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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장 담그기(4) - 메주, 소금물 양에 따른 된장, 간장 양의 변화

by 내오랜꿈 2018.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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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퍼센트(%)냐? 보오메(Bé)냐?

2. 소금:메주:물 = 1:1:4

3. 말날, 신날, 손 없는 날

4. 메주, 소금물 양에 따른 된장, 간장 양과 염도 변화


1) 재래식 장 담그기만 있는 건 아니다.


내 고향은 울산 어느 산골이다. 울산, 경주를 축으로 하는 경남 동부 해안지방은 우리 나라 전통 재래장(醬) 문화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바로 간장과 된장을 처음부터 따로 담궜다는 것. '장 가르기'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재래장 담그는 법은 메주를 띄워서 적당한 염도의 소금물에 넣어 40~60일 정도 지난 뒤 간장과 된장으로 분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장 가르기를 언제 하느냐에 따라 된장 맛이 더 좋을 수도 간장 맛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장 가르기 할 때 간장이나 된장에 다른 무언가를 첨가하지 않는다면 장 가르는 시기가 40일에 가까우면 된장 맛이, 60일에 가까우면 간장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요즘이야 개량된장 담그는 법이 보편화되어 있는 터라 된장, 간장을 따로 담그는 게 전혀 이상할 것도 없지만 개량메주 띄우는 법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왜 유독 울산, 경주 지역만 간장, 된장을 따로 담궜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혀진 건 없다.


된장, 간장 맛이라는 것이 결국은 메주 양과 메주의 콩 단백질이 장 발효를 거쳐 얼마만큼 아미노산화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면 된장, 간장을 한꺼번에 만드는 것보다는 따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풍부한 맛을 내는 건 당연지사. 장을 가를 필요도 없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된장 항아리는 메주를 으깨 장물과 혼합하여 통째로 된장으로 발효시키고, 간장 항아리는 메주를 건져내고 장물만 걸러내 간장으로 발효시킨다. 간장 항아리에서 건져낸 메주는 어떻게 했을까? 쇠여물로 쓰였다.


이런 된장 맛에 길들여진 혀는 간장 뺀 된장에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골집을 떠나 부산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제일 곤혹스러웠던 것 가운데 하나가 간장 뺀 된장의 역겨움이었다. 하필이면 부산 지방은 생선 등 해산물이 풍부한 지역이기에 된장보다는 간장을 휠씬 더 중요하게 여기는 터라 장 가르기는 두 달을 넘기고 나서 하는 게 기본이었다. 장 담근 지 60일이 훌쩍 지난 메주를 건져내 만든 된장. 내 고향에서는 소에게나 주던 것이었는데 부산에서는 그게 된장으로 변해 있었다. 70년대 중반에 반찬이 뭐 별거 있었으랴. 된장국, 된장찌개, 김치가 하루라도 빠질 리가 없었을 텐데 된장으로 만든 음식 먹기가 역겨웠으니 12살 어린 아이가 먹을 반찬은 멸치볶음 아니면 '오뎅'(당시에는 어묵이란 말도 없었던 것 같다)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후로도 고향에서와 다른 된장 맛은 오래도록 이 소년을 괴롭히게 된다.




▲ 장 가르기(간장)


2) 메주 양에 따라 만들 수 있는 된장, 간장 양


간장을 빼지 않는 장 담그기라면 메주와 소금물 비율은 얼마로 해야 할까? 전통 재래장 담그기에서 소금:메주:물 비율은 1:1:4를 기본으로 하되 메주와 물 비율은 지역에 따라 담그는 시기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한다고 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장 가를 때 간장을 얼마만큼 원하느냐에 따라서도 소금물 양을 조절할 수 있다. 만약 간장을 원하지 않는다면 물 양은 얼마로 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은 메주의 1.5배다. 곧 메주 10kg으로 장을 담그려면 최소한 물 15L가 필요하다. 메주 10kg으로 소금:메주:물의 비율을 1:1:4로 했다면 된장 25kg, 간장 25L를 만들 수 있다(소금 비중 때문에 늘어나는 약간의 오차는 무시하기로 하고). 소금:메주:물 비율을 1:1:3으로 했다면 된장 25kg, 간장 15L를 만들 수 있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메주 10kg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된장은 애초 메주 무게의 2.5배인 25kg 정도다. 물론 장물을 조금 넉넉하게 잡아서 묽게 하면 늘어날 것이고 조금 빡빡하게 잡으면 줄어들 것이지만 가장 적절한 비율은 메주와 물 비율이 1:1.5 정도라는 건 일단 먼저 기억하도록 하자.


