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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농사

풀을 키우는 고추밭

by 내오랜꿈 201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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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집에 갔는데, 큰어머니께서 아내의 얼굴을 보자마자 '고추밭이 풀천지라던데 우짤라고.' 하신다. 마을 정자에서 대부분의 낮시간을 보내는 동네분들이 큰어머니께 우리가 밭에 풀을 키운다고 소문을 낸 모양이다.

  

평생 농사일을 해오신 분들에게 제초제 없이, 비료 없이, 농약 없이, 어려운 고추 농사를 그것도 매일 알뜰살뜰 보살펴 주는 것도 아니면서 비닐조차 깔지 않고 농사짓는 걸 이해해주리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큰어머님의 걱정을 뒤로 하고, 드디어 우리도 고추밭에 남들 다 하는 '멀칭'이란 것을 하게 되리란 기대를 안고 밭으로 갔다.




동생에게 다른 곳은 손대도 절대로 풀 뽑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고추밭. 맨땅이 안보이게 초록풀로 쫙 깔 수 있을줄 알았는데, 겨우 이 정도 밖에 안자랐다니 풀에게 좀 실망이다.




예초기 돌릴 정도로 쑥쑥 자랐으면 좋았으련만 괜히 몸이 생고생하게 생겼다. 일단 장마철이 임박했으니 한 번 잘라주긴 해야할 것 같아서 숫돌에 낫 두 자루를 갈아서 아내와 둘이서 각각 한 고랑씩 맡아 풀치기를 한다. 살이라곤 눈만 빼꼼히 내놨는데, 일을 시작하자 마자 발목이 따끔거리는걸 보니 풀쐐기한테 제대로 한방 먹었나 보다.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고랑과 수박, 참외 고랑에 차례로 풀을 눕히고 나니 오전이 금방 지나간다.

 



고추밭을 만들면서 고추 모종이 뿌리 내리는데 게으름을 피울까봐 일부러 거름을 많이 하지 않았다. 물 부족인지 거름 부족인지 모르지만 고춧잎 색깔이 좀 옅은 느낌이다. 이러니 '비료해야 한다'는 코치 받기 딱 좋은 지경이다. 가까이 있으면 자주 들여다 보며 상태를 살필텐데, 멀리 있으니 이것이 한계다. 마침 이틀 후, 반가운 비 예보가 있어서 웃거름을 했다. 한 사람이 거름을 푹 떠 놓고 지나가면 다른 한 사람이 흙과 잘 섞어 덮는, 2인1조 작업이다. 

 



2주 전, 우리가 밭에 출근하지 않는 주에 은행발효액을 살포할 수 있게 물과의 비율을 처제에게 전수해 주었다. 고작 이것이 우리가 고추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이다. 노린재가 한두 마리 보인다. 앞으로 개체수를 얼마나 늘릴지, 두고 봐야겠다.

 

 


계획으로는 풀 치고 고추 줄까지 맬려고 했는데, 가뭄으로 이슬만 먹어서인지 생각보다 고추가 덜 자랐다. 줄매기는 다시 한 주 뒤로 미뤄진다. 아무래도 칠천 냥짜리 앉은뱅이 도구를 사야겠다. 하루 종일 다리를 쪼그리고 일한 날은 몇 배로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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