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300mm 가까이 폭우가 쏟아진 토요일 아침, 텃밭의 풍경은 눈길을 주기에 가혹했다. 태풍의 강도가 크지는 않았지만 하필 바람의,방향이 동풍인 게 마음에 걸렸는데, 기어이 일을 낸다.
토마토와 오이는 지지대가 흔들린 정도가 아니라 뽑혀져 있었고, 고추와 가지는 한쪽 방향으로 쓰러져 땅바닥과 입맞추고 있었다. 직경 4cm 가까운 대나무 지지대가 얼마나 흔들렸으면 땅이 저렇게 파였을까? 쓰러지진 않고 겨우 버티고 있는 토마토도 아마 무사하지 못할 것 같다. 잎들이 바람에 시달려 다 짓물러져 있다. 아무래도 토마토와 오이는 뽑아내 정리해야 할 것 같다.
가지는 그나마 지지대가 버텨 주었는데, 이파리들이 얼마나 시달렸는지 처참한 몰골이다. 햇빛이라도 나면 좋으련만.....
고추는 아예 '맘 편히' 드러누웠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일으켜 세우고 싶지만 당장 저 밭에 들어갔다가는 밭고랑을 찰흙 반죽으로 만들 것만 같기에 참기로 했다. 참 속 편한 농법이다. '고추 니가 태풍 지나갈 때까지 알아서 버텨라'다. 버틸 수 있을까?
창고 지붕 위로 올라가 뻗어나가던 호박도 속절없이 지지대 밑으로 쳐박혀 시들어가고 앞마당에 심은 파프리카 잎들도 온통 상처투성이다. 저 잎들도 모두 따버려야 새 잎이 돋아나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만큼 수확은 늦어질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반가운 모습도 발견한다. 밭 한쪽으로 무성하게 뻗어나가던 호박 넝쿨 사이에서 모양 예쁜 호박과 단호박을 볼 수 있다. 잎이 너무 우거져 호박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몰랏었는데, '나크리' 덕분에(?) 구경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진주밭에 심어진 참깨, 들깨, 메주콩들은 무사할까?
우울한 주말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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