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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세상

해양심층수, 미네랄, 영양염 그리고 바보상자

by 내오랜꿈 2018.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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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왜 '바보상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을까? 어릴 적부터 들었던 비유인데,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유효한 비유라는 생각엔 변함없다.


며칠 전 어느 TV프로그램에서 황태를 말리며 해양심층수를 뿌리고 있다고 자랑질을 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려 준비하고 있을 때였으니 아마 <6시 내고향>이었을 거다. 황태를 말리는 장사꾼은 물론 아나운서인 진행자까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해양심층수는 미네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사람 몸에 좋으니 어쩌니, 이걸 황태에 뿌려주니까 황태의 품질은 물론 맛도 좋아지니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그걸 듣고 있으려니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온다. 방송까지 나왔으니 이제 해양심층수 뿌렸다고 비싼 황태로 포장하는 장사꾼만 살판나게 생겼다.


<바닷물의 농업적 활용 매뉴얼> 표지

도대체가 이놈의 나라는 방송국에까지 이렇게나 '생각없는' 인간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란 말인가? 이 프로그램의 PD, 작가, 아나운서까지 죄다 해양심층수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고 뭐든 많으니까 무조건 좋은 것으로 인식하는 '멍청한' 사람들, 그러니까 TV를 바보상자로 만드는, 멍청한 사람들과 똑같은 수준이라는 말이다. 해양심층수에는 질산염, 인산염, 규산염, 아질산염 같은 영양염이 풍부하다는 게 밝혀진 지 오래다. 영양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말인지 원... 도대체 스마트폰 뭐하러 들고 다니나? 모르면 좀 찾아들 보시라. 식약청의 먹는 물 수질검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 것 가운데 하나가 영양염 검출 여부다. 질산염, 규산염, 인산염 같은 영양염은 정해진 기준치 이상 검출되면 무조건 식수 불가 판정이다. 전국 약수터 수질검사에서 식수 불가 판정을 받는 약숫물 대부분이 질산염이나 인산염 같은 영양염이 기준치 이상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대장균 같은 세균 검출로 인한 불가 판정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세균보다 영양염 검출에 따른 불가 판정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부영양화라는 말 들어보셨으리라. 하천이나 바다 등 수중생태계에 생활하수나 폐수에 들어있는 유기물질이 다량 유입되어 물속은 질소나 인과 같은 영양물질이 많아진다. 이런 영양물질이 많아지면 광합성을 하는 조류가 급격하게 증식한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물이 제대로 흐르지 않아 녹조나 갈조 현상이 늘어났다든지, 수온이 높아지면서 남해안 양식장 근처에 적조 현상이 나타난다든지 하는 뉴스는 너무 흔해서 이제 별다른 이슈조차 되지 못 하는 뉴스다. 이 모두 물속에 영양염이 과도하게 늘어났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영양염이 풍부한 물, 해양심층수는 과연 무조건 좋은 물일까? 한국생물과학협회에서 최신 생명과학 용어를 표준화하고 편집한『생명과학대사전』이란 책이 있다. 여기서 규정하는 해양심층수를 살펴 보자.


해양심층수 [deep ocean water, 海洋深層水] 태양광이 거의 미치지 못하는 깊이가 200m 이상인 바다의 물. 광합성에 의한 유기물 생산보다도 유기물의 분해가 쉽게 진행되며, 인이나 질소 등의 영양분이 풍부한 반면 지상에서 들어오는 병원균이나 유해물질이 적다. 이와 같은 청정성과 저수습성, 수질안정성의 특징이 있어 무기이온수나 맥주, 간장, 화장품 등 여러 가지 상품에 이용된다. 미네랄류가 풍부하다고 하지만 분석 결과 미네랄 성분의 함유량은 해면 근처의 해수와는 거의 변화가 없다. 여러 가지 건강기능이 기대되지만 뒷받침되는 과학자료는 부족하다.("생명과학대사전", 2014, 도서출판 여초)




아무리 읽어봐도 '영양염이 풍부하다, 표층수보다 깨끗하다, 미네랄 함유량은 표층수나 차이 없다, 여러 가지 상품에 이용되고 있으나 뒷받침되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로 요약할 수 있을 뿐이다. 깨끗하다는 것 말고는 전혀 좋은 점이 없는 물이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니 미네랄 함유량은 표층수와 차이가 없으니까 해양심층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인간들이 힘주어 강조하는 게 영양염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요즘은 없는 소리 하다 걸리면 빼도 박도 못 하니까. 그런데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명확한 과학적 근거를 적용하자면 영양염이 풍부한 물은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상업적으로 이용할 경우는 분명 영양염이 기준치 이상 들어가지 않도록 조절할 테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뭐라 하지 않겠다. 아무리 더 많은 이윤추구를 위한 상업적 꼼수에 불과할지라도. 하지만 덕장에서 황태를 말린다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 때 해양심층수를 무턱대고 넣어서는 안 된다는 건 분명하다. 이들은 대부분 먹는 물에 허용되는 영양염 기준치라는 게 있는지도 모를 테니까. 옛날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했는데 요즘은 몸에 좋다고 하면 양잿물도 마실 기세다.


우리는 흔히 자조적으로 말하곤 한다. 속는 놈이 문제지 속이는 놈이 무슨 죄가 있냐고. 100% 동의하는 말은 아니지만 바보상자의 주체는 TV가 아니라 사람인 건 분명하다. 무식한 것도 좀 정도껏 무식해야 이런 방송이 사라지지 않을까? 주변을 한 번 돌아보시라. 여행지에서 보는 깨끗한 하천은 물과 돌과 고기가 보이고 사람 많이 사는 곳 주변 영양염이 풍부한 물이 흐르는 하천은 물과 돌과 고기가 아니라 우거진 풀이 보인다. 이런 물, 영양염이나 미네랄이 풍부한 물은 사람이 먹어야 할 물이 아니라 밭에 키우는 작물들에게 주어야 할 물이다. 아무리 깨끗한 해양심층수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도 방송에서 이 지랄을 하고 있으니 생각없는 인간들은 또 해양심층수 뿌린 황태가 몸에 좋은 거라고 애써 사 먹을 거 아닌가. 일반 황태보다 비싼 돈도 마다하지 않고서. 하긴 뭐, 소금에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인간들보단 덜 미련스럽긴 하다만... 그래도 제발, 멍청한 짓들 좀 작작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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