이 비율을 알고 있다면 장 담그면서 원하는 간장 양에 따라 소금물 양을 조절할 수 있다. 메주 7덩어리를 구입한 뒤에 무게를 재 보니 14kg이라면 일단 된장 양은 무조건 35kg 정도는 확보된다(싫어도 어쩔 수 없다. 기본으로 나오는 양이니까. 너무 많다고 생각하면 메주 양을 줄여야 한다). 소금물이 최소한 21L는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집에 있는 항아리가 하나는 40L짜리고 하나는 20L짜리라면 20L짜리에 채울 간장을 만들어야 하므로 소금물을 20L 정도 더 추가하면 된다. 그러면 애초에 장 담글 때 메주가 14kg이었으니 물은 41L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때 소금물의 염도를 18%로 해서 장을 담근다면 소금은 9kg이 필요하다. 만약 간장을 10L만 얻고자 한다면 물은 31L만 준비하면 된다. 소금은 6.8kg 정도가 필요하고(뭔 놈의 숫자가 자꾸 이리 바뀌나? 하시는 분들은 제가 쓴 글들을 다시 한 번 읽고 공부하셔야 한다). 된장을 담글 때 필요한 최소한의 물은 메주 무게의 1.5배이고, 간장 필요량에 따라 물을 추가하면 된다는 것. 이걸 기억하면 장 담그기가 훨씬 더 쉬워지고 여러 가지 장의 원리에도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그러나 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간장 양에 따라 소금물이 가감되므로 처음 담글 때 소금물 염도는 같아도 장 가르기 할 때 된장, 간장 염도는 간장 양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메주 14kg으로 간장을 빼지 않고 된장만 만들었다면 소금물은 21L만 들어갔을 것이다. 소금은 4.61kg이었을 테고. 그런데 메주에도 일정 정도 수분이 들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간장을 넉넉하게 만들 경우에는 소금물 양이 늘어나니까 메주 수분함유량에 따른 장 염도 변화가 크지 않겠지만 간장을 빼지 않을 경우에는 메주 수분함유량은 장 염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위에 든 예에서와 같이 메주 14kg으로 간장을 빼지 않고 된장만 만들었다면 소금물 농도를 18%로 맞춰도 메주 수분 함유량이 20% 정도라고 보면(메주 수분함유량이 보통 15%이고 메주 씻을 때 약간의 수분이 첨가된다는 걸 반영) 장 염도는 16.13%(4.61/(4.61+21+2.8)=0.1613)로 낮아진다. 여기다 소금이 꽃소금이 아니라 간수 뺀 천일염을 사용했다면 장 염도는 이보다 더 낮아질 것이다. 그러니 간장을 빼지 않거나 아주 적은 양만 뺄 생각이라면 소금물 염도를 담그고자 생각하는 염도보다 1~2% 정도 높게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 장 가르기(된장)


