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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농사

태양초 만들기

by 내오랜꿈 2014.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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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건조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천일 건조(양건), 하우스 건조, 열풍 건조(화건). 양건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태양초를 의미하고, 화건은 건조기에 넣어 말린 것을 말한다. 하우스 건조는 태양초 만들기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으니까 하우스 안에 건조대를 설치하고 말리는 걸 말한다. 열풍 건조는 고온 건조와 저온 건조로 나눌 수 있다. 



▲ 고추를 씻어 물기를 뺀다. 화건의 경우 세척도 않고 바로 건조기에 넣어 말리는 농가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그런 농가에 묻고 싶다. 자기가 먹을 것도 과연 씻지도 않고 바로 말리는지를...


일반적으로 화건의 경우 교과서적인 설명은 "완전 밀폐 상태의 65℃에서 5~6시간 → 습기 배출(1시간) → (배기구 개방)60℃에서 7~8시간 → (배기구 개방)55℃에서 10~12시간"이라는 건조 과정을 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척 과정과 물 빼는 시간을 제외하고 25~27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여기서 완전 밀폐 상태의 65℃라는 건 사실 고추를 '찐다'는 의미다. 농촌진흥청 산하 기관 중에 "국립농업과학원"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 '유기농정보센터'에서 펴낸 자료에 따르면 고추 건조 과정에서 중요한 온도는 55℃다. 이 55℃를 넘느냐 아니냐, 배기구를 닫고 말리느냐 열고 말리느냐에 따라 '고온 건조'와 '저온 건조'가 구분된다. 



▲ 세척후 실내에서의 후숙 과정(1~2일 정도)


하우스 건조는 하우스 안에 건조대를 준비하고 검은 망을 깔고 부직포 등을 이용해 건조시키는 걸 지칭하는데 이때 하우스 안의 온도가 55℃가 넘지 않도록 환기에 주의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55℃를 넘으면 자연 건조라기보다는 쪄서 말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찐다'는 건 고추가 가지고 있는 비타민C 등을 파괴한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그래서 화건의 경우 '고온 건조'냐 '저온 건조'냐가 중요하다. 고추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비타민C 등을 급격하게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양건(태양초)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 '하우스 건조'와 '저온 건조'이기 때문이다.



▲ 마당으로 나와 검은 망을 덮어서 말리는 과정(날씨에 따라 2~4일 정도)


하우스 건조의 경우 55℃를 넘기지 않는 것이야 문을 열고 닫으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날씨가 받쳐주지 않을 경우는 태양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책이 없다. 그래서 모색된 것이 '저온 건조'다. 저온 건조는 건조기의 온도를 50~55℃를 유지하면서 배기구를 충분히 연 상태로 말리는 과정을 거친다. 당연히 고온 건조의 경우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저온 건조를 충실히 이행하는 농가의 경우 완전 건조에 이르는데 3~4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이렇게 저온 건조로 말린 고추의 경우 언뜻 보기에는 양건이나 하우스 건조로 말린 고추와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시중에 태양초로 팔리고 있는 고추의 상당수가 이렇게 '저온 건조'로 말린 고추이거나 하우스 건조된 고추일 확률이 높다고 보면 된다. 이 글을 보고 시비걸지도 모르겠지만 유기농산물 생협 매장인 "한살림"이나 "자연드림"에서 판매되는 태양초의 상당수가 실제로는 '하우스 건조' 고추이거나 '(반)하우스 건조+(반)양건'으로 보면 된다. 심하면 '저온 건조'된 화건 고추가 섞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망을 걷고 다시 말리기(날씨에 따라 2~4일 정도)


