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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배추가 어떻게 김치의 맛을 좌우하는가?

by 내오랜꿈 201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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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와 무가 점점 속이 차며 굵어지고 있다. 인터넷 여기저기서 김장배추 주문 받는다는 소리가 나오는 걸 보니 김장철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남부지방이야 아직 한참 남았지만 중부내륙은 곧 서리가 내리면서 배추의 성장이 중지될 터이니 김장을 서두르는 게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김장철도 다가오고 하니 오늘은 김치와 배추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래 사진 속의 배추는 모두 지난 토요일(10월 11일) 오후에 찍은 것들이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심었기에, 속이 차 가는 속도나 크기가 비슷비슷하다. 다만 ①의 경우 배추를 벌써 묶어 주었는데, 이 날씨에 배추를 묶는다는 건 상식 밖이다. 많은 농가에서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배추를 묶어 주면 속이 더 잘 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 무근이다. 배추를 묶어 주는 것은 냉해방지를 위한 보온효과 때문이지 속이 차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 ① 농약은 안 치고 화학비료는 준 배추(클릭:사진 확대)

 ② 무농약 무화학비료로 키운 배추(클릭:사진 확대)

▲ ③ 화학비료를 사용하고 농약도 친 배추(클릭:사진 확대)


이 사진들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배춧잎의 색깔이다. 사진 속에서는 ①, ③이 비슷한 색깔로 나오는데 실제 내 눈에 비친 것으로는 ①이 약간 더 진하게 보였다. ②는 ①, ③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연초록 빛깔이다. 이러한 배춧잎의 색깔과 김치맛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지난 번에도 잠시 언급한 적이 있지만 김치는 무엇보다도 주재료인 배추와 무우가 좋아야 맛이 좋은 법이다. 아무리 배추 절이는 게 중요하고 양념이 중요하다 한들 배추가 맛이 없으면 모두 헛수고다. 배추맛이 거기서 거기지 무슨 차이가 있냐고 반문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맛의 차이라는 게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개념인데, 어떻게 누구나 인정하는 맛있는 배추가 있을 수 있느냐는 반문도 있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다른 배추보다 압도적으로 맛이 좋은 배추가 있다면 당연히 누구나 그런 배추를 선호할 것이므로 배추 품종이 지금과 같이 천차만별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품종의 배추가 가장 맛있다는 소리는 그 품종의 씨앗을 생산하는 종묘사나 그 배추를 키워 파는 사람들이나 할 소리다. 그렇다면 도대체 김치맛과 배추의 상관관계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김치는 기본적으로 발효 식품이다. 버무려서 바로 먹는 겉절이 김치야 양념맛이 김치맛을 좌우할 수도 있겠지만 김장김치는 일정 정도 숙성을 시킨 뒤에 먹는 발효 음식이므로 (같은 조건이라면) 발효가 잘 되는 김치가 좋은 맛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다


발효란 건 기본적으로 당분(주로 포도당)이 산소부족 상태에서 불완전 연소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해 호흡을 해야 하는데 호흡을 위해서는 산소가 필요하고 이 산소호흡을 통해 당분을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시켜 생존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 그런데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미생물의 경우 불완전 연소로 인해 당분을 완전히 분해시키지 못하고 다른 종류의 유기물을 만들게 된다. 이 다른 종류의 유기물을 만드는 과정이 바로 발효의 본질이다. 이러한 발효의 대표적인 예가 알코올 발효와 유기산 발효다. 


김치는 이 유기산 발효의 한 종류인 젖산 발효를 통해 숙성되는 음식이다. 우리가 먹는 김치의 신맛은 이러한 유기산들 때문이다. 따라서 김치가 맛이 있으려면 이런 유기산을 생성시켜 주는 당분이 배추에 많이 함유되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유기산을 생성시킬 수 있는 당분이 많이 함유된 배추가 김치맛을 좋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배추는 어떤 배추일까?




