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며, 세월따라 사는 법을 하나씩 알아가는 걸까요. 올해부터는 주변에서 얻어먹는 라이프 스타일을 버리고, 야심차게 직접 김장을 했습니다. 남쪽이라 늦게들 김장을 한다지만 주변을 봐도 우리 집이 제일 늦게 배추를 뽑은 것 같습니다.
추석 무렵에 모종 140개를 구입하여 애지중지 키웠는데, 올해는 전체적으로 김장채소 작황이 안좋았지요. 백김치 담으려고 많이 심었던 것인데, 친정집 배추가 포기를 안지 못해서 반 정도 찬조해 주었더니 그럴 양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참깨와 고춧가루는 동생이 직장 다니며 주말 농사 지어서 태양초 만든 것,
멸치 젓갈은 지난 봄에 기장에서 생멸치 사다 직접 담은 것,
마늘과 쪽파, 갓도 직접 기른 것으로 양념 준비를 했습니다.
멸치 젓갈이 진하고 구수해서 아무 것도 안 넣으려고 했는데 너무 심심한 것 같아서 생새우를 족금 넣었습니다. 돈 주고 구입한 것은 요거 하나네요.
배추가 자라다 말아서 자잘하고 속이 꽉 차진 않았지만 달고 맛납니다. 토요일 오전에 다듬어 절이기 시작해서 밤중에 씻어 건졌습니다. 고흥에 온 첫 해에 신안 천일염을 4포대 정도 구입했으니 3년 동안 간수가 잘 빠진 소금입니다. 알맞게 절여져서 배추가 살아서 밭으로 가지는 않네요.
배추 포기가 작아서 4포기를 속 좋은 배추 1포기 정도로 잡아서 양념 양을 잡았습니다. 멸치액젓, 생새우, 마늘, 생강, 고추가루, 멸치와 다시마로 끓인 육수, 보릿가루로 쑨 풀, 깨소금, 쪽파와 갓 조금 쫑쫑 썰어 넣고 만든 간단 양념 입니다. 말은 간단이라 하면서 준비 과정은 마늘 까는 것부터 시작하여 지난했습니다. 양념 간을 맞추면서 젓갈 맛을 세게 하려는 남편과 좀 심심하게 하려는 저의 견해 차이로 잠깐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중간 선에서 합의를 보고, 배추 하나 쭉 찢어 최종 간을 봅니다. 양념 맛이 제법 그럴 듯하여 기가 사는가 싶었는데, '이건 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가 좋아서 어떻게 해도 맛있을 수 밖에 없다'고 남편이 한소리 합니다.
어쨋거나 모든 준비가 끝나고, 배추 꼭지 정리해 주는대로 버무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배추 속 들춰가며 양념 바르는 손길에 가속이 붙습니다.
양념이 좀 모자라는 듯 싶어 마지막 통은 최소한으로 버무렸습니다. 푹 익혀 찌게용으로 쓸 작정입니다. 김장 설걷이까지 끝내고 나니, 허리가 끊으질 듯 아프지만 채워진 김치통 바라보는 뿌듯함은 크네요.
김장날에 수육과 굴무침 빠지면 서운하지만 지난 주 친정집 김장하면서 두루 섭렵했기 때문에 생략했습니다. 군식구도 없으니 간단한 게 최고입니다.
김장김치 쭉쭉 찢고,
곰국 데우고,
동치미 내고,
봄에 만든 장아찌 3종 세트로 늦은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퍼졌습니다.
written by 느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