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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청국장 띄우기(2018)

by 내오랜꿈 2018.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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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담그기는 한해 건너뛰어도 청국장 띄우는 건 빠뜨리지 않는다. 3~4일 발효시켜서 1년 먹거리를 만드는 일이기에. 이 청국장 띄우는 것과 관련해서 수많은 잡설들이 돌아다닌다. 대표적으로 청국장 띄울 때 반드시 대바구니를 써야 한다는 것, 짚을 꼭 넣어야 한다는 것, 절대 열어보면 안 된다는 것, 온돌방이나 전기장판을 이용해서 인위적인 가온을 해야 한다는 것 등..... 물론 가장 헛소리는 24시간 만에 만드는 청국장, 냄새 안 나는 청국장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다. 청국장 띄우기에 관한 글만 해도 서너 번 썼으니 자세한 내용은 찾아보시기 바란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 여기서는 핵심적인 것만 간략하게 요약한다.

 

 

 

 

▲ 청국장 띄우기. 좋은 콩을 잘 삶는 게 가장 중요하다. 메주콩 씻어 2시간 불리고 5~6시간 삶고 1시간 뜸 들여서 40~50℃로 식힌 다음 바구니에 억새를 깔고 면보자기를 씌워 콩을 넣는다. 그리고 이불 하나 덮어 씌우면 청국장 띄우기는 시작된다. 인위적으로 온도를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1. 청국장 발효에서 가장 중요한 건 콩이다. 좋은 콩을 잘 삶는 것. 이것이 좋은 청국장 발효의 첫 번째 조건이다. 이것만 잘 하면 이미 청국장 띄우기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 바구니를 사용해야 한다는 소리는 핵심을 벗어난 소리다. 플라스틱 바구니, 스텐레스 바구니를 써도 똑같다. 고초균은 충분히 똑똑해서 재료(잘 삶은 콩)가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를 따지지 골빈 인간들처럼 겉에 걸치는 옷이나 핸드백의 명품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바구니를 쓸 때는 더 주의해야 한다. 대바구니는 잘못 보관하면 온갖 잡균이나 곰팡이가 서식하기 좋은 재료다. 대바구니를 이용하려면 끓는 물에 깨끗하게 씻어 햇볕에 며칠 잘 말려서 사용하는 게 옳다. 잡균이나 곰팡이는 청국장 맛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사람이 먹는 맛있는 음식의 첫 번째 조건이 무엇일까? 좋은 재료, 신선한 재료다.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인들 재료가 안 좋으면 최상의 맛을 낼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맛있는 음식을 꼭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가서 먹어야 하는가? 맛만 있으면 허름한 동네식당에 가서도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골빈 인간들이나 먹는 장소 따지는 것이다. 인간들은 몰라도 고초균에게는 자기가 먹는 음식이 담긴 바구니의 재질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2. 고초균(Bacillus subtilis)은 사람이 사는 곳 도처에 존재한다. 공기 중에도 있고, 땅 속에도 있고, 하수구에도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세균의 일종이라는 거다. 세균은 병원성 세균과 비병원성 세균으로 나눌 수 있는데 고초균은 비병원성 세균이다. 비병원성이라고 해서 청국장 발효 같은, 사람에게 유익한 작용만 하는 세균은 아니다. 밥이 쉬거나 콩나물국이 상하거나 우유가 상하여 굳어지게 하는 것도 다 고초균이 하는 짓이다. 발효 조건에 따라 나쁜 균이 될 수도 좋은 균이 될 수도 있다. 고초균 강의하려는 게 아니라 청국장을 발효시키는데 반드시 짚을 넣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주변의 억새 같은 마른 풀을 넣어도 되고 없으면 안 넣어도 된다. 단지 마른 풀에 고초균이 많이 붙어 있으니 발효 초기 콩단백질 분해효소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증식 시간을 조금 앞당기는 역할을 할 뿐이다.

 

사람들이 꼭 짚을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마도 애초에 짚에 있는 고초균들(만)이 청국장 발효를 하는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청국장이 제대로 발효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초균이 필요한데 이것들이 전부 외부에서 유입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증식하면서 만들어낸다. 청국장 띄우는 데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이렇게 스스로 증식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증식한 세균들이 단백질 분해효소를 만드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유입된 세균 수가 100 마리라면 스스로 증식하여 만들어내는 세균 수는 수 억, 수십 억 마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래도 반드시 짚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어머니 대부터, 할머니 세대 때부터 그렇게 해오던 것이라면서. 그건 농사를 주로 짓던 시절, 주변에서 가장 흔했던 게 짚이니 별 고민없이 사용했을 뿐이다. 논농사가 주가 아니라 밀농사를 주로 하는 생활기반이었다면 당연히 밀짚을 사용했을 것이다. 짚도 밀짚도 없었다면 다른 것으로 대체했을 테고. 뭐든 정당한 근거없이 '옛날엔 이랬는데~' 하는 생각을 못 버리니 젊은 친구들한테 '꼰대' 소리 듣는 거다. 나이 드는 것만으로 서럽다는 분들도 많던데, 꼰대 소리까지 듣으면 더 슬프지 않을까? 난 나이 드는 것조차 그렇게 슬프진 않지만...

