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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장 담그기(3) - 말날, 신날, 손 없는 날?

by 내오랜꿈 2018.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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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퍼센트(%)냐? 보오메(Bé)냐?

2. 소금:메주:물 = 1:1:4


3. 말날, 신날, 손 없는 날?


<규합총서> 표지

장 담글 때가 되면 인터넷에 수없이 카피되는 글 가운데 하나가 장 담그기 좋은 날에 관한 것이다. 말날이니 토끼날이니 돼지날이니 손 없는 날이니 아니니 하는 것들. 인공지능이 의사를 대신해 치료 방법을 제시하고, 암환자들 가운데 70%가 의사보다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치료 방법을 선택하는 시대에 이 무슨 케케묵은 소리들일까? 아무런 근거나 이유도 없이 앵무새 조잘거리듯 카피되고 또 카피되는 이런 말들이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책은 1809년에 쓰여진 『규합총서』가 그 원조격이다.


"병인(丙寅), 정묘일(丁卯日)과 제길신일(諸吉神日), 정월 우수일(雨水日), 입동일(立冬日), 황도일(黃道日), 삼복일에 장을 담그면 벌레가 안 꼬이고, 해 돋기 전에 담그면 벌레가 없으며, 그믐날 얼굴을 북쪽으로 두고 담그면 벌레가 안 생기며, 장독을 태세(太歲) 방향으로 앞을 두면 가시 안 생긴다. 또한 신일(辛日)에 담그면 맛이 사납다."


어떠신지? '그믐날 얼굴을 북쪽으로 두고 담그면 벌레가 안 생긴다, 해돋기 전에 담그면 벌레가 없다, 장독을 태세 방향으로 하면 가시 안 생긴다.' 믿음이 가시는가? 여기서 태세 방향이란 무엇일까? 태세성이란 목성을 일컫는다. 그러니 장독을 목성 방향으로 하라는 말이다. 난데없이 어인 목성? 또 가시란 구더기를 말한다. 구더기가 생기고 안 생기고는 파리나 곤충들이 알을 낳고 안 낳고가 결정하는 것이지 장독을 목성 방향으로 두는 것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일까? 그믐날 얼굴을 북쪽으로 두고 장을 담그면 벌레가 안 생긴다? 정말이지 새겨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말들이라 생각하시는지?


이뿐 아니다. 1924년에 간행된 『조선무쌍 신식요리제법』에는 더 황당한 소리도 나온다.


"장 담그기 사흘 전부터 외출을 삼갔으며, 개를 꾸짖어도 안 된다. 장 담그는 여인의 입을 창호지로 봉하기도 하였다. 장에 숯이나 고추를 띄우고, 장독에도 금줄을 치거나 버선본을 거꾸로 붙여 부정을 방지하였다. 장을 담근 후에도 삼칠일 동안은 상갓집에 가지 않았고, 해산한 여인이나 달거리를 하는 여인 또는 잡인은 장광 근처에 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말날이니 손 없는 날이니 따지시는 분들이라면 이런 구체적인 금기사항은 더욱 더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장 담그기 3일 전부터 입을 창호지로 봉하여 지내고 계시는지? 개도 꾸짖으면 안 되니 말도 조신하게 하고들 계시는지? 애 낳거나 생리를 하는 여자들은 장 담그는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는데 잘들 지키고 계시는지? 장독에 버선본을 거꾸로 붙여 부정을 방지하고 계시는지? 안 지키신다고? 아니, 말날이나 신날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는 따지면서 왜 이런 구체적인 것들은 안 지키시는지 모르겠다. 조상의 지혜라면서 제 편한 것만 지키면 쓰나? 지킬려면 제대로 해야지.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규합총서』는 1809년 빙허각 이씨가 쓴 것으로 알려진 『빙허각전서』의 제1부다. 이 책은 장담그기, 술빚기, 밥·떡·과줄·반찬만들기 등 의식주와 관련된 문제들을 정리, 체계화한 생활 경제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700년대 간행된 『수문사설』이나 『증보산림경제』 등에서 단편적으로 보이던 장 담그기 방법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이란 게 이처럼 황당하기 그지없는 미신적 요소들도 총망라하고 있다. 조선 후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참고문헌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겠으나 무조건 맹신하고 따라해야 할 지침서로 삼기에는 턱없이 허무맹랑한 소리가 너무도 많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표지

