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동안 쉬지 않고 내리던 비가 어젯밤부터 그쳤다. 사실 이 시기에는 스쳐지나가는 태풍보다 비가 더 무섭다. 태풍 피해는 눈에 보이지만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는 서서히 피해를 확산하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아내와 둘이서 쓰러진 고추지지대를 바로 세우고 줄을 다시 묶기를 두 시간여. 대충 수습되는 모양이 나온다. 하지만 잎들이 얼마나 시달렸는지 상처투성이다. 중간중간 선단부가 늘어진 것들도 보인다. 아마도 경험상으로 며칠 내로 '풋마름병'이 오지 않을까 싶다. 3,4일 동안 쉬지 않고 내리는 비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더군다나 이번 같이 태풍까지 동반하면 뿌리가 흔들려 약해질대로 약해진 고추에 갖가지 병해충이 달려들기 마련이다. 저녁에 난황유나 한 번 뿌려주어야겠다.
토마토와 오이는 모두 뽑아내서 정리하기로 했다. 시달린 잎들이 짓뭉게져서 제 기능을 하기는 어려울 거 같기 때문이다. 뽑혀진 토마토를 보면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8월 한 달 먹을 토마토가 냉장고 있다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 거 같다. 땅이 마르면 새로 이랑을 만든 뒤에 다음 주쯤 쪽파나 파종해야겠다.
태풍으로 생명을 다해 가는 와중에도 버리다시피 던져둔 토란이 싹을 틔워 자라고 있다. 지난 가을 진주밭에서 수확해 봄까지 먹고 창고 구석에 쳐박아둔 토란이 말라 비틀어져 가고 있기에 창고옆 빈터에 호미로 긁어 묻어둔 게 7월 17일경. 너무 늦어 제대로 알이 맺히긴 힘들겠지만 오가며 눈요기나 하는 것으로 만족할 셈이다.
이 와중에도 파프리카가 익어가고 있다. 피망인가 파프리카인가 긴가민가 했는데 파프리카가 확실하다. 지금은 빨강, 노랑 두 가지 색 뿐인데 주황색이나 다른 색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12포기나 있으니 확률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새끼 손가락보다 작았던 모종을 가져왔을 때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감개무량이다.
농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주저앉아 아파하고 실망할 겨를이 없다. 오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기 때문. 내일 하면 이미 늦는 것. 이것이 농사인 것 같다. 이제 곧 쪽파도 파종해야 하고 김장배추, 김장무 파종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볕 나자마자 이렇게 고추말리는 일을 한시도 게을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때로는 '슬픔도 힘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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