'고온 건조'된 화건 고추의 경우는 꼭지가 검은 빛에 가까운 짙은 갈색이고 건고추 색깔도 검붉은 색이라 비교할 경우 쉽게 구분이 가지만 양건이나 하우스 건조, 저온 건조된 화건 고추는 다년간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분별해내기 힘들다. 구분이 쉽지 않은 이유는, 많은 경우 한 가지 방식으로만 말리는 게 아니라 건조기에서 숨을 죽인 다음 하우스 건조를 하거나 태양초로 말리는 등 건조 방식을 혼합하기 때문이다(순수한 저온 건조 고추는 꼭지 색깔이 초록빛이 돌기에 어느 정도 구분 가능하다). 오히려 태양초의 경우 건조 과정에서 직사광선을 받아 백색증이 나타난다거나 하기 때문에 단순히 겉모양만 비교할 경우 품질이 더 나빠보이기까지 한다. 이러니 누가 태양초로 고추를 말리려고 하겠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왼쪽 상태에서 오른쪽 상태로 변해간다


그래도 저온 건조나 하우스 건조 고추를 먹는 사람은 그나마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건조기에서 70℃가 넘어가는 고온에서 익혀져 하루 만에 건조된 고추를 먹는 것에 비하면. 실제로 많은 농가에서는 권장온도인 65℃가 아니라 75℃ 정도에서 일차로 찐 다음 말리는 과정을 선택하고 있다. 고집스럽게 태양초로 말리고 있는 나를 보고 이웃집 형님들이 자기집 건조기에 넣어 말리라고 말들 한다. 색깔도 훨씬 좋다면서. 이들이 색깔이 좋다고 이야기 하는 건 실제로 보면 화건에서 고온 건조된 고추는 검붉은 윤기가 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태양초의 경우 일주일 넘게 자연상태에서 시달리기 때문에 건고추가 반짝반짝 윤이 나지는 않는다. 또 고춧가루를 빻아 보면 '고온 건조'된 화건고추는 짙은 붉은색이고 태양초는 주황색에 가까운 붉은색이다.



▲말리다가 비가 오면? 이렇게 방 안으로 들어와 전기장판 신세를 져야 한다


그렇다면 태양초의 장점은 없는 것일까? 그렇게 고생하며 굳이 태양초를 고집할 이유는 무엇인가? 글쎄, 이건 답이 없는 문제다. 차이를 이해하려면 태양초로 만든 고춧가루와 그 고춧가루로 만든 김치와 고추장을 먹어봐야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는 것이라 '정답'이라고 주장할 수가 없다. 같은 품종의 고추라도 태양초로 만든 고춧가루의 경우 매운 맛이 훨씬 강하다. 고온 건조된 화건고추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입맛에 태양초 고춧가루로 만든 음식은 품종에 따라서는 일단 너무 맵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집 고추장을 먹어본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은 '왜 이리 맵나?'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도 안 매운데.ㅠㅠ


'길들여진다'는 건 무서운 것이다.



▲온전하게 자연건조된 태양초. 꼭지가 연초록 빛깔이 함유된 노란 갈색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잘 건조된 '하우스 건조' 고추나 '저온 건조'된 화건고추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온에 쪄서 비타민이 거의 파괴된 고추가 넘치는 세상에서 그 정도 정성 들여 말렸으면 충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소비자의 의식이다. 태양초나 유기농 식품을 먹는 이유가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라면 굳이 유기농이나 태양초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건강은 삶의 태도나 습관, 유전적인 요인, 스트레스나 운동의 유무가 더 크게 작용한다. 유기농 식품이나 태양초 고춧가루 먹는다고 바로 건강해질 것 같으면 이 세상은 돈 있는 사람들만 건강해지는 세상이 될 확률이 높다. 너도나도 순수한 유기농 식품만 찾게 될 것이고 그러면 유기농산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 아닌가. 이것은 사회정의라는 측면에서 옳지 않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아파야 하는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은 뒤집어엎어버리는 게 옳다.




유기농은 하나의 삶의 방법이고 삶의 철학에 관계된 문제다. 주어진 자연을 활용하고 주어진 자연을 거스러지 않는 삶의 방법이자 실천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유기농이나 태양초를 고집하여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각자 생각하는 대로 선택해야 할 문제다. 물론 여기서 유기농이건 관행농이건 입으로 들어가면 다 똑 같다는 류의 천박한 주장은 논외로 한다. 자기가 화학비료와 농약에 찌든 농산물 먹는다고 남까지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솔직히 주제넘은 짓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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