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여유/옆지기의 글

어슬프게 만든 울타리

by 내오랜꿈 2013. 1. 25.
728x90
반응형


동네에서 유일하게 자유방임으로 살고 있는 삼순이는 마당 있는 집이 생기면서 우리와 식구가 된 아이입니다.  저희 집은 대문이 없어 완전 무방비 상태이기에 장시간 집을 비워야 할 때 삼순이 걱정에 노심초사 하곤 했습니다.

 

얼마 전, 잠시 풀려난 이웃의 진돗개가 삼순이의 영역인 마당에 무단 침입한 적이 있습니다. 저 두 배 만한 덩치에게 덤볐다가 오지게 물려서 4시간 동안 어딘가로 잠적했더랬죠. 그때 삼순이가 안 돌아와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는데,  또다시 큰 개가 어슬렁거릴까봐 겁이 납니다.  게다가 생후 두 달 된 꼬마 네 마리까지 통제불능 상태로 통통거리며 뛰어다니고, 무엇보다 삼순이가 사랑에 빠져 또 새끼를 가질까봐 감시 차원에서 겸사겸사 울을 치기로 했어요.

 



처음 이사 왔을 때 요모조모 챙겨주셨던 마을 아저씨께서 시골집에 되도록이면 돈을 들이지 말라고 충고 했더랬죠. 지내보니 그 말씀에 일리가 있어서 우리 입맛에 맞게 손보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꾹 참고  어슬프나마 손으로 할 수 있는 만큼만 똑딱거리곤 합니다. 울타리를 치기 위해 대나무를 끊어 온 지 어언 한 달이 다 되어 가네요.

 


 

첫 번째 버젼은,

갑자기 없던 울을 치면 동네분들께 오해 살까봐, 제가 치마를 입고도 넘나들 수 있을 만큼 낮은 높이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삼순이가 훌쩍훌쩍 뛰어넘고 다니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죠.

 


 

다시 변경된 두 번째 버젼,

대나무 키를 좀더 높이고 칡넝굴 껍데기로 야무지게 엮었어요. 여닫을 수 있게끔 만들기가 어려웠던지 출입할 때는 덤성덤성 꽂힌 대나무를 빼올리게 만들었더군요. 이 또한 제가 무시로 넘나들기에 너무 불편한 거예요.  대나무 엮는다고 손이 아픈 공도 몰라주고, 고객 만족을 너무 못 시킨다고 또 투덜투덜....

 


 

그렇게 수정 들어간 세 번째 버젼에서 그만 사고가 났어요.

어떻게 뚝딱거리다가 낫으로 왼쪽 엄지 손톱을 찍어 버려서 며칠째 아파합니다. 어차피 임시방편인데 대충 드나들 것이지 괜히 투덜거렸나 싶어서 미안해집니다.

 



고리로 사용할 철사가 없어서 헝겁으로 급 마무리 한 문을 열었는데, 허술해도 너무 허술합니다. 땅이 얼어서 지지할 나무를 박지 못해 문이 출렁~ 힘이 없네요. 내일 철물점 쇼핑이라도 해야겠습니다.

 

그래도 이만하면 삼순이네 가족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싶어요.


728x90
반응형

'삶의 여유 > 옆지기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월의 시작  (0) 2013.03.01
짧은 인연  (0) 2013.01.30
부담스런 쌀자루  (0) 2013.01.24
화덕에 들어간 강쥐  (0) 2013.01.21
개울 청소  (0) 2013.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