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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일상

선창포구

by 내오랜꿈 2007.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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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마지막 비행기를 놓친 남편의 부재와 출장끝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어져 토요일은 남편이 올 때까지 하루 종일 이불을 끌어안고 지냈다. 세상이 얼마나 좁던지... 예전에 내가 "갑"이었을 때 투자를 해 주면서 좋은 인연으로 남았던 사람들을 이번 출장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는데, 그 만남도 의외여서 반가움이 컸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 중요한 결정에서 도리어 내가 도움을 받게 될 줄.... 나로선 다행한 일이지만, 그 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오갔다.


남편이 귀가를 하고서도 우리는 오랫만에 휴일날 집에서 이틀을 오롯이 장판 디자인이나 하며 한가하게 보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종로에 나가 볼일도 보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리라던 계획이 진짜 계획으로만 그치고, 그렇게 집에서 삐질삐질 보내다가 콧바람도 쐴 겸, 어제 오후 잠깐 집에서 40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선창포구"에 갔다. 이곳은 넓은 갯벌을 안고 있는 작은 포구로 갯골을 따라 들고 나는 포구여서 반듯한 선착장이 없고, 조업을 하는 큰배들은 갯골 바깥에 대놓고 마을까지는 선외기로 드나드는 그야말로 아주 영세한 포구이다.


지금은 이미 갯벌도 메워져 아예 포구라는 이름만 남아 있고 사실은 물 한방울 없는 마른 포구로, 우리는 봄,가을 꽃게와 대하가 나는 철이면 생물을 사러 자주 다녔다. 더불어 금방 먹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젓갈을 오천원치만 청해도 그 양이 덤뿍이라 쬐끔 놓고 파는 백화점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가까운 지인들 손에 들려주기도 했었다. 주로 우리가 먹고 싶을 때도 찾았었지만, 손님이 왔을 때 어중간하게 요리 한답시고 깝죽대기보다는 속편하게 꽃게는 찜 하고, 대하는 즉석에서 소금구이로 내 놓으면 폼도 나고 대인기다. 영덕대게도 맛있지만 알이 꽉찬 꽃게는 서해가 아니면 구경하기 힘들고 무엇보다 속살의 들큰한 맛이 더 좋아서 철 마다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또 대하철인 가을에 운이 좋으면 배에서 직접 내린 씨알 굵은 자연산을 싸게 살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단골집도 있는데..), 무엇보다 살아 움직이는 각종 조개들이 싱싱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람 좋은 주인을 만나면 게를 살 때는 모시조개를 한 바가지씩 얹어 주기도 하는 인심이 있는 곳이었다. 특히 생새우가 많이 나는 곳이라 김장철 주말엔 다소 붐비기는 했어도 그리 멀지 않은 소래포구에 비할 바도 아니고, 처음 갈 때만 해도 별로 알려진 곳이 아니라 값도 싸고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오랫만의 나들이에서의 느낌은 마을 어귀에 각종 횟집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주말 뿐 아니라 평일에도 서울 차 넘버까지 주차장을 메울 정도로 입소문이 나서, 가격도 결코 만만치 않아 이제는 가기가 꺼려진다.


저녁으로 알이 꽉찬 암게를 사서 오랫만에 찜을 해 먹으리라는 포부(?)를 안고 갔건만 1kg 가격을 듣고는 그만 뒤로 자빠졌다. 아무리 비싸도 암게가 35,000원을 결코 넘지 않았었는데 50,000원이나 부르는 것이다. 작은 어시장을 남편과 몇 바퀴나 돌기만 하다가 씁쓸한 마음으로 그냥 발길을 돌렸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인가..... 사진은 사지도 않은 터에 대놓고 찍지 못하고, 구경하는 남편의 등 뒤에서 몰래 찍은 것이라 확실히 많이 떨어진다.


written by 느티

2004 0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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