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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우리 말의 어려움 (1)

by 내오랜꿈 201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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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으로 말하면 문장이란 단어의 단순한 나열이다. 소쉬르의 표현을 빌자면 '기호의 나열'에 불과한 것. 그 기호들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건 다른 기호들과의  관계 속에서다. 곧 어떤 기호의 의미는 다른 기호와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관계된 기호가 달라지면 당연히 의미도 달라진다. 굳이 구조주의 언어학의 이론을 가져올 것도 없이 우리말의 많은 단어가 주어진 문장 속에서의 역할이나 관계 속에서 그 쓰임새의 올바름이 결정된다. 그런데 어떤 경우 그 올바름에 대한 기준이 애매모호할 경우도 있다. 


다음 문장을 보자.


"4월에 접어들어서도 우리는 활짝 핀 벚꽃을 '좇아' 저 멀리 섬진강가 구례, 하동 땅을 누비고 다녔다."


이 문장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건 '좇아'란 단어의 쓰임새다.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좇다'와 '쫓다'의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또 적절한 사용이었는가도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국립국어원"에서 정의한 두 동사의 뜻을 살펴보자. 


좇다[졷따]좇아좇으니좇는[존-]〕


1) 목표, 이상, 행복 따위를 추구하다.
2) 남의 말이나 뜻을 따르다.
3) 규칙이나 관습 따위를 지켜서 그대로 하다.
4) 눈여겨보거나 눈길을 보내다.
5) 생각을 하나하나 더듬어 가다.
6) 남의 이론 따위를 따르다

 

쫓다[쫃따]쫓아, 쫓으니, 쫓는[쫀-]〕

1) 어떤 대상을 잡거나 만나기 위하여 뒤를 급히 따르다.
2) 어떤 자리에서 떠나도록 몰다.
3) 밀려드는 졸음이나 잡념 따위를 물리치다.


예시된 문장은 '벚꽃을 좇아'로 표기하여 동사 '좇다'를 차용하고 있다. 이 사용법이 맞다면  "국립국어원" 정의의 '1) 목표, 이상, 행복 따위를 추구하다'라는 항목과 연관지어야 한다. 그런데 이 항목의 엄격한 쓰임새는 '명예를 좇는 사람들'이나 '선생님의 의견을 좇아가기로 했다' 등과 같은 표현이 일반적이다. 속된 말로 추상성이 높은 경우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례다. 뿐만 아니라 국립국어원에서 정의한 좇다의 용례 여섯 가지 모두 좇는 행위를 하는 주체의 그 어떤 '물리적 이동'도 수반하지 않는다. 하나하나 음미해 보시라. 주체의 생각이나 시선의 움직임을 의미할 뿐이지 주체의 동적 움직임을 나타내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예시된 문장의 경우 벚꽃 구경이 '목표, 이상, 행복에의 추구'라는 높은 추상성에 견줄 수 있는 행위인가의 문제와 그 행위를 하는 주체의 물리적 이동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벚꽃이 피는 시기는 일주일 정도의 짧은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하여 멀리서 벚꽃이 유명한 하동과 구례의 벚꽃길 구경에 나선 경우가 위 예시문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곧 벚꽃은 이 시간이 지나면 볼 수 없으므로 4월이라는 시간에 맞춰 벚꽃 구경을 하는 주체가 벛꽃을 찾아 구례, 하동으로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예시문에서는 '좇아'보다는' 쫓아'가 더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국립국어원"에서 정의한 '쫓다'의 용례 '1) 어떤 대상을 잡거나 만나기 위해 뒤를 급히 따르다'에 해당하고, 그 행위를 하는 주체의 물리적 이동도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4월에 접어들어서도 우리는 활짝 핀 벚꽃을 '좇아' 저 멀리 섬진강가 구례, 하동 땅을 누비고 다녔다."

"4월에 접어들어서도 우리는 활짝 핀 벚꽃을 '쫓아' 저 멀리 섬진강가 구례, 하동 땅을 누비고 다녔다."


여러분은 어느 단어가 맞다고 생각하시는지? 내 생각에는 애초에 선택한 '좇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벚꽃을 찾아'나 '벚꽃을 보기 위해' 정도로 고쳐쓰는 게 논란의 여지를 없앤다는 측면에서 옳지 않았을까 싶다. 


비트겐슈타인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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