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마늘 심을 때가 돌아오자 우리 부부는 한참을 고민했더랬다. 마늘 농사를 위해 직접 농사 지어 확보해 둔 씨마늘을 어디에 심을까를 두고서. 고흥에는 텃밭 수준의 땅밖에 없는 터라 농사 지을 땅을 새로 구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주변에 놀고 있는 땅이 아무리 많아도 말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아내의 진주 친정집 밭에 심기로 했다. 거리가 멀어 자주 오가며 돌보지는 못할 테지만, 그나마 마늘이 월동 작물이라 여름 작물에 비해 한결 손이 덜 가고 동물들의 피해도 없는 작물이기에 가능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공으로 되는 것은 없는 법. 장인 어른 돌아가신 지 삼 년째, 제대로 돌보지 않은 진주의 밭은 그야말로 잡초들의 온상이다. 아내의 친정집을 홀로 지키고 있는 처제가 방학과 주말을 이용하여 조금씩 돌보고 있기는 해도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찬 평수다. 어쩌다 우리 부부가 진주나들이 때 일손을 덜어 준다고는 해도 그야말로 새발의 피 수준이다.
그렇게 해서 지난 해 11월은 주말을 이용하여 고흥과 진주를 오가며 마늘 심는 작업에 올인했다. 손에 물집 잡혀 가며 풀 정리하는데 2주를 보내 버리니 어느덧 11월 중순. 이미 고흥 들판의 마늘밭은 싹이 돋아나 잎이 밑으로 쳐질 정도로 푸르런 자태를 뽐내고 있을 때였다. 언제부터인가 마늘 심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더니 요즘은 아예 9월 말에 심는 경우도 심심찮게 본다. 아마도 난지형 마늘이고 조금이라도 일찍 수확하여 좋은 값을 받으려는 농가들의 욕심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짐작한다. 늦은 시기를 감안해서 우리는 한지형 마늘인 6쪽 마늘 위주로 파종하기로 했다.
진주에서 밭 만들기를 하고 고흥에 오면, 주중에 마늘을 까서 씨로 쓸 것을 골랐다.
주말을 오가며 하는 일이라 한꺼번에 완료하지 못 하고 두 번(11/10,11/17)에 걸쳐 나누어 심었다. 한지형 마늘이라 싹만 겨우 튀워 겨울을 보내야 하기에 엄동설한에 얼어 죽지 말라고 짚과 왕겨로 이불 삼아 두툼하게 덮어 주었다. 10월 중순에 처제가 먼저 심어서 싹이 난 곳은 왕겨를 뿌렸는데, 해마다 마늘을 심던 곳이다. 짚을 덮은 곳은 주로 참깨와 콩을 심던 곳이고, 마늘은 처음이다.
팔순이 넘은 아내의 큰어머니께서 구경 오셨다가 거름끼도 없는데 잘 될까 하며 염려가 크시다. 괜히 헛심만 쓰게 될까봐, 집에 쓰고 남은 요소 비료가 있는데 좀 갖다 뿌리라고 재촉이시다. 그렇지만 우리의 농사 철학은 되도록이면 자연재배에 가까운 스텐스를 유지하기에 비료와 농약, 비닐멀칭 등은 괄호 밖이다.
그렇게 마늘을 심은 지 3달이 가까워 오는 동안 김장때 잠깐 둘러보고는 날씨가 추울 때마다 얼어 죽지는 않았는지 걱정이었는데, 오늘 처제가 보내온 사진을 보니 12월에 눈도장 찍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지만 그런대로 무난하게 잘 자란 것 같다.
노지에서 추위를 잘 견디고 살아 남은 이쁜 것들. 그야말로 싹만 튀워 겨울을 보내는 6쪽 마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제부터 웃거름도 주고 잡초도 뽑아 주고 해야 하는데 얼마나 손이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