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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여행

겨울, 제주에서(3)

by 내오랜꿈 2009.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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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  셋째날




제주도를 간다고 하면 아내가 꼭 가보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는 곳이 바로 우도이다. 나는 이미 10여 년이 지난 어느 해 여름에 들린 적이 있기에 굳이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곳이 우도인데 말이다. 이번에는 계절도 겨울이고 해서 아줌마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우도를 들어가기로 했다. 한화콘도를 나와 성산일출봉 방향으로 달리기를 40여 분, 성산항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차를 두고 가기로 했으나 막상 도착해서 물어보니 차를 가지고 가는 게 편하단다. 그렇게 성산항을 출발, 5분도 채 못되는 시간에 우도의 하우목동항에 내렸다.


어느새 친근해진 다용도의 현무암 돌담벽.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우도의 해안도로


하우목동항에서 북쪽으로 돌아 등대쪽으로 가는 방향을 잡았다.  오늘따라 날씨가 죽인다. 봄날 같은 따스함에 입고 있는 겉옷을 열어제치게 만드는 것. 자전거 하이킹을 해도 좋겠고, 유유자적 걸어다녀도 마냥 좋을 것 같다.  이미 익숙해져버린 듯한 현무암 돌담길을 지나 해안도로를 접어드니 철새 중 사냥에 가장 능하다는 가마우지 무리가 앉은 바위가 보이길래 땡겨서 잡았는데, 허접한 똑딱이의 한계인지라 오린지 갈매긴지 구분이 안 간다.




해안도로 옆 검은 현무암 사이로 거북손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멀리 비양도의 등대가 보인다. 언젠가 <베스트셀러 극장> 비슷한 드라마에서 비양도를 무대로 연인들이 10년 전에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의 이행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내용을 다룬 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내는 고현정이 나오는 드라마 <봄날>인가 뭔가의 촬영지라고 우긴다. 저 노란색 페인트 칠해진 추락방지턱 사잇길로 고현정이 달려갔다나 어쨌다나...글쎄, <봄날>을 안 봤으니 알 수가 있나?(하지만 진실은 조금 뒤에 밝혀진다) 

물때가 만조인지라 등대쪽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잔디밭에 노니는 조랑말을 상대로 조금 놀아주다가 우도 등대쪽으로 향하니 솟대가 보인다.




마을의 액운을 막기 위해 쌓은 방사탑을 지나니 길옆 도로를 따라 솟대들이 여행객들의 이런저런 기원을 담은 리본을 달고 아무렇게나 늘어서 있다.  잠시 차를 멈추니 아줌마 둘이서 가게로 들어가 리본을 구해서는 뭐라 적어서 솟대에 매단다. 뭘 적었냐고 물어보니 그냥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내용이란다. 훗날, 다시 이 곳을 찾았을 때 거센 해풍을 이겨내고 너덜하게나마 그 흔적이 남아 있을까? 그러면 참 반가울 것 같다.




사진으로 보이는 저 우도봉에 오르는 길. 길옆 들꽃들이 반갑다. 들국화인지 구절초인지? 아마도 계절을 생각하면 구절초가 아닌가 싶은데 한번 더 생각해보니 그 계절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여행객들이 많은 듯 우도봉 등대로 올라가는 길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이건 10년 전에는 없던 모습이다.

곁을 지나던 신혼부부에게 '가이드'로 나선 택시기사가 나름대로 설명하는 걸 옮기자면, 저 저수지가 바로 우도의 식수원인데 가뭄에는 바닷물을 끌어와서 염기를 제거한 후에 각 가정에 제공한단다.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갈대 또는 억새로 보이는 갈색 잡풀은 제주의 전통복식인 갈옷의 염료라 한다. 글쎄?




드디어 우도봉 정상, 등대 앞이다. 영화를 찍고 난 후 기증했다는 모형의 연리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는 이 조랑말들은 이미 관광객들의 놀이로 전락한지라 사람이 다가가도 멀뚱멀뚱 쳐다보며 경계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최근에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를 유치하여 지방마다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선전하고 있는 걸 많이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케이스가 아마도 완도의 <해신> 촬영지가 아닌가 싶다. 이곳 제주도 역시 그런 사정은 마찬가지 같은데, <인어공주> 촬영지라며 허름한 벤취에 붉은 페인트로 엉성하게 씌여져 있다. 그 벤취에 앉아 오른쪽을 쳐다보니 멀리 성산 일출봉이 비스듬히 바다 속에 누워 있는 듯이 보인다.



산호사해수욕장을 지나고, 다시 바다를 건너와 성산 일출봉 가는 길의 '미풍식당'에서 해물뚝배기와 꾸덕꾸덕 말린 옥돔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제주도 전체가 관광지지만 이곳 성산일출봉은 그 정도가 심한 듯하다. 확실히 음식은 제주시내에서 먹어야 된다는 걸 비싼 음식 먹어가며 깨닫고 있다.




섭지코지 입구까지 갔다가 주차장에 대책없이 널어선 대형차량 행렬에 지레 겁을 먹고 되돌아 나와 함덕해수욕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저 광경도 10년 전에는 없던 풍경이다. 정말이지 10년 전 섭지코지는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 <올인> 하나가 이렇게 바꿔버렸다. 문주란 자생지라는 또끼섬을 지나 '하도리' 철새 도래지에 이르렀는데, 경계심이 강한 철새들이 숨어버렸는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동부 해안도로를 따라 검은 현무암과 환상적인 물빛이 묘한 대비를 이룬, 해풍으로 하얀 모래 알갱이가 눈에 들어와 눈물을 글썽거려도 좋기만 한 에메랄드빛 바다. 바로 함덕해수욕장이다. 이곳 제주의 바다는 확실히 이국적이다.




오늘도 일행들은 우도를 너무 많이 걸었다며 숙소에서 좀 쉬었다 저녁을 먹자고 한다. 나만 안 피곤한건가? 

여행의 백미는 역시 그 지방의 토속음식을 먹어주는 재미가 아닐까. 제주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은 공항 근처에 위치한 '어장군'에서 돔베고기, 갈치회, 보말국으로 정했다. 최근에는 그다지 육류를 즐기지는 않지만 어쩌다 한 번은 지글지글 삼겹살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돔베고기는 제주 토종 돼지고기를 누린내 없이 삶아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깔끔한 도마 위에 얹혀 나온다. '돔베'가 바로 '도마'를 일컫는 제주도말이라 하니, 이름부터가 토속적이다. 기름기가 빠져 담백한 맛의 고기 한 점을 취향에 따라 야채나 제대로 익은 묵은지에 싸서 먹다 보니 손이 가는 것은 소주 뿐이다.

초록빛 보말미역국도 일품이지만, 소주 안주용으로 주문한 갈치회는 씹으면 씹을 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모두들 갈치회 맛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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