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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김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몇 가지 '상식들'에 대해서

by 내오랜꿈 2014.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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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맛의 90%는 배추와 절임공정이다. 배추는 해풍 먹고(아마도 '맞고'로 고쳐야 할 듯) 자라는 게 좋고. 절이는 건 바닷물 이용도 좋은데 결론은 해남에서 절임배추 주문해서 김장하는 게 좋을 듯"



어느 SNS 사이트에서 주고 받는 가벼운 대화 속에 김치를 언급하며 하는 말이다. 이 짧은 글은 우리가 김치라는 음식의 전과정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상식들의 집합체라고 해도 좋을 만한 표현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녹아 있다.




1. 김치 맛의 90%는 배추와 절임공정이다?


흔히들 김치를 담아 본 주부들을 중심으로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건 맛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노동력에 대한 '상징'으로 읽어야 한다. 그만큼 김치를 담그는 데 있어 절이는 과정이 힘들고 고달프다는 것이다.


김치맛을 좌우하는 건 뭐니뭐니해도 젓갈이 우선이고, 다음으로는 주재료인 배추와 고춧가루, 그 다음으로는 양념의 농도와 부재료들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는 각 지방마다 독특한 맛의 김치가 존재하는데, 그 지역적 특색을 나타내는 건 결국 젓갈의 종류와 양이다. 서울지역은 새우젓을 쓰고, 남쪽 지방은 멸치젓을 주로 쓰며, 서해안 지방은 황석어젓갈, 동해안 지방은 까나리액젓을 쓰는 등의 차이에 따른 맛의 차이. 또한 추운 날씨인 북쪽지방은 젓갈을 아주 연하게 쓰고 따뜻한 남쪽지방은 진하게 쓰는 등 젓갈의 양에 따른 맛의 차이 같은 것.


만약, 진짜 절이는 게 김치맛의 90%를 좌우하는 것이라면 절임배추 사서 김치 담는 사람은 바보 중의 바보 아니겠는가? 맛의 90%를 남의 손에 맡겼는데 뭐하러 10%를 위해 절임배추를 사서 직접 담는단 말인가? 누구 말대로 '종갓집' 김치 사먹는 게 낫지. 김치 맛에서 절이는 게 90%를 차지한다면 그야말로 배추 절이는 걸 직접 해야 하지 않나? 양념 버무리는 10%를 차라리 남에게 맡길지언정. 이게 상식 아닐까?


이왕 하는 비과학적 표현이라면 차라리 조금 식상할지언정 이런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김치맛을 좌우하는 건 손맛이다'라고.



2. 해풍 맞고 자란 배추가 좋다?


'의도된' 결론을 제외한다면 유일하게 상식에 부합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바닷물은 지하수나 수둣물에 비해 미량원소들이 아주 풍부하다. 흔히들 미네랄의 보고라고 표현할 만큼. 작물의 생장에는 질소, 인산, 칼리 같은 비료의 3요소로 불리는 무기물이 절대적이지만 망간(Mn), 마그네슘(Mg), 알루미늄(Al), 철(Fe), 아연(Zn) 등의 미량원소도 꼭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작물의 생장은 충분하게 주어진 영양소들보다는 결핍된 영양소 한 가지에 더 크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다른 모든 영양소들이 골고루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붕소(B) 부족 때문에 일어나는 고추 어린 잎의 황화현상이라든가 무우 뿌리의 갈라짐이나 흑변현상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미량원소들의 공급이 중요한데 바닷물은 이들 미량원소의 주된 공급원이 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도 배추나 고추에 바닷물을 희석하여 살포함으로써 미량원소 공급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바닷물은 배추에 염류피해를 줄 수도 있다. 바람이 심한 날 바람에 날려오는 바닷물은 작물에 직접 닿을 경우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난 2012년, 볼라벤 태풍때 강풍에 날려온 바닷물 때문에 전라남도 해안지방의 모든 작물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적이 있다. 바닷물이 직접 닿아도 괜찮은 작물은 마늘이나 양파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므로 해풍 맞고 자란 배추라고 광고하는 모든 지역의 배추들은 사실 바닷가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봐야 한다. 바닷물이 바람에 직접 날려오는 지역은 효과보다는 피해가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해풍이 배추재배에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으나 작물의 생장에 필요한 미량원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닷물이 날려올 정도로 바다 가까이 있다면 피해가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백 번 양보해서 해풍 맞고 자란 배추가 좋다면 같은 해풍을 맞고 자란 배추라 하더라도 해남 같은 남쪽 지방보다는 서산이나 동해, 강릉 같은 북쪽 지방의 배추가 더 좋을 것이다. 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한다. 습하고 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8,9월 남쪽지방의 날씨는 중부 산간지대에 비해 배추 농사를 짓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만큼 벌레들이 많이 꼬이는 등 병충해가 발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따뜻한 남쪽지방은 그만큼 해충들의 알이나 유충들이 월동하기에도 좋다. 이는 결국 농약 살포의 과다유무로 귀결된다. 벌레 많고 병해가 많으면 자연히 농약 살포도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3. 절이는 건 바닷물 이용해도 좋다?


여기서 좋을 수 있는 건 아마도 비용절감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대량으로 절임배추를 만들어 파는 작목반이나 영농조합의 경우 절임배추에 들어가는 소금값도 장난 아닐 테니.


왜 우리가 천일염을 먹으면서 간수 빠진 천일염을 이야기 할까? 여기서 '간수'라는 건 염화마그네슘(MgCl2)이나 황산마그네슘(MgSo4) 같은 무기물이 주성분을 이루고 있다. 이 화학식에서 보듯 마그네슘(Mg)이 문제다. 이 마그네슘은 우리 몸의 무기물 구성성분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은 물질이자 항 스트레스성 무기물질로 알려져 있다. 흥분을 가라앉히는 진정제의 주성분 가운데 하나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마그네슘이 음식에 함유되면 쓴맛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완성된 천일염의 후처리 공정으로 간수를 빼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소금맛이 좋아진다는 건 좀 과도하게 표현하면 이 마그네슘 성분이 빠져나간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그러므로 이 염화마그네슘(MgCl2)이나 황산마그네슘(MgSo4)이 그대로 녹아 있는 바닷물을 이용해서 배추를 절일 경우 마그네슘염의 작용으로 쓴맛에 예민한 사람의 경우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그 미묘한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 


따라서 바닷물로 배추를 절이면 안 될 것은 없겠지만 바닷물로 배추를 절이면 더 맛이 좋다는 등의 말은 그냥 '입에 발린 소리'로 치부해야 한다. 차라리 소금값 아끼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4. 결론은 해남에서 절임배추 주문하는 게 좋다?


내가 만약 절임배추를 주문한다면 괴산이나 태백, 정선, 평창 같은 충청도나 강원도 지방의 고랭지에서 재배한 뒤 간수 빠진 천일염으로 절임하여 깨끗한 지하수를 이용해 씻어낸 배추를 주문하겠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내 손으로 직접 키운 배추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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