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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옆지기의 글

여자만의 해안 풍경 - 눈 가고, 마음 가고, 발길 닿은 곳

by 내오랜꿈 2007.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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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추석연휴 마지막 날! 몇일 동안 잠귀신이 붙은 나는 내심 집에서 끝까지 뒹굴고 싶었지만, 내 짝은 뭔가 아쉬운듯 차려입기를 종용하여 햇빛아래 서니, 또 살만한 기분으로 길을 나섰다. 평소보다 먼 순천만 갈대숲까지의 여정으로, 심심풀이 땅콩으로 특별한 목적지가 없을때 우리의 드라이브 코스로 자주 간택되는 전라도 남쪽 화양면 바닷가 마을들을 지나 와온 해변길은, 눈에 익어 더 친숙하다.


아직 그 깊이는 얄팍하지만 가을이란 계절은, 카메라 셔트만 눌러도 모두 작품이 될 것 같은 이쁜 착각이 든다. 고속도로 보다는 국도, 국도 보다는 꾸불꾸불 좁다란 지방도로를 달리는 재미가 남다른데, 스치는 풍경이 다 그림이다. 설익은 가을의 정취를 한껏 맛볼 수 있는 들녘의 풍요로움을 함께 아우르며...


차창을 내리고 건들건들한 바람에 반쯤은 태엽이 풀려 시간을 잊고 달리다 보면, 나름대로의 지형에 어울리거나 말거나 미운오리 새끼처럼 국적 불명의 이국적인 건물들이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다. 어쩌다 '아~ 이쁘다. 괜찮네.'란 감탄사가 한번쯤 나오기 마련이지만, 쉬어가기 위해 차 한잔.... 또는 술 한잔의 빌미가 없는 한, 우리부부는 둘다 한식을 즐기는 편이라 까페나 레스토랑을 찾는 일은 거의 없는데, 눈요기도 좋겠지만 우선은 밥을(아점) 먹어야 했다. 몇번을 다녀 눈에 익은 까페 '일마레'는 바다를 끼고 있어도 이름만 따왔을 뿐, 영화속의 정취와는 무관한데, 한 번 가 볼까... 망설이던 찰나에 새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육로로는 다소 먼 땅이 바다를 횡단하여 가차와 보임이 남해안 지형의 매력인데, 장흥이 물건너 보이는 언덕배기에 자리하여, 스위스풍을 흉내 낸 겉멋에 따라 이름도 '티롤'이란 낯선 까페. 한가한 편인 주변 다른 곳에 비해 주차장에 제법 차가 많다.



이렇게 눈부신 날! 실내에 자리하는 건 하늘에 대한 배신 행위 같아서, 야외에 미처 반쯤 해를 가린 테이블에 앉아 간편한 식사를 했다. 둘레에 심어둔 각종 허브향이 바람을 타고 코끝에 묻어오니, 기분도 따라서 고조되고...


본관 옆에 작은 갤러리를 꾸려놓고 판매까지 겸하고 있는데 까페와의 연관관계는 모르겠고, 이름을 잊었지만 여류화가의 작품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그림도, 도예품도, 모두 아기자기한 느낌의 소품 위주다.


남들도 다하는, 밥 먹다가.. 구경하다.. 차 마시다.. 오가는 사람 힐끔거리기 등 그렇게 느긋한 한 때를 보낸 후, 남편은 차로 먼저 시동을 걸기위해 내려가고 나는 계산을 위해 본관에 들어섰는데 '벌써 가시냐'며 한껏 넉넉한 웃음을 띄운 주인장이 주방장의 부상으로 음식 맛이 조금 덜해 죄송하다는 말을 보탰지만, 조그만 친절에도 귀가 얆은 나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메인보다 스프를 아주 맛있게 먹은 것으로 공치사를 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아주 잠깐만 달려도 비포장 도로에 하얀 날먼지가 폴폴 날려, 빈번히 오가는 차들끼리 한바탕 둘러쓴 끝에 닿은 순천만은, 이제 막 피기 시작하여 그 맛이 좀 덜하지만 생태보고인 갈대숲과 반대편의 황금들녘 둘다 '광활'하다. 작년 몇번, 이곳에 오기 전부터 전문 사진 작가의 렌즈를 통해 황홀한 일몰과 함께 누런 갈대숲과 갯벌의 붉은 구절초가 어우러진 환상이 자리하고 있는 어설픈 여행자의 눈에 다소 실망스러울 정도로 밋밋한 풍경인데, 벌써부터 갖가지 기종의 카메라를 든 무리들로 붐볐다. 때를 기다릴줄 모르고 건성건성인 사람과 일몰은 여전히 인연이 없다.



오는 도중 아침 일찍부터 돌산도 갯바위 낚시를 간 그의 회사 직원이 대어를 낚았으니, 회사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빙둘러 갯가까지 가고 싶었으나 그의 마음은 벌써 싱싱한 자연산 회 잔치 생각에 온통 쏠려있음이 훤히 보여 아쉬운 마음으로 뚝길을 좀 걷다가 자리를 떴는데...


가을아! 너 아직 덜 여물었더구나. 우리 두어주쯤 뒤, 다시 반갑게 만나자....



200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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