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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농사

고추 심기

by 내오랜꿈 2013.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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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야말로 본격적인 농사철이다. 우리 조상들은 곡우 전과 후를 본격적인 농사철의 기준으로 삼았다. '곡우'란 절기 이름 자체가 이미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자급의 목적이지만 어쩌면 우리한테는 가장 어렵고도 큰 농사격인 고추를 심으러 진주로 갔다. 마침 이 날은 오후 3시에서 6시 사이에 비 예보가 있어, 고추와 기타 몇 종의 모종을 심기에 안성맞춤이라 판단한 것. 아침 9시 무렵 종묘사는 이미 모종을 사러 온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몇 곳을 살피다가 비교적 웃자람이 덜하고 줄기가 굵어 보이는 곳에 방향을 정하고 일반고추 300포기, 청양고추 20포기, 오이고추 5포기, 가지 10포기, 토마토 20포기, 방울토마토 10포기, 조선오이 10포기, 참외 10포기, 수박10포기, 주키니호박 4포기, 단호박10포기를 구입했다. 전부 합해 7만원 선이니, 고흥보다 모종 값이 정말 싼 편이다. 




얼마 전에 고추 심을 땅에 거름 넣고 고랑을 대충 만들긴 했지만 다시 한번 북을 돋우고 반듯반듯하게 모양을 다지니 오전이 훌쩍 가버린다. 밭일에 도움되는 처제와 별 도움 안 되는 막내처제네 가족이 합류하여 함께 점심을 먹고 서둘러 사온 모종을 심는다. 풀잡기 무섭다고 처제는 비닐 멀칭을 하고 싶어하지만 우리가 2주에 한 번씩 와서 손 본다고 하면서 처제 의견을 깔아 뭉게버리고는 맨땅에 헤딩하기 시작한다.




원래는 40cm 이상 간격으로 홈을 파서 주전자로 물을 주고 심어야 하는데, 날씨가 도와주어 물주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모종은 살짝 흙을 덮는 시늉 정도로 얕게 심는다. 바람에 흔들려서 뿌리 발달을 촉진시킬 목적으로 말뚝 박기와 줄매기도 일이 주 지난 뒤 해주기로 했다. 어떤 작물이든지 간에 우리의 작물 기르기 기본 컨셉은 '스스로 병충해를 이겨낼 수 있게 만들기'이다. 그럴려면 무엇보다도 뿌리의 발육 상태가 좋아야 한다. 작물을 과도한 퇴비와 질소 비료에 의존하게 만들면 뿌리가 발달할 생각을 안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조그마한 병해충에도 쉽게 노출되고 그만큼 자주 농약을 쳐야 한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농약을 전혀 치지 않는 우리는 그래서 무엇보다도 뿌리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반듯반듯한 고랑에 고추를 다 심고 나니 오후 3시가 채 안 되었는데도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려 한다. 지금은 맨살을 드러낸 헐벗은 모습이지만 조금 있으면 온갖 풀들이 자리다툼 하고 고추와 경쟁하며 생육을 도울 것이다. 그 경쟁상태를 보며 열심히 풀도 베어 덮어주고 웃거름도 주고 해야 하는데 고흥-진주란 물리적 거리가 왠지 길게 느껴진다.

 



토마토 가지 등 나머지 모종들을 다 심고, 참깨 심을 밭을 정리 중인데 기상청에서 예보한대로 비가 온다. 고맙고도 반가운 비다. 이제 정말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이다. 

 

다음 날 할 일이 이만저만 많은 게 아니라서 고흥집으로의 귀가를 서둘렀다. 가져온 모종을 텃밭에 심고 장가르기까지 끝내야 한다. 그리고 고사리 등 산나물들도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채취해야 한다. 지금 이 철이 지나면 아무리 시간이 남아 돌아도 구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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