『조선무쌍 신식요리제법』에서는 장과 관련한 재밌는 일화도 소개되어 있다. 정유재란(1597)이 일어나 한양이 위험해지자 어전회의에서 왕이 평안도 영변으로 피난갈 것으로 정하고, 백관(百官)이 몰려가려면 합장사(合醬使)를 파견해 장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이에 남자안(南子安)이 "신공(申公)을 합장사(合醬使)로 삼아 영변 땅에 먼저 파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으나 한준겸(韓浚謙)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공만은 안됩니다. 신이라는 성은 장 담그기를 꺼리는 날인 신일(辛日)과 음이 같으니 신불합장(申不合醬)이라 좋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신공은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신잡(申磼)을 말하는데, 당연히 영변 지역을 잘 알 테니 적합한 인물이라 생각했을 터. 그런데 한준겸이 시비를 건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장을 소개하고 있는 대부분의 책들에서는 이 일화를 인용하면서 조상들이 장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겼다는 걸 보여준다고 해석하고 있다. 참 나.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그런 해석이 가능하려면 '합장사를 보내 미리 장을 준비하도록 시켰다'에서 그쳐야 한다. 실제는 당파싸움을 위한 억지논리가 숨어 있다. 신잡은 동인에 기대어 출세를 한 인물이고 한준겸은 서인으로 궁의 핵심 요직이라 할 수 있는 좌부승지르 맡고 있었다(좌부승지는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국가안보수석 정도 되는 자리다). 당시 신잡은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밀어부친 댓가로 선조의 총애를 받고 있었는데, 그게 서인들은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래서 신(申)씨가 신일(辛日)과 음이 같다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게 조상의 지혜고, 장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는 일화라고?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전통 장 관련 책 수준이 대부분 이 모양이라서 전혀 믿음이 안 간다(이런 허무맹랑한 소리들을 배제하고 장류를 비롯한 발효 음식에 대해 과학적 분석 방법으로 접근한 책을 꼽으라면 윤숙자 교수의 『한국의 저장 발효 음식』을 들 수 있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그래도 믿음이 가는 몇 안 되는 책 가운데 하나다). 그믐날 장을 담그거나 얼굴을 북쪽으로 하고 장을 담그거나 장독을 목성 방향으로 두면 벌레가 안 꼬인다는 헛소리를 조상의 지혜로 포장하는 책들에서 과연 무슨 배움을 얻어야 할까?


장 담그기 좋은 날이 있으면 장 담그면 안 되는 날도 있을 터. 그렇다면 『규합총서』에서 말하는 장 담그기를 꺼리는 날은 어떤 날일까?


"수흔일에 담그면 가시가 꾀고 육신일(六辛日)에 담그면 맛이 사납다. … 장화 『박물지(博物志)』에 이르되, 상현 하현과 대소 조금 때 담그면 곰팡이 핀다 하였다."


여기서 수흔일(水痕日)이란 큰 달의 초일·초칠·십 일, 작은 달의 초삼·초칠·십이·이십육 일을 말한다. 육신일이란 당연히 십이지에 따른 신(辛)일이 들어가는 여섯 날을 일컫는다. 과학적인 이유는 없다. 그냥 맛이 사납고, 가시가 꼬이고, 신맛이 나고, 곰팡이가 핀다고만 언급하고 있다. 어떤가?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시는지?


<한국의 저장 발효 음식> 표지

경기도 화성시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면, 송강호가 무당을 찾아가 살인범이 어디 있는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살인범이 동쪽이 있는지 서쪽이 있는지를 묻는데(이걸 무당한테 묻는 것도 웃기지만), 무당은 경찰서 정문 방향이 잘못이라며 서남쪽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말도 안 되는 문답인 셈인데, 우습게도 당시 화성경찰서는 무당 말을 믿고 실제로 정문을 옮겼다고 한다. 진짜냐고? 진짜다). 그리고 문답은 계속 이어진다. 거칠게 요약하면,


무당:경찰서 정문 방향이 잘못됐어. 동쪽이 아니라 서남쪽으로 20M쯤 옮겨야 돼. 

형사:어떻게 생긴 놈인지 알 수 있어.

무덩:지금 내 앞에 사람 얼굴이 하나 스윽 지나갔어. 범인 같애.

형사:(급히 수첩을 펼치며)그럼 여기 있는 얼굴이 있는지 한 번 봐줘.

무당:저리 안 치워? 어디 잡것들 얼굴을 들이밀고 있어.

형사:아니, 그냥 요 있는지 한 번만 보라는 거지 뭐.

무당:(부적을 주며) 요거 가지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봐.


뭐 대충 이런 식이다. 80년 말 90년대 초가 배경인데, 무당 말을 믿고 화성경찰서 정문을 옮길 정도였으니 아, 인간 이성의 어리석음이여! 살인범을 잡을 수 있다는 무당의 헛소리를 믿고 경찰서 정문까지 옮기는 것에 비하면 장 담그기 좋은 날이라며 말날 신날 따지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은 차라리 그냥 애교 수준으로 보아 넘겨야 할까? 말날에 장 담그면 구더기가 안 생긴다는 소리나 정문 옮기면 살인범이 잡힌다는 소리나 무엇이 다른가? 우매한 자, 그대 이름은 인간이니라.


