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은 소멸되었다 하는데 내리는 비는 장맛비처럼 드세다.
바람 또한 자신의 존재를 잊지말라는 듯 악을 쓰며 윙윙거린다.
저 드센 빗줄기와 바람에 배추와 무우가 상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보내는 밤.
우연히 읽게 되는
기형도의 시는 한없이 우울하다.
아아, 雲霧 가득한 가슴이여
내 苦痛의 비는 어느 날 그칠 것인가
("孤獨의 깊이", <기형도 전집>, 문학과 지성사(1999), p.173)
기형도. 스물아홉 번째 생일을 불과 엿새 앞두고 종로의 한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생을 마감한 시인. 내게는 다른 그 어떤 프로필보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아마도 그의 시는 그의 죽음 만큼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아마도 대개는 다른 글에서 그(의 시)가 언급될 때 한 번씩 그의 "전집"을 뒤적거리는데, 볼 때마다 어딘가에, 어딘가로, 한없이 침잠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솔직히 말하면 난, 기형도가 과대평가 되어 있다고 본다. 그가 우리 문단에 남긴 뚜렷한 족적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그런 게 없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기형도 전집 편집위원회'까지 만들어가며 미완성 소설들은 물론 일기에 가까운 단순한 여행기록까지 찾아내 책으로 만들어 내는 걸까? 혹여나 그의 '스펙'이, 명문대 출신에, 재벌신문 기자라는 스펙이 미친 영향은 없는 걸까? 시를 잘 모르는 인간이 하는 평가이니 견해가 다른 사람은 그냥 무시하기 바란다.
그의 시는, 내가 한 번씩 읽기는 하나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시다.
2014. 09. 2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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