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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농사

감자 파종(2019)

by 내오랜꿈 2019.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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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추위가 어떠니 폭설이 내렸니 어떠니 해도 봄기운은 이미 남도 들판에 수북이 내려앉고 있다. 양지바른 밭둑엔 벌써 쑥이 고개를 내밀었고 텃밭 여기저기엔 냉이, 꽃다지, 달래가 파릇하다. 개중에 성질 급한 냉이는 벌써부터 꽃대를 올린 것들도 있을 정도다. 봄이 시작되었다는 건 농사도 시작되었다는 의미.




▲ 벌써 꽃대를 올리는 냉이. 이곳에서 냉이 제철은 겨울이다. 봄냉이는 이미 늦다.


봄이 오기 전부터 파종을 준비해야 하는 작물은 아무래도 감자가 첫손에 꼽힌다. 지난 주말 파종을 목표로 가을에 수확한 씨감자를 자르고 싹을 틔우기 시작한 지 일주일. 파릇한 눈들이 씨감자 조각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햇빛을 제대로 쬐지 못하고 습기를 머금은 상태에서 자라는 흰색의 굵은 눈이 아니라 충분한 햇빛을 보고 자란, 보랏빛이 도는 연두색의 가는 눈이다. 감자 싹 틔우기는 가늘고 파릇파릇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올라오도록 해야 한다. 건드리기만 하면 툭툭 부서지는 희멀건 색깔의 굵은 눈은 잘못 틔운 것이다. 지금 파종하면 감자 싹이 나오기까지는 기온이나 강수량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나겠지만 대략 4~5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땅 밖으로 새순이 돋아나왔을 때 냉해 우려만 없다면 감자는 될 수 있는 한 조금이라도 일찍 파종하는 게 생육에 유리하다.




▲ 감자 싹 틔우기. 씨감자용 감자 싹은 옅은 보라빛이 나는 연두색으로 작고 단단하게 나와야 한다. 음지에서 희멀건 색을 한 채 길고 두껍게 나와 쉽게 부서지는 싹은 좋지 못하다.


참고로 이야기 하자면 감자는 원래 냉해에 강한 호냉성 작물이다. 감자의 원산지는 해발 3,500m 고지인 안데스 산맥의 구릉지대니까. 작물학 교과서를 보면 감자의 잎이나 덩이줄기의 생육에 가장 적합한 온도는 15~21℃ 정도다. 이건 일평균기온을 말하는 것이니까 실제로는 낮 온도는 20~25℃, 밤 온도는 10~15℃일 때가 가장 좋다는 말이다. 이보다 온도가 높으면 잎이 작아지고 주름이 생기며, 27~30℃ 이상에서는 땅속줄기의 형성과 덩이줄기 비대가 정지되고 호흡작용이 왕성하여 동화물질이 덩이줄기에 쌓이기보다 호흡을 통하여 소모되는 양이 많아진다. 쉽게 말해서 일평균기온이 25℃를 넘어가는 우리나라의 6월 하순 이후 기온에서는 감자를 키워봐야 제대로 굵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외가 있다면 일교차가 큰 고랭지 지역 정도다. 낮에는 비교적 온도가 높더라도 밤 온도가 낮으면 동화물질의 축적에 유리하므로 밤낮온도차가 큰 것이 덩이줄기의 비대를 충실하게 하는데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감자가 자라기에 적당한 시기는 4~5월과 9~10월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가을에는 밤낮 온도차가 크므로 덩이줄기 비대에 유리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감자 재배는 봄파종이 대세다. 가을파종의 경우 충분한 재배일수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감자는 싹이 나고 최소 80일 정도는 지나야 수확적기(파종 후 110일을 수확적기로 본다)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내륙산간지역은 겨울이 일찍 찾아온다. 10월 중·하순이면 서리가 내리기에 도저히 감자의 적정 생육일수를 맞출 수가 없는 것. 그래서 우리나라의 감자 가을재배는 제주도나 남도 해안가 지방에서만 이루어진다. 이 경우에도 제주도가 아닌 지역에서의 가을재배는 수확적기를 파종 후 95일 정도로 낮춰 맞추고 있다.



▲ 감자 심기. 폭 120cm 평이랑의 양 가장자리에 홈을 파고 씨감자를 넣은 뒤 이랑 가운데를 파 감자 넣은 곳을 덮으면 높이 20~25cm의 훌륭한 감자 두둑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 감자 두둑에 주변의 마른풀이나 작물잔사를 덮어주면 혹시 모를 냉해피해는 물론 빗물에 흙이 씻겨 내려가는 걸 막을 수 있다.


감자 파종 후 냉해 피해 여부는 각자의 사는 지역에 맞춰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경우 지난 10년간의 농사일지를 보면 3월 15일 이후 서리가 내린 경우가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정도다. 며칠 연속되는 된서리만 내리지 않는다면 감자는 저온에서도 충분히 충분히 견딘다. 그렇다면 이 지역의 경우 2월 15일을 전후해서 감자를 파종해도 괜찮다는 말이다. 별 내용 없는 농사일지라도 한 10년 쓰다 보니 날씨의 추세만큼은 확실하게 머리 속에 각인된다.


오늘 감자를 심을 곳은 작년 가을 강황을 수확하고 마련해 둔 평이랑 4개다. 감자 농사 짓는 사람들은 이 평이랑에 어떻게 감자를 심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뭐 못 심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평이랑도 가운데 흙을 파내 양쪽으로 쌓으면 훌륭한 감자 두둑이 된다. 이 평이랑은 너비가 120cm다. 양쪽 가장자리에서 30cm 되는 곳을 괭이로 긁어낸 뒤 씨감자를 적당한 간격으로 넣고 이랑 가운데의 흙을 긁어 이쪽저쪽의 씨감자를 덮어 준다. 이렇게 하면 20~25cm 높이의 감자 두둑이 쉽게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관리기는 전혀 쓰지 않는다. 오로지 괭이와 삽, 쇠스랑으로만 만든다. 힘들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이 밭 흙이 사질양토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유기물로 멀칭을 해두었던 터라 땅이 보슬보슬하기에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다.



▲ 가끔씩 비교 테스트를 위해 씨감자 넣는 면을 가지런히 할 경우도 있으나 수확할 때는 대부분 이런 사실을 까먹는다.


씨감자를 넣을 때 절단면을 위로 하느냐 아래로 하느냐를 가지고 논란을 벌이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자신의 방법이 수확량이 더 많다거나 감자가 더 굵어진다는 걸 내세우면서. 그러나 객관적 자료로 증명된 건 하나도 없다. 그저 주장만 있을 뿐이다. 특히나 '자닮' 쪽 사람들이 절단면이 위로 가게 하는 게 수확량이 많다는 걸 퍼트리는 주범들인데 말로만 주장하지 말고 실험 포장에서 증명된 객관적 데이타를 한 번이라도 보여 주었으면 한다. 내가 아는 한 농진청이나 원예특작과학원의 그 어떤 감자재배 관련 자료에서도 씨감자 절단면을 놓는 방향을 가지고 언급하는 건 없다. 나는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넣는다. 복불복이다. 물론 어쩌다 재미 삼아 한두 이랑 정도는 절단면의 방향을 가지런하게 놓을 경우도 있다. 눈짐작으로나마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하지만 나중에 수확할 때는 잊어먹기 일쑤다. 어느 이랑에 어떻게 넣었는지를.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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