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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마늘 이야기 (1) - 마늘 파종 시기는 왜 점점 빨라지고 있을까?

by 내오랜꿈 2014.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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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2월 1일 파종 마늘의 2014년 2월 25일 모습


내가 사는 고흥은 경남 남해와 함께 남도마늘 주산지다. 오랫동안 남해군과 전국 마늘 생산량 1,2위를 다투다 2011년부터 경남 창녕군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여전히 주력 농산물 가운데 하나다. 창녕군은 스페인이 원산지인 대서마늘이 주력 품종인데 반해 고흥은 아직 남도마늘 위주로 재배한다. 물론 고흥도 대서마늘의 재배면적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일반 사람들은 대서마늘, 남도마늘이라고 하면 잘 모를텐데 마늘은 크게 난지형과 한지형 마늘로 나눌 수 있다. 


(寒)지형 마늘은 흔히 우리가 아는 6쪽 마늘을 말하는데 경북 의성마늘이 대표 품종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충북 단양이나 충남 서산도 각자의 품종이 6쪽 마늘의 고유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난(暖)지형 마늘은 쪽이 한지형보다 많이 생기고 겉쪽 안에 속쪽이 생기는 게 대부분이다. 저장성이 약하기 때문에 생마늘이나 장아찌용으로 많이 쓰인다. 이 난지형의 대표 품종이 중국에서 건너와 우리 나라에서 토착화된 남도마늘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 자리를 대서마늘이 대신하고 있다. 창녕군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수확시기가 남도마늘보다 열흘 정도 빠르기에 이른 봄에 조기출하 할 수 있는 잇점이 있어 순식간에 난지형 마늘의 대표 품종으로 자리잡았다. 오죽했으면 이곳 고흥도 씨마늘을 창녕군에서 구입해 쓰고 있을까? 그러다 보니 고흥도 대서마늘 재배면적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대서마늘이 뭐 특별한 건 아니고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자면 우리가 음식점에서 먹는 생마늘의 거의 대부분이 이 대서마늘 품종이라고 보면 된다. 곧 생식용으로 많이 쓰이고 매운 맛이 덜한 것이 특징이다.



▲  씨마늘 매실 발효 희석액(100배)에 침지 하기. 유기농을 하는 분들 중에는 매실 발효액에 씨마늘을 두어 시간 침지하면 소독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과학적 데이타가 없는 이상 소독효과는 장담 못하겠지만 매실발효액 속에 있는 당분의 공급으로 발아해서 초기에 성장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창녕군이 주도한 대서마늘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우리나라 마늘 재배 기상도가 바뀌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대서마늘 보급 이전까지는 남도마늘 같은 난지형 마늘도 10월초나 중순경에 파종하는 게 관례였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원예작물 재배의 특성상 마늘의 이어짓기 작물은 대부분 메주콩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선택한 조합인지 재배시기가 이어지는 작물을 찾다가 우연히 만들어진 조합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늘(혹은 양파)과 메주콩은 최상의 이어짓기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콩의 뿌리에는 공중유리질소를 고정하는 뿌리혹박테리아라는 기생근류균이 있다. '이게 뭔 소리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 같다. 쉽게 말하면 공기 중의 질소화합물들이 특정한 조건이 되면 지금까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던 짝을 버리고 새로운 짝을 찾게 된다. NO, NO3, NH3 같은 질소 분자를 포함하는 화합물은 항상 불안정한 결합상태를 이루고 있어 약간의 변화만 주어도 결합구조가 깨지게 된다. 곧 어떤 이유로 현재의 짝과 동거는 하고 있지만 언제든 다른 짝을 찾아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놈들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결합하는 분자 수의 차이(예를 들자면 이놈들은 일부일처주의가 아니다. 능력 있는 놈은 음이온을 2개, 3개 차지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로 인해 짝을 찾지 못하고 혼자 떠돌아다니는 질소 분자가 생기게 되고 이 질소 분자를 콩과식물의 뿌리에 기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라는 세균이 낚아채서 새로운 질소화합물을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메주콩을 뽑아 보면 뿌리 가운데 뚱뚱하게 살찐, 혹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바로 뿌리혹박테리아다. 이 뿌리혹박테리아가 콩과작물에 질소화합물을 공급해주므로 메주콩은 인위적인 비료의 공급이 없어도 잘 자랄 수 있고, 이는 지력의 보존에 도움이 되어 다비성 작물이라 할 수 있는 마늘이나 양파 등의 재배에도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해 농경지가 좁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어짓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어짓기를 하면 지력의 소모가 심하게 됨으로 다량의 비료성분(이 비료성분의 대부분은 질소화합물이라고 봐도 된다)을 공급해주어야 하는데, 콩의 경우 뿌리혹박테리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공기 중의 질소 분자를 고정시켜 질소화합물을 공급하는 능력이 있기에 지력 소모가 덜하게 되므로 적은 양의 비료를 공급해도 마늘, 양파 등의 이어짓기가 가능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메주콩은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마늘 수확 뒤인 6월에 심어서 10월 중순 이후에 수확하는 작물이다. 서리태 등 늦콩의 경우는 10월말이나 11월초 이후에야 수확하니까 자연스레 마늘의 파종 또한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었을 터.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점점 파종 시기가 앞당겨지더니 어느새 9월 중순에 파종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9월 중순? 생각해보라. 9월 중순이면 아직 여름의 자취가 채 가시지도 않은 때다.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차량으로 이동하기 힘든 때고, 사무실에 앉아 있기가 버거운 때다. 도대체 왜 월동 작물을 여름에 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11월 20일, 6쪽 마늘 파종. 아마도 고흥에서 가장 늦게 마늘 심는 곳이 우리 텃밭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나마 올해는 작년에 비해 1~2주 가량 빠른 편이다. 


문제는 ‘돈’ 때문이다. 8개월이 넘는 오랜 시간을 땅속에서 자라야 수확이 가능한 마늘은 수확 시기가 짧은 기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양파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출하기에 대량으로 쏟아져 가격이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로 고흥이나 남해 등 한겨울에도 일평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드문 지역에서 파종 시기를 앞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파종시기 앞당기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바로 대서마늘의 보급이다. 창녕군에서 보급하기 시작한 대서마늘은 남도마늘과 같은 시기에 심었을때 수확을 열흘 정도 빨리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열흘이 마늘 재배 시기를 바꿔 버렸다.


겨우내 저장 마늘이 유통되다가 늦은 봄 햇마늘이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 수요가 몰려든다. 수요가 급증하니 가격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틈바구니에 대서마늘이 끼어들었다. 남도마늘보다 일찍 수확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남도마늘 재배 농가 입장에서는 햇마늘의 잇점, 즉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잇점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남도마늘이 출하되었을 때는 이미 대서마늘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그래서 남도마늘은 여기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파종시기를 앞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10월 중순 파종에서 초순으로 앞당기더니 이제는 급기야 9월 파종이 대세가 되어버렸다. 월동 작물을 여름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때에 파종하게 된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다.


(마늘 이야기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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