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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는 멀리 살 때 자주 여행하던 곳이었는데, 가까운 데 사니까 고흥 나들목에 있는데도 매번 휙~ 지나치기만 합니다. 고흥에 온 지가 4년째니까 참으로 오랜만에 벌교 읍내를 가로지르는 코스를 잡았습니다. 벼르고 벼렀던 항아리를 사기 위해 나온 김에 꽃구경 좀 하고 들어가기로 하고 보니 자연스레 발길이 벌교를 향했던 거죠. 허드러지게 피고지는 봄꽃 가운데 매화는 이미 파장이고, 그 자리를 벚꽃이 대신합니다.
소설 속 무대를 배경으로 한 관광지의 대표적인 곳으로 '토지'의 하동 평사리와 '태백산맥'의 벌교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소설 '태백산맥'은 여순항쟁부터 한국전쟁 시기에 이르기까지 참혹했던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벌교와 지리산을 중심으로 담아낸 대하소설이지요. 벌교는 조정래씨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6학년 무렵까지 살았던 곳이라 소설 속 묘사가 꽤 사실적입니다. 다른 곳과 달리 세월의 변화에 뒤쳐진 탓인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장소들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 편이기도 하죠.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한때의 기억이나 추억을 되새김질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스런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7년도에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았을 때는 현부자집만 있었는데, 지금은 현대식 건물인 문학관이 생기고 소화네 집도 재건되어 주변이 여러모로 말끔히 단장된 모습입니다.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건물 감상만 했습니다. 건축가 김원씨가 건축을 설계한 배경을 설명해 놓았습니다. 최대한 소설 느낌을 훼손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뭐 그런 내용입니다.
현부자집 앞 연못가에도 벚꽃이 활짝 피었네요
저는 향단이 과라서 부잣집 대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빼꼼이 열린 사립문을 이용했습니다. 동백이 꽃잎을 통째로 툭,툭 던지는 중입니다.
소설에서는 '현부자집'으로 묘사되었지만 원래는 박씨 문중의 제각이었다 합니다. 기와와 처마는 한옥의 틀을 갖췄으나 실상은 일본식 건물이죠. 1940년대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담장과 화장실을 개조하여 사용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우리나라의 건축 흐름을 보여주는 매우 가치있는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시간을 제일 많이 보냈던 '소화의 집'. 소설 초반에 전개되는 여러 스토리 가운데 정하섭과 소화의 애틋한 사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장소인데,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묘사 되어 있죠.
'조그만 하고 예쁜 기와집! 방 셋에 부엌 하나인 집의 구조 … 부엌과 붙은 방은 안방이었고 그 옆방은 신을 모신 신당이었다. 부엌에서 꺾여 붙인 것은 헛간방이었다.'
실제 무당집이 박씨 문중의 제각 앞에 있었는데, 밭으로 사용하다가 2008년에 재건한 모습이라 합니다. 아담한 집이 소화의 모습 같이 정갈하고 단아합니다.
추억을 부르는 소품들이죠?
멀쩡한 단지는 없지만 뒤란으로 돌아가면 장독대과 구유통 등이 있답니다. 뒷뜰이 제법 넓어요.
중도뜰이 휜히 내려다 보이는 곳을 좀 걷다가, 소화다리를 건너 방죽에 마련된 벤취에서 남편과 소설 이야기 하다가, 또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집으로 왔습니다.
저의 옛날집에 벌교 답사현장 자료 (궁금하면 여기)가 있는데요, 비록 맛배기나마 소설 속 배경을 따라가니 느낌이 남다른데, 제대로 답사 한 번 하고 싶어지네요.
이번에 구입한 단지 구경. 봄에 나는 것들로 효소 욕심을 냈더니 단지가 모자라네요. 이 크기가 세 말 짜리인데, 이번에는 2개만 사와서 물 가득 담아 질내는 중입니다.
(written by Lee H.O. 2013 0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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