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보다 열흘 정도 일찍 김장배추를 정식했다. 해마다 김장때면 배추가 작고 볼품없다며 투덜거리는 옆지기의 의견을 반영하여 앞당긴 것. 작년까지는 정식 후 70~75일 지난 뒤 수확을 목표로 했기에 9월 15일 전후에 정식을 했었는데, 11월말이 되어도 배추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12월초나 중순경이 되어야 겨우 김장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9월 5일 배추 모종을 정식했는데, 내 예상보다 배추가 너무 빨리 자랐다. 시기적으로는 정식한 뒤 70일이 지났으니 수확하는 것이 맞지만 따로 화학비료를 주지 않는 우리 텃밭에서 70일만에 수확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것. 고추도 그랬지만 아무래도 땅이 어느 정도 유기농에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배추벌레 등의 병충해도 작년에 비해서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130여 포기 가운데 중간중간 뽑아 먹고 남은 게 110 포기 정도. 거의 대부분 2~3Kg 정도의 내가 바라는 크기로 자라 있다. 날씨는 아직 첫서리도 내리지 않고 있기에 놔두면 하염없이 자랄 것 같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김장을 하기로 했다. 얼마나 할까를 고민하다가 일차로 60포기 정도를 수확했다.
지난 금요일 오후에 배추를 수확해서 겉잎들을 정리하고 주말 아침부터 절이는 작업에 들어갔다. 큰 고무통 하나와 김장용 봉투 큰 것 두 개에 나눠 담은 뒤 절이기를 9시간. 절인 배추 120쪽을 세 번에 걸쳐 씻어내고 헹구기를 다시 2시간 여. 밤 10시가 가까워져서야 마무리 된다. 여기까지가 오롯이 내가 할 일. 절이는 중간중간 아내와 함께 김장소에 들어갈 마늘을 까고 생강과 쪽파를 다듬고 풀을 쑤는 등 양념 준비도 곁들인다. 거의 대부분 직접 재배하거나 담근 것이지만 새우젓과 생새우, 청각, 생강은 따로 과역장에 나가서 구입했다. 생강을 제외하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다.
멸치 젓갈은 올봄에 미리 담궈둔 것을 처음으로 개봉했다. 용수를 박아서 거르지 않았기에 누런 젓갈 원액 그대로다. 고춧가루와 혼합할 분량의 젓갈을 떠와 거실 한편에 놓아두니 젓갈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한다. 준비한 양념을 고춧가루, 젓갈 등과 섞어 양념소를 만들어 하룻밤을 재운다. 우리 집 김장 양념소의 특징은 부피 기준으로 고춧가루와 동량의 멸치 젓갈을 혼합하는 것이다. 고춧가루가 10근이면 6L의 멸치 액젓을 섞는 것. 여기에 적당량의 새우젓으로 간을 한다. 소금은 따로 넣지 않는다.
일요일, 아침을 먹은 뒤 거실 한편에 비닐을 깔고 김장을 버무리기 시작한다. 버무리는 작업은 옆지기의 몫. 나는 옆에서 배추를 나르고 꼭지를 다듬고 물기를 짜는 등의 보조 역할. 60포기의 배추를 넣으려니 김치냉장고의 공간이 부족하다. 하는 수 없이 남는 것은 항아리 하나에 넣어서 창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걱정이 앞선다. 좀 적당히 추워지면 좋으련만. 둘이서 먹을 김장 치곤 좀 많은 것 같기도 하지만 모자라는 것보다야 나을 것이다.
요즘이야 먹을 게 널려 있는 세상인지라 김장의 중요성이 점점 반감되고, 심지어 김장을 하지 않는 집도 꽤 많은 것 같다. 사 먹는 게 노동의 강도라는 측면은 아예 차치하고서라도 비용면에서나 시간적으로나 더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효율성'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먹거리를 효율성만 가지고 논한다는 것은 너무 경박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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