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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여행

겨울산사에 찍은 짧은 발자욱 - 지리산 화엄사

by 내오랜꿈 2007.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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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리산 한화콘도를 이용 할 때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숙박이 목적인 우리같은 사람에게 가장 큰 불만은 비싼 입장료이다. 물론 문화재 관람료까지 포함된 가격이지만 재작년의 2,000 얼마인가 에서 인당 3,800원으로 인상되어 입구에서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짐을 풀고나니 밥을 먹기에는 다소 어중간한 저녁시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해질녁에 신라때 연기조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 화엄사를 찾았다. 개인적으로는 네번째 방문길이다. '지리산'하면 어느 한사람은 세상을 풍미한 儒學으로 장엄함을 칭송하였고, 또 한 사람은 지리산 곳곳에 그의 이름을 깊이 새긴 빨치산으로 유명하니, 지리산은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한 역사를 간직한 산이다. 그중에서도 아마 이 화엄사 계곡은 지리산 어느 계곡보다도 번화한 곳일 것이다. 화엄사 뒤로 노고단까지 오르는 약 10km의 등산로는 발의 피로가 유별나게 많이 느껴지게 하는 돌 계단길인데, 지리산 종주 산행에서는 반드시 이 구간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기도 하여 사시사철 크게 붐비며 관광지화 되어 있다. 그에 반해 운좋게도 내가 갔을때는 한적한 시간대여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화엄사를 내느낌으로 고스란히 안아올수 있었다. 


무엇이든 깔끔하고 산뜻한 것을 선호하는 요즘 세상에, 화엄사로의 발걸음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화엄사는 건물 배치에 있어서도 독특한 맛을 내고 있다. 우람하게 세워진 일주문을 지나서 각도를 조금 꺾어 북동방향으로 들어가면 금강역사, 문수, 보현의 상을 안치한 금강문이 나오고 이 분을 지나쳐 점차 땅의 높이를 달리하여 사천왕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른다. 이문은 금강문과는 서쪽 방향으로 빗겨놓은 데 독특한 멋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천왕문을 지나 다시 올라가면 보제루에 이르는데 다른 절에서는 그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방법과는 달리 루의 옆을 돌아가게 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직선 가람형태에서 느낄 수 없는, 절로 점점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는다. 절 내에는 동서 두 개의 탑이 사선방향으로 보이며 동쪽 탑의 윗부분 보다 한단 높은 터 위에 대웅전이 있고 서쪽 탑의 윗 부분과 각황전의 중층 전각이 맞닿아 보이는 극적인 공간미를 연출하고 있다. 또한 나한전과 원통전 등 작은 전각이 각각 각황전 및 대웅전과 같은 방향으로 자리 잡음으로서 공간적으로 폐쇄성과 개방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화엄사 각황전은 이름도 너무 유명하여 따로이 설명할 게 무에 있을까 싶다.(위의 사진참조) 일단 절에 들어섰을 때 그 위용과 고색창연함으로 사람을 자연스레 압도하니 말이다. 보제루는 단청을 하지않고 원목을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준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사찰은 문화재 또는 종교적인 성역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교지만 어쩌다보니 절집을 자주 찾게 되는데, 이른 아침시간이나 한나절의 번잡함을 피한 뜻밖의 보너스는 바로 자연이 가져다 준 고즈녁한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요란하지 않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법고에 이은 범종 소리였다. 경내를 돌아보며 그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자연 속에서 한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은 내 자신을 발견한 호젓한 시간이었다. 보통 문화재 앞에 서 있는 푯말에 그것에 대한 설명이 특징적으로 잘 지적되어 있지만, 나의 경우 대충 훓어보고 그 앞에 오래 서 있지 않는 편이다. 그 이유는 종파나 시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와 구조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깊은 혜안이 없기에 대부분 반이상은 이해가 안될 뿐더러 눈에 넣음과 동시에 잊어먹기 일쑤여서 나의 무식을 개탄하는 결과만 가져다 주는데, 눈이 귀한 남쪽지방에 사는 남편의 친구가 아이에게 응달에 눈꼽만큼 남아있는 눈자욱을 보여주려는 그 마음과 함께 나는 분위기를 더 중요시 하는 편이다. 그래서 중국 사찰의 웅장함이나 마치 정원같이 꾸며진 일본 사찰의 아기자기한 맛은 덜하지만 자연과의 융화를 최대한 고려한 것이야말로 우리 사찰만의 독특한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효대에 오르고 싶었지만 어둠이 짙어져 그만 돌아가자는 남편의 청에 못 이겨 발길을 돌렸다.


written date:2004 0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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