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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농사

김장배추 심기

by 내오랜꿈 2014.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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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 전에 열매를 비워낸 매실나무 이파리들이 하나 둘 살랑거리는 바람에 날리고 있다. 기세등등하던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는 표시다. 그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아쉬움을 토해내듯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친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푸른 하늘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 역시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마지막 열기를 토해내고 있다. 그 강렬한 기운에 8월 내내 음습하고 축축하던 텃밭이 새로운 식구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텃밭 한편 구석에 잡풀들과 음식물 찌꺼기 그리고 '봄'과 '삼순이'의 배설물을 한데 모아 겨울부터 삭혀오던 퇴비를 뿌리고 김장배추 이랑을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묵혀 오던 퇴비 더미를 파헤치는 순간, 징그럽게 꼬물거리는 하얀 애벌레들의 천국을 본다. 크기도 제각각이다. 아마도 풍뎅이나 사슴벌레 종류부터 나비 종류까지 온갖 것들이 함께 모여 더부살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럴 때마다 닭을 키우지 않는 게 한탄스럽다. 닭들에겐 최고의 보양식일 터인데...





이 밭은 3년 전 가을, 마늘 파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경운을 한 뒤로는 한 번도 땅을 뒤집은 적이 없다. 왕겨나 깻묵 같은 퇴비와 역할 다한 작물들의 잔사를 잘라 넣어준 게 전부다. 때 되면 호미로 파종골만 만든 뒤에 씨앗을 뿌려 작물을 키워왔다. 이런 밭의 상태가 궁금해서 퇴비를 끼얹고 난 뒤 쇠스랑으로 땅을 헤집어보았다. 지상부에서 25cm 정도를 넣어 뒤집으니 흙무더기 속으로 연필 굵기만 한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고 그 구멍들 사이로 지렁이가 주둥인지 꼬린지 모를 신체의 일부를 낼름거리고 있다. 내 새끼손가락보다 굵은 놈들도 보인다. 이 상태라면 굳이 경운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냥 뿌려준 퇴비를 긁어서 고루 펴주는 정도로 이랑만들기를 마치기로 했다.




길이 6M, 폭 1M 10cm의 이랑 세 개를 만든 뒤에 왕겨 퇴비를 한 번 더 끼얹어주는 것으로 김장배추 심을 이랑 만드는 작업은 마무리다. 이제 날 잡아 심기만 하면 되는데 정작 필요한 비소식은 얼마 동안은 없는 모양이다.




배추씨앗 파종한 지 3주째. 기약 없는 비 기다리다간 얘들 늙어 죽을 것 같기에 어제 해거름을 전후하여 모종을 옮겨 심기로 했다. 폭 110cm 이랑에 줄 사이 40cm, 포기 사이 40cm로 해서 3줄씩 심으니 6M 길이 이랑 하나에 약 45포기 정도 심어진다. 이렇게 해서 전부 130여 포기의 김장배추가 본밭에 옮겨졌다.




옮겨 놓고 보니 하나하나 애처롭기 그지없다. 이 모종이 속이 꽉 찬 김장배추가 되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가 생길까? 거세미나방 애벌레에게 목이 잘려 나가기도 할 것이고 청벌레 같은 나비 애벌레의 먹이가 되기도 할 것이고 달팽이나 메뚜기에게 몸뚱이의 일부를 내어주기도 할 것이다. 이제 겨울의 초입까지 아침 저녁으로 배추밭에 쪼그리고 앉아 이 모든 방해꾼들을 잡아내는 게 하루 일과가 되는 일만 남았다. 


그렇게, 가을날은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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