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묵은지로 김치찌개 끓일 준비를 하는 남편을 두고 나는 슬며시 밖으로 나왔다. 김치찌개 만큼은 똑 같은 재료에도 남편이 더 맛있게 끓인다. 그래서 나는 자주 공치사를 날리며 찌게 끓이는 수고를 은근슬쩍 남편에게 떠넘기곤 한다. 현관 앞에서 삼순이 새끼 넷과 뒤집기 놀이를(생후 한달인 강쥐를 방석 위에 놓고 손가락으로 장난 걸기) 하고 있는데, 남편의 부름이 다급하다.
주방으로 갔더니 남편이 꽝꽝 언 김치통을 들고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맛소사~!! 어째 이런 사단이.... 지난 주 김장과 함께 김치냉장고 정리를 했었다. 그러면서 큰 칸은 새 김치로 가득 채우고, 미니 칸은 묵은지와 다른 김치류들 조금씩 남은 것, 그리고 양파 장아찌와 생마늘을 넣어두었다. 그런데 미니칸에서 이 사단이 났다. 평소에 냉동으로 세팅해 놓고 각종 건수산물과 틈틈이 말려 놓은 묵은 나물들을 보관했는데, 세팅 바꾸는 걸 깜빡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얗게 얼어서 성에가 낀 보관통들.
맛들이기 중이었던 양파 장아찌. 지난 해 농사 지은 양파의 양이 꽤 많았다. 봄에 잔챙이들로 담은 장아찌를 여기저기 퍼주었더니 모자라서 새로 담은 것인데 요모냥이 되었다. 동생이 방학을 맞아 인도에 길게 체류할 예정이라 밑반찬 찬조를 할까 했는데 양파 장아찌는 못주게 생겼다. 저게 동치미 국물이라면 국수라도 맛있게 말텐데, 에고에고... 해동하면 물러져서 맛 보장이 안될 것 같다.
미처 덜자란 것으로 담근 무우 김치가 심심하게 잘 익어서, 곰국 먹을 때나 우동 같은 거 먹을 때 짱~!!이었는데, 해동하면 무슨 맛이 날까?
햇마늘 나올 때까지 먹을 작정인 생마늘은 싹이 나서 냉장고로 들인 것인데, 어째야 할지 난감...
결국 김장 전까지 냉동 세팅을 했던 이유는 건수산물과 봄부터 틈틈이 말려뒀던 이 묵나물들 때문이었다. 집에 손님이 오거나 할 때 선물하기 좋아서 봄부터 발품 팔아 내 손으로 정성 들여 말린 것들인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곳은 바닷가라 그런지 일년 내내 내륙보다 훨씬 습해서 조금만 방심하면 곰팡이의 습격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귀촌한 첫 해에 말린 고사리를 창고에 그대로 보관했다가 하얀 곰팡이가 슬어 고스란히 버린 적이 있어서, 그 뒤부터 무조건 냉장이나 냉동 보관을 한다.
어쨌거나 지난 일주일간 꽁꽁 얼은 내용물은 오늘 아침까지도 이 상태다. 저녁쯤 되면 완전 해동될라나?
끙~ 그 동안의 수고와 노력들이 이렇게 한방에 갈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