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볏짚 구하기

작년부터 메주를 직접 띄워서 장을 담는다. 그전까진 메주를 구입해서 사용했는데, 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싶어서 직접 만들기로 한 것. 콩을 삶고 메주를 만들어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짚이다. 메주를 말릴 때 바닥에 짚을 깔아 고초균이 메주에 잘 스며들게 해 주기도 하고 바람이 통하는 곳에서 말릴 때도 짚으로 새끼를 꼬아 메주를  묶어 널어 둔다. 그래서 짚의 상태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주변 농가의 짚을 얻어 쓰면서도 조금 찜찜했던 건 아무래도 여름 내내 논바닥에 뿌려지는 농약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메주 만들 준비를 하면서 유기농 짚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자그마한 위안거리다. 마복산 중턱, 다랭이논 비슷한 곳에서 유기농 벼농사를 짓고 있는 지인의 논에서 짚을 조금 가져온 것. 그 짚을 다듬어 햇볕에 말리고 있다. 이 짚을 바라보고 있으니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오버랩 된다. 추수가 끝나고 새해 농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겨우 내내 아버지가 계시는 아랫채의 밤은 새끼 꼬는 소리에 깊어갔다. 아버지를 따라 서툰 솜씨로 일고여덟 살 어린 아이가 꼬는 새끼가 제대로 쓰일 일이 드물었건만 당신께서는 긴긴 밤 말동무 삼아 나와 함께 하시곤 했다. 그 시절, 새끼는 농사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소품이었다. 플라스틱 바구니 하나 변변찮던 시절, 모든 건 새끼로 묶어 날라야 했기에.

엊그제 기억처럼 선명한데 돌아보니 어느새 40년도 훌쩍 더 지난 시절의 이야기다. 일고여덟 살 소년은 벌써 그 시절의 아버지 나이를 훌쩍 넘어서 있고... 올 겨울에는 새끼를 좀 꼬아 볼까나?

예년의 경우 11, 12월이면 맑고 건조한 날씨가 보통인데 올해는 비가 잦고 흐리고 바람 부는 날씨가 많다. 그 덕에 무말랭이나 치자 열매 말리는 일이 더디다. 바구니들이 지붕 위로 올라갔다 거실로 들어왔다를 반복하고 있다.

오늘도 바람이 드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