3) 재래장이 무조건 좋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우리 나라 장 시장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건 개량된장, 개량간장이다. 전통장은 소규모 협동조합이나 개인에 의해 담궈지고 있고 수요도 전체 시장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재래식으로 만든 전통장이 개량된장, 개량간장에 비해서 맛, 영양 등에서 부족하면 부족하지 나은 게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통장 만드는 방법이 귀찮고 손이 많이 간다고 해도(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는 달리 실제로는 개량장 담그는 법이 훨씬 어렵고 손이 많이 간다) 맛이나 영양 면에서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면 요즘 같은 건강제일주의 시대에 사람들이 왜 안 찾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개량된장, 개량간장은 모두 무슨 원료를 분해, 합성하여 없는 성분을 화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간장의 경우 산분해간장이라고 해서 콩 단백질 분해를 산으로 가수분해하여 만든 아미노산간장이나 아미노산간장과 양조간장을 섞은 혼합간장도 있기는 하다. 이 경우에도 없는 성분을 화학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콩 단백질 성분을 가수분해하여 손쉽게 추출하는 것일 뿐이다. 당연히 발효기간이 짧고 맛이나 향도 떨어진다. 하지만 가격이 싸서 일반음식점에서는 아마도 거의 다 산분해간장이나 혼합간장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일반 가정에서는 그래도 대부분 양조간장 사다 먹고 있지 않을까?


양조간장은 화학적인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콩과 밀을 혼합한 뒤 황국균을 접종시켜 콩코오지를 만든 다음 소금물을 부어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전통장 담그기에서 메주를 띄우는데 최소 2~3개월이 걸리는 반면 콩코오지는 3~4일이면 발효시킬 수 있기에 짧은 시간 안에 장을 만들 수 있다. 콩, 밀, 황국균 양을 정확하게 계량하고 온도, 습도 같은 발효조건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잡균이 증식할 여지가 그만큼 줄어든다(사실 재래식 메주는 띄우는 과정에서 잡균이 엄청 많이 증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소금물 염도나 발효실 온도, 습도를 일정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품질이 균일하다. 양조간장이 재래식 간장보다 달고 맛이 있는 이유는 메주로만 담그는 것이 아니라 콩에 밀이라는 탄수화물을 혼합하여 발효시켰기에 단맛이 첨가되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탄수화물은 분해되면 당분이 된다. 양조간장에 무슨 조미료 같은 걸 넣어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재래식 간장, 된장이 개량된장, 개량간장보다 무조건 맛이 좋고 영양분이 많다는 소리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나 역시 한국인이기에 어릴 때부터 장을 먹어 왔고, 지금은 직접 메주를 띄워 된장, 간장을 만들어 먹는다. 젓갈도 담궈 먹고 있다. 장류는 사 먹지 않고 모두 직접 담궈 먹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담궈 먹는 재래식 전통장이 개량된장, 개량간장보다 무조건 좋다는 소리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개량된장, 개량간장을 안 만들어 먹는 이유는 재래장이 개량장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우리 집에서 개량메주나 콩코오지를 만들 조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술 발효시키듯 단기간에 발효시켜야 하기 때문에 30℃ 전후의 일정 온도와 적정 습도를 유지시켜야 하는데 온돌방이 따로 없는 조건에서는 이게 힘들다. 물론 조건이 된다 해도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으니 콩코오지를 배양하다 실패할 수도 있을 테고(뭐 이건 한두 번 해보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겠지만). 다시 말해서 재래식 전통장 담금법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에 못 담그고 있는 것이다. 개량장 담그기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다 담글 수 있는 재래장과는 차원이 다른 엄밀함을 요구한다. 혹 '개나 소나 다 담글 수 있다는데 나는 왜 못 담그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신다면 '게을러서 그렇다'는 대답밖에는 달리 해드릴 말이 없다. 개량장 담그기에 비하면 재래장은 생각만 있다면 누구나 담글 수 있는 초간단 레시피에 불과하다.


재래식 전통장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할려면 개량장을 어떻게 만드는지나 제대로 알고들 그런 소리 하시기 바란다. 장 발효에 관해서는 개뿔도 아는 게 없으면서 전통장이 무조건 좋다는 소리는 200년 전 박제가가 한탄했듯 "서양 사람들은 인물을 그릴 때 산 사람의 눈동자에서 먹물을 뽑아 그림 속 눈동자에 찍어 넣기 때문에 눈동자 움직이는 것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소리를 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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