장 담그기 좋은 수많은 날들 가운데 말날이 대표성을 획득하여 많이 회자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구더기가 생기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장에 구더기가 생기면 웬만한 사람들은 파리가 장독에 들어가 알을 낳았기 때문임을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이걸 자꾸 장 담그는 날과 연관시켜 이해했다. 요즘이야 빛이 투과되는 유리뚜껑을 많이들 이용하기에 항아리 뚜껑을 여닫는 일이 거의 없으니 파리가 들어갈 위험이 많이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구더기가 성가신 문제였음은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뱀날과 용날은 절대 장을 담그면 안 된다는 믿음도 생겨났다. 뱀이나 용의 비늘을 구더기로 유비시켜 이해한 것. 그 연장선 상에서 말이나 소, 토끼 같은 털 있는 짐승날에 장을 담궈야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믿음을 유포시킨다. 일부 문화인류학자들은 동물 중에 말의 피가 제일 깨끗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말날에 장을 담그면 장맛도 좋고 구더기도 꼬이지 않는다고 믿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놓기도 한다. 또 어떤 학자들은 옛날에는 소나 말이 아주 중요한 농사용 가축이었기에 말날이나 소날을 택하여 장을 담금으로써 소나 말을 쉬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추론도 내놓는다. 어느 것이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근거가 희박함은 물론이다. 이런 걸 조상의 지혜로 포장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과연 무엇일까?


장과 관련된 조상의 지혜(?) 어린 말들을 몇 가지 더 살펴 보자.


메주를 짝수로 만들면 불길하다.

2월에 장을 담그면 조상이 제사를 받지 않는다.

3월에 장을 담그면 제사를 못 지낸다.

신일(辛日)에 간장을 담그면 장맛이 변한다.

말 많은 집 장맛은 쓰다.

장이 단 집은 복이 많다.

간장독을 깨뜨리면 집안이 망한다.

장맛 보고 딸 준다.

며느리가 잘 들어오면 장맛도 좋아진다.


아마도 한두 개쯤은 들어보았을 수도 있으리라. 모두 장과 관련된 속담들이다. 하나하나 톱아보시라. 한심하고 미련스럽기 그지없는 말들뿐이다. 특히 마지막에 인용한, '며느리가 잘 들어오면 장맛도 좋아진다'는 속담은 거꾸로 해석하면 장맛이 안 좋으면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그렇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빌미로 얼마나 많은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들에게 구박 받았을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소리나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를 피하려는 차원에서 '장맛 보고 딸 준다'는 속담까지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말날이니 신날이니 따지는 건 이런 말들을 신봉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래도 믿고 싶은신가?


<북학의> 번역본 표지

그렇다고 옛 문헌들이 장 담그기와 관련해서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들을 주장하는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진짜로 조상의 지혜로 받들어야 할 사고의 모범을 보이는 건 정조 때 실학자인 박제가가 쓴 『북학의(北學議)』에 나온다. 박제가는 당시 비위생적인 메주만들기 실태를 고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우리 음식이 중국 음식보다 낫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을 모르는 말이다. 지금 우리 음식 중에 께름칙해 제일 입에 댈 수 없는 게 있다면 간장이다. 지금 강가나 혹은 절에서 장메주 만드는 자는 메주 만드는 시기가 되면 여러 지방의 콩을 모아 삶게 되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다 깨끗하게 씻지 못한다. 주는 사람도 가려서 주지 아니하고 받는 사람도 씻지 않아서 모래나 좀벌레가 섞여 있다. 그래도 그들은 예사로 알고 괴이쩍게 여기지 않는다. 그 장을 먹으려고 하면서 그 메주를 더럽게 취급하니 이것은 먹는 우물물에 똥을 넣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또 콩을 삶아서 파선(破船)의 밑바닥에 쏟고는 옷을 걷어붙이고 맨발로 밟는다. 여러 사람이 오르내려서 더럽혀진 배의 바닥에서 밟는다. 그러나 그뿐인가! 온몸에서 흐르는 땀이 다리를 타고 발 밑의 콩에까지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된장 속에서 발톱이나 머리카락이 발견된다.


