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지으면서 날씨에 민감한 것은 당연한 일. 씨앗 뿌리는 일부터 수확까지 자연을 상대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햇빛 한 줌이 아쉬워서 '인간이 마음대로 날씨를 TV 리모컨 조정하듯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황당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간의 경험으로 일기예보를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씨 정보부터 확인한다. 이 지역에 며칠간 비를 예보 하고 있다.
더 이상 나오지 않는 햇빛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 없어 밭으로 달려간다. 그동안 햇빛에 말리다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 첫물 고추와 두 번째 수확한 고추를 모두 집으로 가져왔다. 대기 중에 습기가 많아서 9부 능선까지 말린 첫물 고추에 곰팡이라도 피면 큰일이니까. 안방에 고추를 널고 보일러를 틀어놓고 말리기로 했다. 지금 상황에선 그나마 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뿐이다.
어머니께서 입원 중이시라 비어 있는 안방에 보일러를 틀었다. 자연상태에서 잘 말려지기를 빌고 또 빌었는데, 어쩔 수가 없다. 방에서 말리다 햇빛이 나면 즉시 마당으로 내어 잘 마무리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이 고추는 태양초일까? 아닐까? 내년부터 고추 농사를 수입원의 하나로 생각하고 농사를 지금의 두 배 이상 늘릴 계획인데, 건조기 구입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밭에는 날씨 때문에 수확 시기가 애매해진 붉은 고추가 줄줄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만져 보면 약간 꾸덕꾸덕해진 것도 있다. 돌이켜 보니 무조건 붉다고 딸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른다. 줄기에서 약간 꾸덕뚜덕해 있을 시기에 수확하면 말리는 작업이 훨씬 수월할 테니까. 이렇게 또 자연은 산공부를 시킨다.
비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할 일을 만들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예기치 않게 발을 다치면서 지난 번에 미처 다 옮기지 못한 대파 모종을 정식했다. 고추에게는 햇빛이 절실하지만 다른 작물에는 반갑고 고마운 단비다.
7월 22일 경에 씨앗을 뿌린 양배추가 벌레 피해를 크게 입지 않고 그럭저럭 자라고 있다. 같은 날 뿌린 청경채도 고만고만하게 올라왔는데, 서늘한 기온을 좋아하는 상추는 돋은 싹이 열에 하나가 될까 말까 할 정도로 발아 상태가 나쁘다. 30도가 넘는 고온이 계속 되었기 때문. 이제 좀 선선해진 느낌이라 다시 씨를 뿌렸다.
비 설거지를 끝내고 원두막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으니, 예보대로 비가 온다. 무심히 풀잎을 적시는 빗줄기를 바라보다 원두막에 누워 책을 집어 든다. 그 옆에서 무심한 듯 앉아 있는 삼순이가 바라보는 곳은 어떤 세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