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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메주, 곰팡이, 세균 그리고 발효(1) - 좋은 메주란?

by 내오랜꿈 2018.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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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 있으면 여기저기서 장 담근다는 소리가 들려올 때다. 우리나라 전통 장 담그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메주다. '잘 띄운' 메주. 여기서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 수 있는 건 '잘 띄운' 메주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메주콩을 오래도록 푹 삶아 으깨어 뭉친 덩어리를 메주라 하고 이 메주를 띄운다는 건 발효시킨다는 의미다. 장 발효와 구분하는 의미에서 메주 발효라 부를 수 있다. 메주는 100% 콩으로 만든 것이고 발효는 미생물이 하는 것일 테니 '잘 띄운' 메주란 결국 콩단백질을 잘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이 많이 증식한 메주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미생물이 많이 증식한 메주를 알아볼 수 있을까? 곰팡이가 많이 핀 메주? 푸른곰팡이, 검은곰팡이가 아니라 흰곰팡이, 노란곰팡이가 많이 핀 메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대답은 정답 근사치에서 1/100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메주 띄우는 모습. 낮에는 햇볕이 들도록 해서 잡균이나 곰팡이의 증식을 억제한다.


일반적으로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은 크게 곰팡이(fungi), 세균(bacteria), 효모(yeast)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곰팡이는 몰라도 세균이나 효모는 육안으로는 쉽게 구분하기 힘들다. 수많은 세균이나 효모가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다면 모를까. 청국장 발효에서 콩 표면에 하얗게 뭉친 덩어리가 고초균이고 잘 익은 포도 표면에 하얗게 내려 앉은 분말이 효모다. 아마도 수백만 내지 수천만 마리가 덩어리져 있어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눈에 띄는 곰팡이의 유무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려다 보니 곰팡이가 핀 정도나 색깔을 마치 잘 띄운 메주의 절대적인 기준인 양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메주 발효에서 곰팡이가 차지하는 부분은 극히 미미하다. 굳이 수치로 환산하자면 1% 미만이다. 메주 발효 역시 콩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과정이기에 고초균 같은 bacillus속(屬) 세균들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곰팡이는 메주 표면이나 틈새에만 번식할 뿐이고 메주 속은 온통 눈에 보이지 않는 bacillus속 세균이 차지하고 있다. 곰팡이나 효모는 직접적인 단백질 분해보다는 제빵이나 양조 과정에서처럼 알코올 발효에 관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메주 숙성에서도 털곰팡이류나 거미줄곰팡이류가 주로 생기지만 메주 발효 과정에서보다는 장 발효 과정에서 약간의 알코올 발효와 함께 장의 풍미를 증가시키는 페놀(phenol)류 생성에 일정 정도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주 발효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세균의 증식 유무는 놔둔 채 눈에 보이는 곰팡이만 가지고 잘 띄운 메주 여부를 판단한다는 건 분명 불합리하다. 더군다나 이 불합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메주 표면보다는 메주 속이 잘 띄워지도록 관리한다.


메주 틈새에서 증식하고 있는 고초균. 틈새 표면을 덮고 있는 회백색은 곰팡이가 아니라 고초균이다. 나는 메주 띄우는 동안 곰팡이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초균이 잘 증식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요즘은 점점 더 장을 담그는 집들이 줄어들고 직접 장을 담궈 먹는 사람들도 메주는 구입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장 담그기에서 제일 힘든 과정이 메주 띄우기임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니 메주를 사서 장 담그는 걸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좋은 메주, 잘 띄운 메주 여부를 눈에 보이는 곰팡이로 판단하다 보니 제대로 띄우지 않은 메주가 좋은 메주로 둔갑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메주를 잘 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조차 흰곰팡이류나 노란곰팡이류가 많은 게 좋은 메주고 푸른곰팡이류나 검은곰팡이류가 많은 메주는 안 좋은 메주라고 알고 있다. 이 자체가 틀린 건 물론 아니다. 분명 흰곰팡이류나 노란색 또는 옅은 주황색이 나는 곰팡이가 좋은 곰팡이고 푸른곰팡이나 검은곰팡이는 안 좋은 곰팡이다. 만약 붉은곰팡이가 폈다면 그 메주는 부패한 것이니 버려야 한다. 그런데 메주를 오래 띄우면, 곧 고초균이 콩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면 푸른곰팡이나 검은곰팡이가 필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이 말은 메주를 제대로 띄우지 않으면 푸른곰팡이나 검은곰팡이가 필 확률도 그만큼 적어진다는 말이고, 이런 메주는 콩단백질이 충분히 아미노산화 되지 않은 메주라는 말과 동의어다.


