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날씨가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집에만 있기엔 좀이 쑤시는 휴가철이다. 일부러 휴가를 보내러 우리 집에 들린 지인들과 오랫만에 가까운 강진으로 관광을 나섰다. 뙤약볕을 머리에 이고, 다산 선생의 유배지 길을 찾아가는 길.
만덕산 자락에 위치한 백련사는 다산 정약용과 아암 혜장선사가 우정을 쌓으며 오갔던, 소박한 절집이다. 백련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동백숲. 1,500여 그루가 절을 에워싸듯이 자라고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꽃필 철인 3월 말을 전후하여 찾으면 더 좋을 듯하다.
입구에서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면 땀은 샘솟 듯하지만 하늘을 보면 짙은 녹음이 그늘을 드리워, 무더위에 강팍해지려는 마음이 순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랫쪽에서 본 백련사 전경. 가람 배치는 만경루가 대웅보전을 가로막고 있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연꽃을 보았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차를 끓일 목적인지 모두 잘려 있어 여행객에겐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불타는 백일홍(배롱나무꽃)이 그 아쉬움을 달래준다.
만경루 가운데 길로 머리를 낮춰 안마당으로 들어간다. 예전에 보았던 책에서의 만경루는 진입로가 없어서 빙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는데, 근자에 누각 한 칸을 뚫어서 직행로를 만들었나 보다. 오뉴월 개팔자는 상팔자랬나? 뒤룩뒤룩 살찐 백구가 시원한 그늘에 자리를 잡고 본당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고 있다. 부처가 따로 없다.^^
대웅보전의 팔작지붕이 무게를 감당키 어려운 듯 네 귀퉁이에 활주를 받쳐 놓았다. 정면에 계단이 없으므로 옆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어느 종교나 할 것 없이 지금부터 수능 백일 기도철인이다. 가만히 들리는 스님의 기도에도 그런 염원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비석을 받들고 있는 돌거북은 고려때의 것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있는데, 여의주를 물고 있지 않은 점이 다른 것과 차별된다.
원래는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구간을 걸으면서 넘어가려 했는데, 아줌마들의 신발 등이 불량한지라 차로 편하게 이동한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는 그 옛날에는 다산초당에서도 보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녹음이 우거져서 하늘보기조차 어렵다. 그래서인지 다산초당은 눅눅한 습기로 사람사는 곳이라고는 할 수 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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