강계(江界) 사람은 장메주 만들 때에 반드시 물에 걸러 일고 삶아서 익으면 망치로 쳐서 한 장씩 아주 반듯하게 만들어 낸다. 무릇 장메주는 이와 같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박제가, 『북학의』, 이서행,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2008))에서 재인용)


사람 수명이 근대 이후에 비약적으로 늘어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위생문제 개선이다.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를 보면 17~8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의 주요 도시들조차 상하수도나 화장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거리는 사람들이 내다버린 똥오줌과 쓰레기들로 질퍽거렸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오늘날 여성의 각선미를 돋보이게 하는 발명품으로 여겨지는 하이힐조차 질퍽거리는 더러운 거리를 걷기 위해 고안된 벌명품이라고까지 이야기 할까. 박제가가 바라본 우리의 장 담그는 풍습을 보면 위생 관념이 전혀 없는, 매우 불결한 것이었음이 지적되고 있다. 아래 인용하는 내용을 보면 박제가가 얼마나 답답했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아교나 옻 같은 속된 것들에 의해 막이 덮여 있어서 이를 제대로 뚫고 나오질 못한다. 그렇기에 "서양 사람들은 인물을 그릴 때 산 사람의 눈동자에서 먹물을 뽑아 그림 속 눈동자에 찍어 넣기 때문에 눈동자 움직이는 것이 살아 있는 것 같다"라는 엉터리 말을 하는 것이다."


<북학의> 표지

박제가는 홍대용 등과 함께 정조 시대에 활약한 실학자다. 비록 서양보다 200년이나 늦었지만 이들 북학파 실학자들은 우리 나라 최초로 지구가 둥글고 스스로 돈다는 지전설을 설파했던 혁신가들이다. 근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서구인들은 총칼과 대포로 무장한 배를 타고 전지구를 누비고 있는데도 '살아있는 사람 눈동자에서 먹물을 뽑아 그림 속 눈동자에 찍어 넣는다'는 소리나 일삼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을까? 너무나 비위생적으로 만든 메주로 삼복일, 말일, 신일, 수흔일 따지며 만든 장으로 음식을 만들면서 우리 음식이 최고다는 소리나 외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게 보였을까? 과학기술을 앞세우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에 이런 어리석음과 미신숭배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미래가 주어질 리 없음은 당연한 일. 망국은 이미 정해진 길이 아니었을까?


기본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장이 시고 안 시고, 구더기가 생기고 안 생기고는 장 담그는 날과는 전혀 무관하다. 장이 시고 안 시고는 소금물의 농도가 첫 번째일 테고 두 번째는 습도나 온도 같은 날씨이리라. 장맛의 좋고 나쁨 여부도 메주가 잘 띄워진 정도와 물, 날씨에 영향 받을 테고. 구더기가 생기는 건 파리나 벌레들이 장독에 들어가 알을 낳기 때문이다. 이게 말날이니 신날이니 하는 것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상식적으로 한 번 물어보자. 만약 바람 불고 비 오는 말날과 화창하고 맑은 주말 중에 고르라면 어느 날에 장을 담궈야 더 좋을까? 난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한다. 질문하기 위해 예를 든 것이지만 사실 말날이니 신날이니 따지는 것 자체가 웃기는 짓거리다. 장 담그기 좋은 날을 따질려면 맑은 날이냐 아니냐, 바람 부는 날이냐 아니냐, 비 오는 날이냐 아니냐를 따져야 한다. 또 장 담그는 날만큼 중요한 건 소금물의 농도다. 음력 정월이란 해에 따라서는 양력으로 한 달 이상 차이가 난다. 올해처럼 2월 20일 근처에 설날이 올 수도 있고 빠를 때는 1월 20일 근처에 올 수도 있다. 따라서 같은 정월장이라 하더라도 1월 말에 담글 수도 있고 3월 중순에 담글 수도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건 말날이니 신날이니 하는 케케묵은 소리가 아니라 소금물의 염도다. 지난 번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겨울에 가까운 날에 담글 때는 소금물의 농도를 1~2% 정도 연하게 해도 되고 봄이 완연한 날에 담글 때는 소금물의 농도를 1~2% 높여주어야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굳이 장 담그는 날을 따진다면 난 바람 없는 화창한 주말에 자식들을 불러 모아 담그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자주 볼 수 없는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식들이 장 담그는 모습을 보고 그들도 배우고 익히며 나중에라도 장을 담글 수 있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장 담그기가 그야말로 조상의 지혜고 후손에게 길이 전승되어야 할 문화라면 말날 신날 같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고 자식들이나 손자들에게 장 담그는 방법이나 올바르게 가르쳐주는 것이 백 번 옳지 않겠는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말날 신날 따지고 앉았는가? 그러다간 조만간 인공지능에게 빰 맞는다. 정신들 차리시기 바란다.


바람 없고 맑은 화창한 주말을 골라 장 담그기를 온 가족의 축제로 만들어 보자.



4. 메주, 소금물 양에 따른 된장, 간장 양과 염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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