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원래 '정치경제학'이었다. 근대경제학의 출발점으로 인용되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도, 리카도의 <정치경제학 및 조세의 원리>에도 경제학(Economics)이 아니라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었다. 경제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자명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경제학을 배우기 시작한 1980년대에 들어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경제에서 정치를 제거한' 경제이론(들)이 주류 경제학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른바 '신고전파 종합'이라 불리는 경제학이.
이 신고전파 경제학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합리적 선택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든, 그러니까 어떤 것(돈, 직업, 재화 등)이든 희소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데 이 희소성을 지닌 수단을 가지고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합리적 선택'에 기초해서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합리적 선택'에는 재화나 서비스의 선택뿐만 아니라 범죄, 약물, 결혼 등 거의 모든 인간의 행위들도 포함된다고 한다. 하지만 신고전파 경제학은 인간의 이런 선택 행위를 결정하는 기준에서 정치(논리)는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따지고 들자면 경제 이론에 정치 논리가 개입하는 것을 혐오하는 신고전파 경제학만큼 '정치적인' 경제 이론도 드물다. 지금도 여전히 전지구적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을 몰고 온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나 영국의 '새처리즘(Thatcherism)'의 이론적 토대가 된 것은 신고전파 경제학이었다. 그럼에도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온갖 통계와 수학으로 무장한 채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는 철옹성을 쌓아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서는 국가의 시장 개입, 예컨대 불평등한 소득 재분배를 개선시키고자 도입하는 소득의 누진세 제도나 질병이나 노령 등의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사회보험제도 등을 자원 배분의 효율성에 맞지 않다며 자신들의 이론에서 배제시키려는 '정치적' 행위들을 일삼고 있다.
장하준 교수의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Economics - The User's Guide)>는 바로 이 지점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경제 자체가 정치(논리)에 의해 결정되는데 어떻게 경제에서 정치(논리)를 배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경제학은 정치다.(Economics is Politics!)"
너무 과도한 주장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그것이 실제의 생활공간이든 SNS 같은 인터넷 공간이든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여기서는) 정치 이야기 하지 말자'는 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그 '정치 이야기 하지 말자'는 소리도 사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말이다. 현실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정치적 집단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에서 보자면 '정치 혐오'를 일으켜 '그놈이 그놈이다'를 유발하는 정치 전술도 노골적으로 쓰인다. '그놈이 그놈'이니 바꿔봐야 똑같다는 논리는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될까?
장하준은 이러한 '정치 혐오'가 심해질수록 민주주의는 무력화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적) 정치가 개입하지 않는 시장은 '1원 1표'의 원칙에 의해 움직일 것이 자명하니까. 돈을 가진 만큼 영향력을 갖는 시장의 지배가 강화되면 '공공재' 성격을 띠는 것들, 예컨대 수돗물이나 전기, 우편 서비스 같은 것들도 극단적인 이윤 추구의 대상이 되고 이럴 경우 돈이 없는 사람들의 생활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1인 1표'의 원칙이 적용되는 민주주의적 정치 논리로 시장에 개입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고, 실제로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는 정치와 경제가 부딪치는 현실로서의 대상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설명하는 방법론이나 이론적 접근에 치우치고 있다. 현실은 정치와 경제가 서로 부딪쳐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걸 설명하는 이론은 자꾸 정치를 배제한 채 설명하려 하는 꼴이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이러한 주류 경제학의 '허위의식'을 정면으로 겨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체계의 경제학 교과서를 써내려간다. 그 방법도 보통의 다른 교과서와는 많이 다르다. 무조건 무엇을 정의하고 들입다 이론부터 내미는 방식이 아니라 먼저 경제학에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것을 잘 사용하기 위한 하나의 안내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체계로 만들어져 있다. 영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의 부제는 '사용자 설명서(User's Guide)'다. 영문 이름을 직역 하면 "경제학 사용자 설명서"쯤 되겠다. 더글라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이 성공을 거둔 이후 각국의 출판계에 불어 닥친 '~무슨무슨 설명서'의 유행에 편승한 이름 같기도 하다. 출판사의 의견도 반영되었을 터니 제목 가지고 시비거는 건 생략하도록 하자. 한국어판 번역본에서 장하준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것도 역시 판매를 위한 출판사의 전략일 테니까.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통해서 읽어내는 경제학은, 그리고 경제학의 역사는 너무나 쉽게 다가온다. 이렇게 쉬운 걸 나는 왜 그 어려운 책들로 공부해야 했는지를 생각하게 할 정도로. 그렇다고 책이 깊이가 없다거나 신문 칼럼 수준의 글을 짜집기한 것도 아니다. 경제학의 대상과 방법, 역사 그리고 경제학자들까지 빠짐없이 다루면서 생산과 소득의 문제, 금융,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 그리고 정부의 역할과 국제무역에 이르는, 경제학 교과서로서의 체계를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 다만 생산과 소유를 둘러싼 생산관계의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점이 나로서는 아쉬운데 이건 장하준의 체계에서는 아마도 다룰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어쨌거나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읽으시는 분들에게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책보다 나의 이 서평이 훨씬 어렵게 다가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만큼 이 책은 나 같은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라 경제 뉴스나 경제 현상을 설명하면 채널 돌리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나라 고등교육 시스템이 상당히 문제가 많다는 걸 드러낸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혹 그런 분이 계시다면 자신을 탓하지 말고 국가를 탓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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