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고속도로가 막히니 공항이 북적이니 하는 등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로 제법 요란한 모양이다. 나 역시 단 하루만이라도 이 요란함에 편승해 볼까 했는데 새벽부터 내리는 세찬 빗줄기가 내 소박한 바램을 동반한 강풍 속으로 날려버린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반도에서 가장 먼저 피는 철쭉꽃을 보기 위해 집 뒤로 연결된 천등산 산행을 계획했는데, 비뿐 아니라 서 있기조차 힘든 강풍까지 몰고 왔으니 현관문 나서기도 버거운 날씨다. 더 아쉬운 건 올핸 고사리, 고비 꺾는 일도 이번 비로 인해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사실.
▲ 고사리(아래)와 고비(위)
▲ 고사리(좌)와 고비(우)
중부지방과 달리 남도 바닷가 지방은 5월 초가 지나면 고사리, 고비가 대부분 피어버린다. 볕이 안 드는 응달 산비탈 지역은 중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일부러 음지 찾아다니면서 꺾기에는 발품이 아까울 터. 올핸 둘 다 주말에만 시간을 내야 했던 터라 꺾은 고사리, 고비가 예년에 비해서는 턱없이 모자란 양이기에 조금 아쉽긴 하다. 뭐 그래도 두 식구 먹을 양은 충분한데 예년처럼 주변에 나누어주는 건 접어야 할 듯하다.
비 오는 날, 거실에 앉아 TV 보며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가 뜯은 산나물 다듬는 일이다. 고사리, 고비 같은 봄나물은 생으로 보관하기가 어려우니 데쳐서 말린 뒤 묵나물 상태로 보관한다. 고사리는 그냥 삶아도 되지만 고비는 데치기 전에 하얀 솜털을 전부 제거해야 한다. 두 시간 채취하면 서너 시간 다듬는 게 기본이다. 채취하는 시간보다 다듬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많은 셈. 이렇게 다듬은 뒤 끓는 물에 데쳐서 말리는데 고비는 찬물에 두어 시간 정도 담궈서 쓴맛을 우려낸다. 그런 다음 말리면 고사리는 볕 좋은 날의 경우 하루면 다 마르지만 고비는 이삼 일 정도 말려야 한다. 그만큼 고사리보다 섬유소 외의 다른 성분이 많다는 뜻이다.
▲ 데치기 전 고비 다듬기. 꺾는 시간보다 다듬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고사리와 고비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고비는 고사리목 고비과로 분류된다. 같은 종이 아니라 과에서 분리된다는 건 그만큼 연관관계가 먼 식물이라는 이야기다. 식물 분류학상으로 따지자면 고사리와 고비는 쑥, 민들레, 상추 사이의 차이보다 인과관계가 더 먼 식물인 셈이다. 쑥, 상추, 민들레는 분류학상 모두 같은 국화과 식물이다. 지역에 따라서 고사리는 채취해서 식용으로 쓰지만 고비는 먹지 않는 곳도 있다. 내가 사는 지역만 하더라도 고비는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집 주위에서 자라는 고비는 항상 우리 차지가 된다. 사람들이 고비를 꺼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사리보다 쓴맛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조리할 경우 고비는 확실히 고사리보다 쓰다. 그러나 그 쓴맛만 제거한다면 고비는 고사리보다 훨씬 나은 식감과 풍부한 맛을 제공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고비를 고사리보다 더 높게 쳐주기도 한다. 나 역시 고사리보다는 고비를 선호한다. 고사리보다 풍부한 맛은 물론이고 한결 부드럽고 풍부한 식감을 느낄 수 있기에.
▲ 고사리, 고비 삶아서 말리기. 볕 좋은 날 고사리는 하루, 고비는 3일 정도 말려야 한다.
고비 다듬다 창밖을 보니 담장 옆 참다래나무 가지를 흔드는 바람이 장난 아니다. 잔뜩 골난 영등할미가 딸, 며느리를 함께 데리고 오면서 힘 조절이 안 되는 모양새다. 비에 동반된 강풍은 농사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 바닷가 마을은 바람 잘 날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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