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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발퀴레의 기행

by 내오랜꿈 2009.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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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퀴레의 기행



 

Ride of Valkyries (『지옥의 묵시록』 중에서)

 
 


프랜시드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을 보면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있다(웃기는 건 이 영화가 탈영병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내에는 10여 년간 수입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최근엔 코폴라 감독의 편집본이 너무 길다는 제작사의 요구로 잘리워졌던 30분 가량의 분량이 재삽입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판이 나와 있다). 미군 특수부대의 윌라드 대위가 캄보디아 밀림에 은거하는 커츠 대령을 제거하라는 특수임무를 받고 밀림을 향해가는 도중, 서핑에 미쳐있는 길고어 대령 일행을 만나게 된다. 서핑을 위해 전투를 벌일 정도로 광적인 서핑매니아인 길고어 대령. 이 길고어 대령이 바그너의 「 발퀴레의 기행」(『 니벨룽의 반지』 중)이라는 음악을 확성기로 틀어 놓고 네이팜탄을 비롯한 폭탄을 적에게 퍼붓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어젯밤,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본부의 습격 장면을 YTN 뉴스 속보로 보면서 문득 떠오른 장면이 바로 『지옥의 묵시록』의 이 장면이었다. 어쩌면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슬며시 베어나오는 희열감도 있었던 거 같다. 

수천 명이, 수만 명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이 전대미문의 '테러'를 보면서 무슨 희열이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 나도 아무런 죄없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아프다. 

그러나, 사건의 본질은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현상 그 자체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따지고 들자면 그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알면서도 습격을 가한 집단의 논리 역시 나름대로 충분한 근거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언급되는 '빈 라덴'이든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전선이든 또다른 누구이든... 

 



 
 
앞서 언급한 『지옥의 묵시록』에서의 길고어대령 부대의 폭격 장면은 단순히 한 인간의 광기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명분없는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수많은 베트남 민중을 죽이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광기'를 묘사한 것이리라. 

어디 베트남 뿐이었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1948년의 제주도에서도 그랬고, 한국전쟁에서도 그랬다. 수많은 민중들은 빨갱이 토벌이라는, 전쟁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쓴 '정당성'이라는 이름으로 학살되었다. 

잘 알고 있듯이 한 위대한 사상가는 어떤 책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어제의, 미국심장부를 강타한 저 습격은 어쩌면 미국 자신이 지난 세기 세계 곳곳에서 행한 악행의 댓가는 아니었을까? 아마도 어제의 습격이 약자가 강자에게 행한 것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에게 행한 것이었다면 누가 알겠는가? 길고어 대령이 그랬던 것처럼 맨하탄의 마천루 사이로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을 틀어놓았을지도...

written date:2001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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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오늘(미국시간), 있었던 일이고 그 느낌을 적은 글이다. 그 뒤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은 테러범 검거란 이름으로 자행된 '합법적(?)' 테러로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된 채 UN 구호품이 아니면 생존을 이어갈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다. 반드시 잡겠다던 빈 라덴은 그림자도 못 밟아보고 이제 아메리카는 또다른 '악의 축'을 징벌하겠다는 명목으로 이라크 공습을 준비하고 있다. 그나마 프랑스나 독일, 중국이 안티를 거는 통에 자기 맘대로 못해서 잔뜩 약이 올라 있는 형국이다. 

또한 테러방비라는 명목으로 미국행 비행기나 입국 외국인들에 대한 검색 강화는 지문 검사는 기본이고 홍채 검사에 발바닥까지 내보여야 한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미국내에서조차 인권유린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검문 검색을 강화한들, 제2의 빈라덴이라는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한들 자국의 이해를 위해 힘의 논리를 내세우는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해를 등에 업은 '초국적 자본'의 이윤추구가 계속되는 한 '9.11테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written date:2002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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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할퀴고 간 뉴올리언즈의 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미국이라는 나라의 일면을 엿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에 뒤이어 자행되는 무법천지 세상 뉴올리언즈. '재즈의 고향' 이라는 수식어가 안스럽게 다가온다. 

2003년, 악의 축 징벌을 내세워 세계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뒤 후세인 제거에는 성공했지만, 이라크 민중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내몰린 부시 행정부. 자국의 이익이라는 뻔한 잇속을 숨긴 채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며 수천 수만의 민간인 사상자를 내고 있는 이라크 침공의 부도덕함은 오늘, 카트리나가 할퀴고 간 뉴올리온즈에 투영된 미국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는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천재지변의 상황에서 서로 힘을 모아 극복하기는 커녕 남의 것 약탈과 방화를 서슴치 않는 자신들의 나라나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경찰 역할이나 하시지 뭔 주제넘게 '세계의 경찰'? 

어쩌면 저 뉴올리언즈는 자신들의 잘못은 돌아보지 않은 채, '9.11테러'의 보복을 감행하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향한 '신의 선물'은 아닐런지...
 
정말이지, '니나 잘 하세요!'라고 외치고 싶다.


written date:2005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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