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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 있다면

by 내오랜꿈 2014.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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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끓이기


 정양



한밤중에 배가 고파서

국수나 삶으려고 물을 끓인다

끓어오를 일이 너무 많아서

끓어오르는 놈만 미친 놈 되는 세상에

열받은 냄비 속 맹물은

끓어도 끓어도 넘치지 않는다


혈식血食을 일삼는 작고 천한 모기가

호랑이보다 구렁이보다

더 기가 막히고 열받게 한다던 다산 선생

오물수거비 받으러 오는 말단에게

신경질부리며 부끄럽던 김수영 시인

그들이 남기고 간 세상은 아직도

끓어오르는 놈만 미쳐 보인다

열받는 사람만 쑥스럽다


흙탕물 튀기고 간 택시 때문에

문을 쾅쾅 여닫는 아내 때문에

'솔'을 팔지 않는 담뱃가게 때문에

모기나 미친 개나 호랑이 때문에 저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 있다면

끓어올라 넘치더라도 부끄럽지도

쑥스럽지도 않은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은 참 얼마나 아름다우랴


배고픈 한밤중에 한참이나 잊어버리고

호랑이든 구렁이든 미친개든 말단이든

끝까지 끓어올라 당당하게

맘 놓고 넘치고 싶은 물이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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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끓어오려려고 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참고, 겁이 많아 지레 몸부터 사리고, 지은 죄가 많아 고개를 숙이고 다니며, 불의를 보고도 용기가 없어 외치지 못한다. 도대체 열받을 줄 모르고 살아간다. 언뜻 보면 모두 화평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며 사는 듯하다. 시인은 그래서 더 열받는다."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p142)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시인을 열받게 하는 것이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도 외치고픈 세상이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들은 외치려 들지 않는다. 체면 때문인지, 용기가 없어서인지 어긋나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도 외치지 못한다. 참는 것이 미덕인 시대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내 아들, 딸들이 아무 이유없이 물고기밥이 되어도, 군대 간 내 동생이 이지메성 구타로 맞아죽어도, 자기가 뽑은 놈들이 배터지게 해 쳐먹어도 사람들은 선거 때만 되면 늘상 자기가 찍던 번호만 찍는다. 그러니 정치하는 놈들이 백성들을 얼마나 졸로 보겠는가. '븅신 같은 넘들'이라며...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 있다면, 

끓어올라 넘치더라도 부끄럽지도 쑥스럽지도 않은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은 참 얼마나 아름다우랴.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p141)




어제, 지난 주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전부 12권. 지금 꼭 볼려고 구입한 책도 있지만 절반 정도는 아마도 생각날 때 찾아보게 되리라. 평소 주문할 때보다 많은 권수를 보고 아내에게 한 마디 들었다. 내일 모레 시험 친다면서 무슨 책을 그리 많이 사냐고. 아픈 곳을 건드린다. 그러고보니 시험이 다음 주 일요일이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맨날 '농산물 품질관리' 하고 있는데, 꼭 시험을 봐야 하나? 아무래도 이번에 2차시험 보기는 틀린 것 같다. 내년에 보지 뭐! 그러라고 1년의 유예기간을 준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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