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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베냐민, 비트겐슈타인

'너'에게로 가는 길 - 철학은 닫힌 창문을 열어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

by 내오랜꿈 2019.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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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 <논리철학논고완성

 

1914년 여름빈 최상류층 아들유럽에서 가장 큰 기업의 후계자이미 세기의 철학적 재능을 인정받았던 케임브리지 대학생은 전쟁 발발 며칠 만에 상등병으로 자원했다갈리시아러시아이탈리아 최전방에서 죽음을 목격하고총을 쏘며보초를 서는 긴 밤에 자신의 걸작, <논리철학논고>―철학의 큰 발걸음이자 마지막 걸음이라고 스스로 확신했던 작품를 완성했다.

 

이 걸작으로 그는 무엇을 성취했을까?

 

나는 본질적인 점에서 (철학의모든 중대한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이 점에서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이 책이 지닌 가치의 두 번째 측면은이들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성취한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이 책 스스로가 보여준다는 데 있다.”(<논고>, 16~17)

 

인생의 실질적인 조건, 삶의 의미와 가치와 희망을 주는 모든 것에 대해 이 '철학책'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바로잡지도 않는다그러나 어째서 철학이 근본적으로 그것을 할 수 있는지어째서 논리적 결말주장타당한 이론이 삶의 참된 물음을 건드리지조차 못하는지를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작품으로 명확히 보여주었다고 믿었다.

 

<논리철학논고>가 논리적 언어분석으로 제시한 내적한계’ 영역인말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은 오직 사실 세계뿐이고이 영역에서만 사실을 의미 있게 말로 표현할 수 있다그러나 사실 세계를 성질 그대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자연과학즉 비트겐슈타인의 확신처럼 철학과는 아무 상관없는 어떤 것의 과제다그러므로 그가 보기에 문제 또는 진정한 철학적 해법은 다음과 같은 확신에더 정확히 말해다음과 같은 느낌에 존재한다.

 

비록 모든 가능한 과학적 물음들이 대답된다 해도우리는 우리의 삶의 문제들이 여전히 조금도 건드려지지 않은 채로 있다고 느낀다그렇다면 당연히 아무런 물음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그리고 바로 이것이 해답이다.($6.52)


삶의 문제의 해결은 이 문제의 소멸에서 발견된다.($6.521)

 

실증주의적 시대정신은의미 있게 말할 수 있고 주어진 상황에서 의심 없이 증명할 수 있는 대상(이른바 사실)만이 삶에 의미가 있다고 확신했던 반면비트겐슈타인은 이런 과학적인 세계관의 근본적인 방법인 논리적 분석을 이용해 정확히 그 반대를 증명해 보였다우리가 사는 삶과 세계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다'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접근 방식은 엄밀히 과학적이지만그의 윤리는 실존주의적이다선한 삶은 객관적인 근거가 아니라 주관적인 결정을 기반으로 한다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말로 표현되지’ 않고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행위에서 드러나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1919년에 바로 그것을 하기로 결정했다.


비트겐슈타인의 군 생활을 돌아보면전체가 자살 시도처럼 비칠 정도로 그는 언제나 가능한 한 최전방에 가능한 한 가장 위험한 전장에 자원했다그는 강박처럼 반복해서 <전쟁일기>에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을 기록했다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죽음에 노출되는 한계상황에서 그는 비로소 진정한 자아를 대면한다. 1916년 여름 갈리시아 전장에서 쓴 <전쟁일기>를 보면키르케고르와 톨스토이의 논리적 언어분석과 기독교적 실존윤리가 전쟁 동안 비트겐슈타인의 사상과 얼마나 밀접하게 맞물렸는지가 드러난다.


행복하게 살려면세계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다.

나는 그러면나를 구속하는 것 같은 이른바 타인의 의지와 일치를 이룬다달리 표현하면, ‘나는 신의 의지를 따른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된 나쁜 삶의 최고 징후이다.(<전쟁일기>, 169)

 

선과 악은 주체를 통해서 비로소 등장한다그리고 그 주체는 세계에 속하지 않고세계의 경계에 있다.

