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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Book

<풀들의 전략>

by 내오랜꿈 2014.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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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최성현 역, 도솔오두막(2006)
 
1. 쇠뜨기
 

 

 
 
 
 
 
봄이면 사람들의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주는 봄나물의 대표 주자는 아마도 쑥일 것이다. 요즘이야 먹을 게 남아도는 세상이기에 건강기능 먹거리로 더 각광받고 있는 쑥이지만 내 어릴 때만 하더라도 쑥은 춘궁기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소중한 먹거리였다. 이 쑥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지만 내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한 가지는 원자폭탄과 쑥에 관한 에피소드다.

 

 
1945년, 원자 폭탄이 투하되어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일본 히로시마. 이 폐허의 땅에서 두 번째로 싹을 틔워낸 식물 그룹이 바로 쑥 종류라고 한다(많은 사람들과 한의사들이 쑥의 기능을 강조하느라 쑥이 가장 먼저 올라왔다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연한 궁금증. 가장 먼저 올라온 식물은 무엇일까?
 
원자폭탄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됐던 히로시마에서 가장 먼저 새싹을 틔운 것이 이 쇠뜨기였다고 한다. 땅속 깊이 뿌리를 뻗은 덕분에 쇠뜨기는 방사능의 열선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녹지가 다시 살아나는 데 50년은 걸리리라고 하던 그 죽음의 대지에 처음으로 싹을 틔운 쇠뜨기를 보고 사람들이 받은 용기와 희망은 엄청난 것이었을 것이다.(<풀들의 전략>,  pp 40-41)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풀들의 전략>이란 책에 있는 내용이다. 히데히로는 이 '쇠뜨기'를 설명하는 장에서 제목을 "지옥에서 살아난 잡초"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농사짓는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귀찮은 '잡초'다. 뽑아도 뽑아도 어지간해선 그 뿌리를 말살시키기 어렵다. 이 지구상에서 3억년이나 살아온 그 강인한 생명력이라니 오죽하겠는가. 
 
 
 
2. 질경이 
 
지난 해 봄에 이른바 '백야초' 효소를 담았다. 백 가지 약초나 식물을 한데 섞어 발효 효소를 담는다고 해서 백야초 효소라고 하는 모양인데 솔직히 백 가지는 안 되고 한 40여 가지는 섞었던 거 같다. 민들레, 냉이, 달맞이, 엉겅퀴, 쑥, 머위, 곰보배추, 청미래덩굴, 달래..... 그리고 질경이. 
 
그런데 이 질경이 구하기가 참 어려웠다. 어릴 때 집 주변의 길바닥이나 논둑, 밭둑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게 질경이었는데 요즘은 어지간해선 구경하기 힘든 게 바로 이 질경이다. 왜 그럴까?
 
 

 

 
밟히고 밟히고 또 밟히면서도 거기에 꺽이지 않고 굳세게 살아가는 잡초. 그 대표 격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질경이이리라. 질경이는 얄궂게도 사람에게 밟히기 쉬운 길이나 운동장 같은 곳에서 잘 자란다. (중략) 이렇게 고생을 해가며 자신을 밟고 다니는 동물의 발길을 견디는 질경이. 그런 질경이를 불쌍하게 보고 어떤 사람이 '더 이상 질경이를 밟지 않도록 하자'고 제안한다면 그 사람에게 질경이는 어떤 말을 할까? 놀랍게도 그것은 질경이에게는 고맙기는 하지만 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제안이다. 왜냐하면 질경이는 계속해서 밟히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숙명을 타고난 풀이기 때문이다.(같은 책, pp 70~72)
 
요즈음 우리의 생활방식은 논두렁 받두렁을 헤집고 다니던 그 옛날의 생활방식과 너무나 다르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밟고 밟아서 잡초들이 잘 자라지 않은 길이 만들어졌다면, 요즘은 제조제를 뿌리거나 예초기를 돌려서 사람이 다니는 길이 만들어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곧 질경이는 사람들이나 동물들의 발길에 밟히는 데는 강하지만 다른 식물과 경쟁하는 데는 약하다. 사람들이 질경이를 밟고 다니지 않는다면, 밟히면서는 살 수 없는 다른 숱한 풀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질경이가 사는 곳으로 몰려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외려 질경이는 다른 식물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고사하고 마는 것이다.
 
 
3. 농사는 풀과 공존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풀 때문에 미치겠다고. 풀만 아니면 농사 지을만 하겠다고. 그래서 유기농을 하는 분들도 상당수가 비닐 멀칭을 한 다음 작물을 파종한다. 비닐 멀칭의 여러 가지 장점들을 이야기 하면서. 뭐, 세상 모든 게 장단점이 있는 것이니 무조건 나쁜 게 몇이나 되겠는가. 심지어 지금 제주도를 비롯해 전남 해안에 강풍을 몰아치며 지나가는 '너구리'도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가끔씩 오는 태풍도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많다고 알고 있다.
 
비닐 멀칭을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풀', 그러니까 우리가 '잡초'라고 쉽게 무시해버리는 것들을 바라보는 그 어떤 '시선'의 문제가 아닐까? 과연 우리 주변의 풀들은 모두 '잡초'라고 무시해버려도 좋을만큼 쓸모없는 것들일까?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풀들의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한 번 생각해보기를 권유한다. 인간에게 '선택'되어 애지중지 키워져온 원예작물들이 가지지 못한 '그 어떤 것', 그러니까 근검 절약, 도주, 저항, 유혹, 위장, 위기관리능력, 진화, 비용절감 등으로 비유될 수 있는, 인간보다 더 뛰어난 인간의 삶의 방식을 구현하는 풀들의 삶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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