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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전망의 부재

by 내오랜꿈 2014.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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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정당의 당원으로 지낸 지 15년이 지났다. 그 사이 몇 번의 부침을 거쳐 이젠 존재감마저 미미한, 잊혀져가고 있는 정당이다. 반쯤은 역사적 당위성으로, 반쯤은 개인적 의무감으로 지낸 세월이다. 매달 자동이체 되는 당비 납부와 선거 때마다 약간의 후원금을 내는 정도가 당원으로서 이행한 ‘의무’의 전부이고, 몇 번의 당내 선거에 투표를 한 게 당원으로서 행사한 ‘권리’의 전부다. 뭔가 내세울 특별한 것도 없고, 남다른 감회에 젖을 만한 추억도 없다는 말이다.


2. 


한 정당의 부대표가 자살을 했다. 출구 없는 진보운동의 전망부재와 생계를 위협할 정도의 빈곤에 시달린 끝에 깊어져 간 우울증 때문이다. 전망의 부재야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니 따지고 들자면 결국 빈곤이 그 일차적 원인이다. 활동가의 삶을 선택한 이상 경제적 빈곤은 끈질기고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그림자다. 활동가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빈곤이 개선될 희망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개인적 해결책이라고 해봐야 검소한 삶과 세상사를 초월하는 의지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대책 없고 기약 없는 인생에 적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혁명도 돈이 된다면 상품으로 판매되는 세상에서 아무리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소신이 강하더라도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나마 과거에는 이들 활동가들의 생계를 주변에서 지원도 해주곤 했지만 요즈음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무능력한, 남의 도움이나 바라는 뻔뻔스런 인간’ 등의 시선으로 보기 일쑤다. 그런 시선 자체도 폭력적인데 거기에 개인적 생활고까지 겹치면 활동을 지속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자신감은 바닥이니 나락의 늪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3.


한 정당의 부대표가 한 달 활동비로 받았던 돈이 최저임금의 3분의 1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이 글을 보는 당신들은 이 숫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지? 하긴 뭐,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어차피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거늘. 이것들은 이제, 술자리 안줏감으로 이야기하기에도 눈치 보이는 주제가 아니던가. 


지난 며칠간 울적한 기분으로 몇 년 동안의 내 삶을 뒤돌아보니 나무 한 그루 제대로 키워 놓은 게 없다. 때 되면 씨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는 게 전부다. 그것도 내 입에 들어갈 것만.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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