선과 악은 확실히 세계가 아니라 자아다자아나 자신은 심오한 비밀이다.(<전쟁일기>, 174)


전쟁도 철학도그의 인생자체였던 수수께끼와 불행에서 그를 해방하지 못했다그는 달라져서 돌아왔지만해답을 얻어 오진 못했다이탈리아 전쟁 포로로 캄포 카시노에 있던 몇 달 동안그는 내면에 남은 혼돈과 싸우기 위해 매우 급진적인 계획을 준비했다첫째형제자매에게 전 재산을 넘겨주기둘째다시는 철학하지 않기셋째정직한 노동으로 살기 그리고 가난하게 살기비트겐슈타인은 전쟁에서 돌아오자마자 단 며칠 안에 이 계획을 단호하게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다

 

 

       ▲ <철학적 탐구>                                        ▲ <논리철학논고>



$$ 다른 사람에게로 가는 다리

 

어떤 표현에 어떤 상징을 사용해도 되는지를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상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표현해도 됩니다.”(<러셀에게 보내는 편지>)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상징은 모든 의미 있는 표현의 기본 토대이다그런데 왜 스스로 자신의 상징이나 마차가지인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는 거리가 먼시골초등학교 교사로서의 삶을 선택했을까→ 우울증아스퍼거증후군동성애적 취향⟹ 모를 일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누나 헤르미네는 뛰어난 철학적 재능을 지닌 동생이 시골초등학교 교사로 살겠다고 하자 그것은, ‘마치 평범한 상자를 열기 위해 정밀한 첨단 도구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이에 비트겐슈타인은 비유로 답한다. ‘누나는 닫힌 창문을 통해 지나가는 사람의 기이한 행동을 보며왜 저러나 의아해하는 사람 같아밖에서 거친 폭풍이 불고 있고 행인은 폭풍에 휩쓸리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란 걸 모르는 거지.’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기이한 행동을 보며 왜 저럴까?’ 하는 의문이것은 거실 벽난로 앞에 앉아 의심 실험을 하는 데카르트의 철학적 의문, <성찰>(1641)을 생각하면 된다. <성찰> 이전에 이미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우리가 매일 인식하는 세계가 사실은 그림자 세계이고 가짜 세계에 불과하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닫힌 창문’ 뒤에 선 사람에 관한 비트겐슈타인의 비유는근대 인식철학과 주체 철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데카르트의 <성찰>의 방법과 동일하다.


이 획기적인 작품에서 데카르트는 그의 철학적 의심 실험을 시작한다거실 벽난로 앞에 앉아 처음에는 순수한 눈으로 바깥을 내다본다그리고 의심하기 시작한다창밖에 비를 맞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정말로 사람일까혹시 외투를 입고 머리에 모자를 쓴 기계가 아닐까생각하는 주체로서 각자 자신의 뇌에 갇혀 있는 인간은다른 사람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엇을 알까다른 사람의 내면에서 폭풍이 몰아칠까아니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실제로 영원히완전히 고요할까?


근대 주체철학의 딜레마??? ‘고유한 경험 주체성 안에 완전히 갇힌 존재로서 바깥 세계 또는 다른 사람의 내면을 어느 정도까지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인식론의 기본 문제를 이미지화한 결과물이 바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어려운 이유는 사유의 이미지화가 언어의 비유상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은 아닐까예컨대 <철학적 탐구>의 그 유명한 은유 또는 비유처럼. 당신의 철학 목표는 무엇인가?” - “유리항아리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파리에게 열려주는 것이다!”

 

이른바 바깥 세계뿐 아니라 밖에 있는’ 모든 사람과의 접촉이 철저히 차단되거나 방해될 수 있다는 가정에는 서양철학의 근본적인 의심이 담겨 있다사물의 진정한 본질로부터 우리를 분리하는 무언가가 있을까다른 사람의 진짜 경험과 감각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하는 무언가가 있을까만약 그렇다면그것은 누구 또는 무엇일까?

 

철학은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자유로 가는 창문을 열어준다그는 이것을 <논리철학논고>에서 행복이라고 명명했다철학 활동은 닫힌 창문을 열어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를 통해 다른 창문을 열고 에게로 가는 다리를 놓는 데 성공했고그리하여 정신적 고립에서 빠져나와 이해되는 존재로서의 자유로 가는 길을 찾았다고 확신했다.

 

행복한 사람의 세계는 불행한 사람의 세계와 다른 세계이다.”($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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