배춧잎 색깔 이야기에서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알아차렸겠지만 배춧잎 색깔과 당분 함유량은 어느 정도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과채류든 엽채류든 모든 작물은 당분과 질산태질소(NO3-)의 비율에 따라 맛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대부분 당분 함량이 높을수록 맛이 좋아진다. 과채류의 경우 생육 초기에는 푸른 빛깔을 띄다가 익어갈수록 과채류 본연의 색깔이 발현되는데 이는 결국 당분 함량이 높아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당분 함량과 질산태질소(NO3-) 농도는 역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이는 배추도 마찬가지다. 수확한 배추에 질산태질소(NO3-)의 농도가 높으면 그만큼 당분 함량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당분 함량이 낮은 배추로 김치를 담그면 아무리 양념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젖산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아 김치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추마다 일일이 질산태질소(NO3-) 농도와 당분 함량을 분석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는 일. 어떻게 구분하면 될까? 배추를 비롯해 대부분의 엽채류 채소 잎은 짙은 녹색일수록 질산태질소(NO3-)의 농도가 높다고 보면 된다. 위의 사진들에서 ①, ③과 ②는 그 색깔이 확연하게 구분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배추라 생각하는 크고 짙은 녹색의 배추들이 사실은 질산태질소(NO3-) 성분을 과잉 섭취한 배추라고 봐야 한다. 어느 정도 겉잎들을 제거한 상태라 그렇지 상품화되기 이전의 겉잎들은 아마도 검은 빛깔이 도는 녹색이었을 확률이 높다. 과채류든 엽채류든 크고 보기 좋은 걸 선호하는 소비자의 무지가 만들어낸 우리네 먹거리의 현주소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과일이든 채소든 크고 보기 좋은 것은 일단 의심하는 습관을 기르시기 바란다.



▲ 김장배추 절이는 모습. 우리 집 김장배추는 항상 노란 잎보다 푸른 잎이 더 많다.


배추 크게 키우는 건 정말 쉽다. 질소 비료 많이 주고 물 많이 주면 된다. 가끔 가다 농약도 한 번씩 쳐주고. 우리가 아는 친환경(유기농이 아닌) 농작물 가운데 대량으로 재배하는 것들은 대부분 이렇게 키운다고 보면 된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나가 보라. 아니 나갈 필요 없이 인터넷 사이트 들어가보라. Kg당 가격표가 나와 있다. 가장 크고 가장 무거운 배추가 가장 높은 경매가격을 받는다. 게다가 아둔한 소비자도 크고 모양 좋은 배추만 찾는다. 그러니 어느 농가가 이런 배추 키우기를 마다하랴. 심지어는 유기농을 한다는 농부들조차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농작물을 수확하는 게 농사를 잘 짓는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꽤 알려진 유기농사꾼들조차 5Kg 이상 나가는 배추 수확한 걸 자랑으로 여기고, 굵고 큰 양파 생산한 걸 자랑으로 여긴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블로그에 수확한 농작물을 저울 위에 올려 놓고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게시해 놓는다. 


유기농이든 관행농이든 작물이 자라는 원리는 똑같다. 크고 무거운 배추는 대부분 질소 성분과 수분을 많이 섭취한 것이다. 그러기에 관행농에서조차 농작물 재배학 교본에는 작물의 생육 후기에 질소질 성분을 주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유기농이랍시고 비료 성분이 오래 가는 완효성 유기물을 무턱대고 아무 때나 주는 행위는 화학비료 듬뿍 주고 키우는 농작물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작물은 질산태 질소나 암모니아태 질소 같은 질소 이온을 섭취하는 것이지 유기질 비료, 무기질 비료 따져 가며 섭취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배추 고르고 싶다면 한 포기 무게가 5Kg 이상 나가는 무겁고 큰 배추나 잎 색깔이 짙은 녹색은 피하는 게 좋다(검은 빛이 도는 녹색은 질산태질소(NO3-) 덩어리라 보면 된다). 또한 중륵(배추 이파리 아래 하얀 부분)이 얇고 수분 함량이 적어 단단한 것이 좋다. 흔히 잘 하는 이야기로 농사는 과학이다. 농사 짓는 게 과학이면, 농사 지어서 수확한 작물도 과학적으로 따져야 옳은 것 아니겠는가. 


유기농은 하나의 운동이자 삶의 태도다. 운동은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하지 상품을 판매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상품을 판매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판매를 하더라도 그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을 깨우치는 과정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기농을 한다는 사람들조차 보기 좋고 큰 배추를 생산하는 게 농사의 목표가 되어가는 걸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초보농사꾼의 넋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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