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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6시 내 고향」 풍경은 없다

by 내오랜꿈 2014.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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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작은 책』, 2014년 12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시골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농사나' 짓겠다니? 농사를 하찮게 생각하거나 농사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하기 힘든 말이다. 아마도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의 삶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걸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농사 짓는다는 게, 또는 귀촌이라는 게 도회지에서의 팍팍한 삶을 자동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선택은 아니다. 시골살이 6년째지만 아직 전문농사꾼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적 삶을 사는 것도 아닌, 마음만 자신의 정체성이 농사꾼이라 생각하는 사람의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 지금은 농사 지을 사람이 없어서 놀고 있는 고향집 밭이지만, 우리 집 5남매의 뒷바라지 터전이 

                            되어주었던 2,000여 평의 배나무 과수원밭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지만 내 나이 또래의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공부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대도시에서 30여 년을 보낸 뒤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무슨 농사를 짓고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뚜렷한 계획을 세우고 귀촌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관계조차도 자신의 출세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친소관계를 만들어가는 회사라는 조직생활이 싫어서 선택한 삶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모두에서 인용한, '농사나 지어야겠다'며 무책임하게 귀촌한 경우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농사가 쉽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릴 때는 물론이고 도시생활을 하면서도 농사 짓는 부모님의 삶을 지켜 보았으니까.


6년이라는 시간,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동안 내 입에 들어갈 거 자급자족하는 정도 외에는 아무 것도 해 놓은 게 없는 시골생활이지만 이런저런 관계를 통해 보고 느꼈던 것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시골생활에 대해 일정 정도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겪어보지 않았던 삶에 대해 다분히 목가적인 취향이 반영된 것일텐데 그런 환상에 일조하는 것은 아무래도 <6시 내 고향> 같은 농촌 관련 프로그램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시골생활은 <6시 내 고향> 류의 전원생활이 아니다. 매일 아침 이슬 젖은 고추밭을 누벼야 하고, 늦은 밤 손전등 불빛을 비추며 배추벌레를 잡기도 해야 하고, 장마철 돌아서면 우거지는 풀들과도 싸워야 하고, 한여름 내내 붉게 익은 고추를 말리느라 일기예보와 씨름해야 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농촌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시골생활의 여유로움과 정겨움만 부각시켜서 이야기한다. 자기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어서 좋다거나 이웃들과 서로 정을 나눌 수 있어서 좋다거나 하는 이야기 일색이다. 도대체 자기가 일하고 싶을 때만 일해도 좋은 농사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또한 자기들이 재배하는 농산물은 모두 다 친환경 농산물이고 자기 고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효능이나 맛이 가장 뛰어나다는 주장 일색이다. 확실한 근거나 이유는 없다. 그저 다른 지방보다 토양이 좋다거나 기후가 알맞다거나 하는 주장들이 내세우는 이유의 전부다. 방송은 그저 일방적인 홍보의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프로그램에서 하는 이야기를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거나 알고 있는 시골은 이미 이웃사촌의 정을 이야기하던 시절의 모습이 아니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적 삶이 가장 충실하게 반영되는 장소일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도시적 삶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다. 도시적 삶에서는 대부분 자신의 수입이 '얼마'라고 고정되어 있기에 더 많은 수입을 위해 발버둥 칠 이유가 없다. 또 발버둥 친다고 더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수입에 맞추어서 자신의 가치에 따라 삶을 배분하며 살아간다. 물론 그 수입을 위해서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무게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고정된 수입에 맞춰 삶을 설계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시골생활에서의 수입은 대부분의 경우 유동적이다. 1년 단위로 수입이 정해지기도 하고 계절 단위로 결정되기도 하고 작게는 5일장마다 결정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그때그때의 가격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되고 이는 때때로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 추석을 앞둔 대도시 인근 시골의 어느 5일장 풍경. 같은 5일장이지만 주말이나 휴일이 끼는 5일장이냐, 평일의 5일장이냐에 따라 물건값이 다르다. 주말이나 휴일은 대도시의 사람들이 근처의 산이나 관광지에 들렀다가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시골장은 5일장이다. 5일장에 가면 가끔씩 물건값 물어보기가 겁날 때도 있다. 값만 물어보고 그냥 가면 뒤통수에 날아오는 가시 돋힌, '사지도 않을 거면서 뭐하러 물어보냐'는 식의 말들 때문이다. 값을 물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데 둘러보는 게 구매자의 기본적인 태도 아니던가? 나에게 각인된 이런 행태가 위협받을 때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물론 물건값을 흥정하고 덤을 달라 못 준다 실랑이 하는 풍경도 있지만 외지인이나 여행객으로 보일 경우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조금 전까지 만 원을 호가하던 상품이 아래 위로 잘 차려입은 등산객에게는 이만 원으로 둔갑한다. 양식 미꾸라지를 가져다 놓고 직접 잡은 자연산 미꾸라지라며 속여 파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해학적'이기까지 하다. 개구리밥 같은 수초를 걷어다 미꾸라지 통에 넣고선 시냇가에서 직접 잡은 증거처럼 꾸미는 것이다. 다 팔고 조금밖에 안 남았다는 걸 보이기 위해 한 그릇씩 가져다 놓는 건 기본이다. 그 그릇을 팔고 나면 조금 떨어진 곳에 놓아둔 큰 통에서 다시 그만큼만 퍼온다. 그 영악스러움이라니. 둥글레차 같은 건조된 형태로 팔면서 국산과 가격차가 서너 배 이상 차이 나는 품목은 중국산을 섞어서 국산 가격으로 파는 경우도 숱하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나 같이 직접 둥글레를 캐서 볶아본 사람이나 알 수 있지 대부분의 사람은 구별하기 어렵다. 


옆지기의 친척 중에 5일장에 열무나 얼갈이배추 같은 잎채소 장거리를 하는 분이 계신다. 어쩌다 이 분의 밭에서 열무 같은 걸 조금 얻어먹을 경우가 있는데 아내가 아무 거나 캐려면 그쪽 건 놔두라며 다른 쪽의 것을 직접 캐주신다. 이유는 하나다. 열무나 얼갈이배추는 잎벌레들이 많이 달려드는데 도시의 소비자들이 깨끗하고 모양 예쁜 걸 원하는 까닭에 시장에 내다 팔 건 농약을 쳤기 때문이다. 자기 먹을 건 농약을 안 치고 내다 팔 건 농약을 치는 현실. 도매시장을 거치는 건 표본으로나마 잔류농약 검사라도 하지 직접 내다파는 건 오로지 농부의 양심에 달린 문제다. 이게 오늘의 농촌 모습이다. 


이건 시골 사람들이 나빠서라기보다는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돈이 된다면 먹거리에 농약 조금 더 치는 건 아무 문제도 안 된다. 하물며 화학비료 조금 더 뿌리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도시적 삶에서는 매일매일을 이런 전쟁을 치를 이유가 없지만 농촌에서는 돈으로 환금되는 삶의 문제가 이렇듯 일상으로 마주친다. 이런 일상을 여유롭게 꾸려갈 자신이 없다면 '농사나 짓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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