장맛이 좋으려면 메주의 콩단백질이 충분히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초균이 충분히 증식할 수 있도록 잘 마른 메주를 적당한 온도에서 한 번 더 띄우는 후숙발효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마르지 않은 메주를 강제발효시키면 부패할 수도 있기에 반드시 잘 말린 다음 후숙발효를 진행해야 한다). 한겨울 상온에서 말리는 메주에 고초균이 충분히 증식하기는 힘들다. 청국장 관련 글에서 언급했지만 고초균은 30℃ 이하에서는 증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후숙발효 과정에서 푸른곰팡이나 검은곰팡이도 같이 번식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푸른곰팡이나 검은곰팡이가 핀 메주는 안 좋은 메주라 생각한다. 메주를 판매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굳이 소비자들이 안 좋은 메주라 생각하는 곰팡이가 쉽게 번식하는 2차 발효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그냥 상온에서 적당히 띄워 흰곰팡이가 많이 핀 메주를 만드는데 집중하게 된다. 정석대로 마른 메주를 한데 모아 온도를 높여 2차 발효를 시킨 메주는 상대적으로 검은곰팡이, 푸른곰팡이가 많이 피는 까닭에 '컴플레인' 대상밖에 안 되는데 누가 제대로 메주를 띄우려 할까? 나 같아도 메주를 판매하는 사람 입장이라면 보기 좋은 메주를 만들지 잘 띄운 메주 만들 생각 안 하겠다. 무릇 소비자가 바뀌지 않으면 생산자가 스스로 바뀌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잘 띄운 메주는 두 달 이상 잘 말려 속까지 딱딱해진 메주를 30℃ 이상의 온도로 열흘에서 보름 정도 후숙발효시킨 메주다. 이 과정에서 푸른곰팡이나 검은곰팡이가 안 피면 더 좋겠지만 조금 피어도 상관없다. 곰팡이는 메주 표면에만 서식하기에 장 담글 때 깨끗이 씻어내고 담그면 장 발효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사실 염분 농도 20% 전후에서 생존할 수 있는 미생물은 별로 없다. 뭐, 소금예찬론자들은 염분 농도 97% 이상의 소금에도 발효에 유익한 미생물이 함유되어 있다는데 제정신으로 하는 소린지 종교로 승화된 '소금진리교의 말씀'인지 분간을 못 하겠다.ㅠㅠ 장 발효는 20% 정도의 염분 농도에서 생존할 수 있는 내염성 세균이나 효모 종류들이 하는 것이기에 곰팡이의 역할은 미미하다. 누룩곰팡이속(屬) 곰팡이들이나 푸른곰팡이속(屬) 곰팡이들도 어느 정도 장 발효에 관여한다고 하는데, 이들 곰팡이는 치즈 제조나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 합성에 이용될 만큼 항균성이 강한 곰팡이들이기에 걱정 안 해도 된다.





메주 띄운 지 14일째 모습. 이제부터는 두 달 정도 처마 밑에서 잘 말려야 한다. 그런 다음 30℃ 이상의 온도에서 2차 후숙발효 과정을 거치야 메주 띄우기가 완성된다.


다만 메주를 구입했을 때 속이 완전히 마르지 않은 채 검은곰팡이, 푸른곰팡이가 많이 핀 메주라면 조금 문제가 있다. 제대로 만든 메주라면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최소한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기간 동안 속까지 마르지 않은 메주라면 그건 분명히 문제가 있는 메주다. 우리나라 <식품과학 기술대사전>에서 정의하는 메주는 "전통식품 표준규격(농수산물가공산업육성법, 제13조 근거)에 따른 전통 메주의 규격은, 성상은 고유의 색택과 풍미가 양호하며 이물이 없어야 하고 수분 10.0% 이하, 조단백질 35.0% 이상, 조지방 15.0% 이상, 아미노태 질소 110mg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개량메주를 기준으로 한 규격인데 여기서 주의해서 보아야 할 수치는 '수분 10% 이하'이다. 조단백질 35% 이상, 조지방 15% 이상은 100% 콩으로 만들었다면 저절로 충족되는 수치다. 시중에서 대기업 브랜드를 달고 유통되는 잘 마른 미역이나 다시마의 적정 수분을 굳이 수치로 표기하자면 8~13% 정도다. 곧 10% 전후라는 말이다. 메주 수분이 10% 이하라는 건 만졌을 때 돌처럼 딱딱해야 한다. 이 정도로 잘 말라야 전통식품 표준규격에 맞는 메주라는 말이다.


정리하자면 잘 띄운 메주는 메주 표면의 곰팡이 색깔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속까지 얼마나 잘 건조했는지도 살펴야 하고, 틈새나 표면에도 고초균들이 제대로 증식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뿐만 아니라 청국장 띄우는 방에서 나는 것 같은 쿰쿰한 냄새가 나는 메주라야 충분히 잘 발효된 메주라 할 수 있다. 이런 메주라면 푸른곰팡이나 검은곰팡이가 조금 피어 있어도 깨끗하게 씻어서 사용하면 된다. 흰곰팡이 피게 만드느라 잘 발효시키지도 않은, 겉만 번지르르한 메주보다는 이런 메주로 담그는 장이 훨씬 더 맛있다. 장맛의 절반은 잘 띄워진, 잘 발효된 메주가 차지한다. 이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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