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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Book

<파브르 식물기> - 식물을 통해 통찰해내는 인간의 삶

by 내오랜꿈 2014.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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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 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곤충기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어떤 형태로든 한 번쯤은 접했을 파브르의 곤충 이야기. 그 곤충 이야기의 강렬함이 이 뛰어난 자연관찰자의 식물 이야기를 생각하기 어렵게 만들지만 <파브르 식물기>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제목만 보아서는 어딘가 골치 아픈 책일 것 같지만, <파브르 식물기>는 중학생 정도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체로 쓰여져 있다. 책의 모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파브르가 그의 자녀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나무 이야기'를 들려줄 목적으로 쓴 글이기 때문이다. 또한 식물 이야기라고 해서 단순히 자연과학적 사실들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동물, 사람, 사회와의 관계 등을 두루 언급하면서 어린 아이들에게 설명하듯 풀어내고 있다.

 

다음의 다소 긴 인용이 모든 걸 설명해준다.

 

찔레, 즉 들장미를 사람들은 꽃밭에 거두어주었다. 이 꽃은 길가에서 다른 들장미와 섞여서 가난하게 살아왔다. 그 관목은 훌륭하지는 못하다. 하지만 그 줄기를 보나 잎을 보나 열매를 보나 그것은 장미다. 그렇지만 참으로 볼품없는 장미다. 꽃잎은 5장이며 그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다. 엷은 담홍색을 띠고 있고 색깔은 희미하며 향기도 없는 꽃잎이다. 이 관목에 1백장이나 되는 호화판 꽃잎을 단 장미를 피워보려고 한다.

 

7월에서 9월, 수액이 오르는 시기에 들장미의  껍질에, 재(材:목질띠)에 이르기까지 T자형의 칼자욱을 낸다. 그리고 칼로 벤 두 곳을 조금 들어 올리고 예쁜 장미를 피우는 장미나무에서 눈이 하나 붙은 껍질 한 조각을 떼어낸다. 그 한 조각이 접수다. 접수의 껍질 안쪽에 있는 층층의 녹색 조직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재 부분을 껍질에서 떼어낸다. 그리고 접수를 받침나무의 껍질과 재 가운데 끼워서 접수의 껍질과 받침나무의 재가 꼭 붙도록 하고 자른 껍질을 닫고 끈으로 동여맨다.

 

다음해 봄 이식된 눈은 새로운 유모가 된 야생 장미에 튼튼한 뿌리를 내린다. 그러면 접붙이기한 곳 위에 있는 야생의 나무를 잘라낸다. 얼마 있으면 들장미는 꽃잎이 1백장인 장미가 된다. 이것이 눈접붙이기다.

 

병아리를 잘 까는 암탉에게 집오리의 알을 품게 하는 수가 있다. 암탉은 양자도 자기 친자식처럼 키운다. 병아리를 돌보듯 오리새끼를 돌본다. 노랗고 보드라운 털에 싸인 새끼오리가 유모의 말을 듣고 부르는 대로 암탉 날개 속으로 뛰어 들어갈 때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물새'의 본능이 눈뜨기 시작할 때가 온다.

 

이 이상한 병아리들은 개구리들이 개굴개굴 울어대고 올챙이가 헤엄치는 연못의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새끼오리들은 한 줄로 서서 뒤뚱뒤뚱 연못으로 내려간다. 어미닭은 새끼들의 행동을 걱정하면서 그 뒤를 따라간다. 연못가에 이른 새끼 오리들은 첨벙첨벙 물 속으로 뛰어 든다. 놀란 것은 어미닭이다. 새끼들이 위험하다. 어미닭은 소리를 지르며 연못가를 뛰어다닌다. 그리고 어미닭은 노기가 충천해서 눈에서는 불꽃이 튄다. 모성애는 기적을 일으킨다. 어미닭은 보기만해도 겁을 내던 물 속으로 뛰어들어갈 태세를 갖춘다. 하지만 새끼오리들은 못들은 척 물 속에서 뛰어 놀며 올챙이를 쫓는다.

 

들장미 쪽은 양자로 들어온 눈이 손바닥만한 호화로운 장미 꽃을 피웠을 때 뭐라고 했을까?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시대도 그렇고 풍습도 그렇고 이 발전하는 세상에서 대체 우리는 어디까지 가는가? 우리 조상들이 숲 속에서 살 때는 잎 다섯 장이면 만족했었다. 나도 그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백 장 천 장의 꽃잎이 없으면 행세하지 못한다. 이런 사치가 들장미의 딸들에게는 어울릴까?"

 

장미꽃은 새끼오리만큼 완고해서 들장미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만일 장미가 살아나가는데 들장미가 불필요했다면 맘대로 떠들라며 들장미를 숲으로 내쫓았을 것이다.(pp 273~275)

 

사실, "원예작물학"에서 번식의 한 방법인 '접붙이기'는 다소 어려운 분야에 속한다. 이 접붙이기를 동물의 탁란이나 인간 세상의 세태를 비유해가며 쉽게 설명한다. 식물의 접붙이기를 '어린 아이의 유모를 바꾸는 행위'에 비유시키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p.265).

 

* T자형 눈붙이기 

 

 

                     

 

                      

 

                                                            

    <그림 1> 접눈따기        <그림 2> T자형 눈접순서 

  (좌→우로)   

  <그림 3>T자형 눈접묘의

 이듬해 봄관리

(그림 출처:http://k.daum.net/qna/view.html?qid=0Cx18)

 

물론 책이 나온 지 150년 가까이 지난 까닭에 다소간의 오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의 해설서를 펴낸 특정 출판사에서는 이 사실을 들어 이 책을 폄하하기도 하는데 적어도 내가 보기엔 시대적 한계로 인한 몇 가지 오류는 이 책의 장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지금까지 왜 이 책이 우리의 중고등학생들에게 널리 읽혀지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반성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식물의 삶은 인간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다.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어려움을 견디는 방법, 자식을 가르치는 방법, 근검절약하는 삶, 자신보다 이웃을 배려하는 태도 등 인간의 삶과 그리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무런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들의 속내를 관찰하고 기록한 앙리 파브르의 노력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식물과 인간의 삶이 어우러져 살아숨쉬는 '교과서'를 외면하는 교육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스마트폰 속에 묻혀 지내는 삶이 아니라 땅을 밟고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삶. <파브르 식물기>는 이 길로 가는 자그마한 이정표를 제시해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꼭 읽어보게 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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