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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장 담그기 - 간장용으로...

by 내오랜꿈 2018.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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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 만들어 띄운 지 90여 일. 실외에서 말릴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낸 터라 볕 좋은 몇몇 날을 제외하고는 실내에서만 말리고 띄우기를 지속했다. 덕분인지 메주 표면은 돌처럼 딱딱하고 눈에 보이는 곰팡이 종류보다는 노란색이나 흰색의 균사 덩어리들이 불규칙하게 얼룩져 있다. 



 90여 일, 실내에서 말리며 띄운 간장용 메주 표면

메주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출처 : 윤숙자, 『한국의 저장 발효 음식』, p.28)


잘 띄운 메주는 눈에 보이는 곰팡이가 아니라 Bacillus subtilis나 Bacillus pumilus 같은 바실러스속(屬) 세균들이 얼마나 많이 증식했는가가 관건이다. 메주의 콩단백질을 분해하여 아미노산으로 만드는 건 곰팡이가 아니라 주로 세균이 하는 것이니까(발효학 관련 책을 보면 메주 발효의 99%는 세균이 좌우한다고 말한다). 유익한 세균의 증식을 위해서 메주는 최소한 세 달 정도는 말려야 한다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한두 달 말린 메주를 온돌방에서 2차로 띄우니 어쩌니 하는 사람들 보면 '소 귀에 경 읽기'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덜 마른 메주를 높은 온도에서 띄우면 메주의 청국장화가 급속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더 나쁘면 부패균이 증식할 수도 있다). 청국장 발효와 간장·된장 발효는 차원이 다르다. 간장이나 된장 발효는 오로지 바실러스균이 지배하는 청국장 발효와는 달리 내염성이 강한 효모나 세균, 곰팡이가 오랜 시간을 두고 골고루 작용한다. 



 집 뒷산에서 잘라온 엄나무 가지. 소금물에 떠오르는 메주를 누르는데 사용한다.


 메주를 씻어 항아리에 담고 천일염의 불순물을 거르기 위해 무명천을 체에 받친 다음 소금물을 붓는다.


3월의 마지막 주말, 장 담그기를 마무리했다. 뒷산에 올라 엄나무 가지를 잘라 다듬고 항아리를 소독하고 메주를 씻어 물기를 빼면 장 담글 준비는 끝난다. 미리 녹여 불순물을 가라앉힌 염화나트륨 농도 17~18%의 소금물과 숯, 고추가 준비되어 있다면 말이다. 재료, 특히 메주만 준비되어 있다면 장 담그기는 그야말로 라면 끓이는 것보다 더 쉬운 일. 혹 장 담그기가 무슨 대단한 일인 것처럼 어려워서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먼저 당신의 게으럼을 한 번 의심해보시는 게 어떨까 싶다.


80L 항아리에 14Kg의 잘 띄운 메주를 차곡차곡 쌓고 무명천을 받친 체에 염분 농도 17~18% 소금물 64L를 부은 뒤 떠오르는 메주를 눌러주면 장 담그기는 끝난다. 사람들에 따라 숯이나 고추, 계피, 대추 등을 넣기도 하지만 안 넣어도 특별히 문제될 건 없다. 염화나트륨 농도 18% 소금물에 숯이나 고추를 넣고 안 넣고가 부패균의 증식을 억제하니 안 하니 하는 건 지나친 억측이다. 그저 그렇게 믿고픈 마음의 안식이 '신격화'되어 떠도는, 영혼 없는 말 정도로 생각하시기 바란다. 18% 소금물(바닷물보다 염화나트륨 농도가 5배나 높다)에 생존할 수 있는 세균은 그리 많지 않다. 



 메주를 차곡차곡 쌓은 뒤 소금물을 붓고 엄나무 가지를 교차한 다음 불에 달군 숯과 고추를 넣어 준다.

 마지막으로 오래된 씨간장을 1.5L 정도 넣어 준다.


소금물에 떠오르는 메주를 눌러 주기 위해 대나무를 많이들 이용하는데 나의 경우는 재작년부터 엄나무를 이용하고 있다. 기왕에 꼭 해야 할 과정이라면 대나무보다는 엄나무가 조금이라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올해는 엄나무 가지를 두껍게 잘라서 서너 겹 반복해서 눌러두었다. 올해 장 담그기는 된장보다는 간장을 얻기 위한 것인지라 소금물을 넉넉하게(메주 양의 4.7배 정도) 부은 뒤 7~8년 된 씨간장도 1.5L 정도 넣어 주었다. 이제부터 6개월 이상 숙성시킨 뒤 걸러서 발효시키면 최상급의 맛을 내는 간장이 될 것이다. 장 담근 지 4~50일 지나 장 가르기를 통해 된장과 간장으로 분리해서 만드는 간장과는 차원이 다른 풍부한 맛을 낼 것이기에. 간장 뺀 메주를 버릴지 재활용할지는 천천히 생각해보아야 할 거 같다. 어릴 적 고향 동네에서는 된장을 따로 담그기에 간장 뺀 메주는 쇠여물로나 쓰였지만 그래도 메주인데 다른 재료들(보릿가루나 고춧가루 등)을 잘 혼합한다면 괜찮은 '집장'이나 '막장'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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