 

 

 

 

 

 

 

 

 

 

▲ 청국장 띄우기 시작한 지 24시간, 36시간, 48시간, 72시간 경과한 모습. 고초균의 증식과정이 한눈에 보인다. 24시간부터 48시간까지는 고초균 증식과정이 눈에 보이게 차이나지만 48시간이나 72시간이나 눈에 보이는 큰 차이는 없다. 그렇다고 청국장이 다 띄워진 건 아니다. 48시간 이후부터는 고초균이 더 이상 증식하는 과정이 아니라 단백질분해효소가 단백질을 분해하여 아미노산화 하는 과정이다.

 

3. 청국장 띄우면서 절대 열어보면 안 된다는 것과 가온시설을 이용하여 온도를 높여주어야 한다는 것 또한 단골 레퍼토리다. 고초균은 호기성 발효를 한다. 살아가는데 공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청국장 띄우기는 수많은 고초균의 증식 과정이고 수없이 생기는 고초균이 스스로를 증식하기 위해서는 공기가 필요한데 왜 열어 보면 안 된다는 걸까?

 

고초균의 최적 생육 온도는 38~43℃라 알려져 있다. 비교적 고온에서도 죽진 않지만 활력이 떨어진다. 청국장을 띄우기 시작한 지 32시간 정도 지나면서부터 내부온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50~60℃ 사이는 우습게 왔다 갔다 한다. 이러면 온도를 낮추는 게 좋을까? 높이는 게 좋을까? 초등학생한테 물어봐도 정답을 말한다. 그래도 청국장을 빨리 띄우기 위해 굳이 가온을 하고 싶다면 처음 띄우기 시작할 때 몇 시간만 해 주면 충분하다. 특히 24시간이 지나고서부터는 온도를 높일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청국장 내부 온도를 40℃ 전후로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한 처사다.

 

난 청국장 띄우면서 인위적인 가온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메주콩을 삶아서 바로 바구니에 넣기보다는 40~50℃ 정도까지 식힌 다음 띄우기 시작한다. 우리 집 겨울철 실내온도는 18~20℃ 사이. 이 온도에서도 청국장은 잘만 띄워진다. 그리고 청국장 띄우면서 60시간까지는 하루에 두세 차례 열어서 공기도 순환시켜 주고 높아진 내부온도도 낮춰준다. 다만 60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열어보지 않는다. 청국장 띄우기 시작한 지 48시간이 지나면 고초균에 의해 생성된 단백질 분해효소가 콩의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한다. 이 과정에서 암모니아 가스를 발생시킨다. 암모니아는 살균작용을 한다. 그래서 청국장 띄우면서 스며든 각종 잡균을 암모니아가 더 잘 살균할 수 있도록 열어보지 않는 것이다.

 

 

 

▲ 2017년 청국장 띄우기. 올해는 84시간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아 작년 사진을 비교했다. 72시간, 84시간 경과 모습 비교. 역시 별다른 차이가 없다.

 

4. 24시간 만에 만든 청국장, 냄새 안 나는 청국장에 대한 환상도 끊임없이 유포된다. 앞에서 잠시 언급됐지만 청국장을 띄우는 과정은 콩 단백질을 분해할 만큼 충분한 고초균이 증식하는 과정과 증식한 고초균이 단백질 분해효소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단백질 분해효소가 콩단백질을 분해하여 아미노산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한 작업이다. 스스로 충분히 증식하는데 24시간이 필요하고 증식한 고초균들이 충분한 단백질 분해효소를 만들어내는데 또 24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청국장을 24시간 만에 만들어낸다고? 참 재주도 좋다.

 

발효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해진 시간'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외부 조건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시간이라는 상수를 고려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발효는 미생물이 하는 것이고 미생물은 반드시 일정 시간 동안 증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청국장도 미생물 발효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식품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냥 삶은 콩일 뿐이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야 우리 몸에서 제대로 흡수할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단백질 덩어리(유식한 말로 유기화합물)라도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지 않는다면 그냥 유기화합물 덩어리일 뿐이다.

 

콩이 가지고 있는 단백질을 우리 몸이 얼마나 잘 흡수하는지에 대해 연구한 '콩단백질 소화흡수율'이라는 지표가 있다. 이에 따르면 콩에 함유되어 있는 풍부한 단백질이 사람 몸에 흡수되는 정도는 (생콩, 삶은 콩, 된장, 두부를 가지고 비교실험 한 것으로 자료마다 조금씩 편차는 있지만) 생콩은 50~55%, 삶은 콩은 60~65%, 된장은 80~85%, 두부는 95% 이상이라고 한다(더 공부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말씀하시라. 책이나 논문들 소개해 줄 수 있다). 청국장은 이것들과 직접 비교 실험한 데이터는 없지만 아마도 삶은 콩과 두부 사이 어느 곳에 위치할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청국장 위치는 삶은 콩이 충분한 발효를 거쳐 콩 단백질이 우리 몸에 흡수되기 쉬운 아미노산으로 분해된 정도에 따라 그 위치를 달리한다. 충분히 발효된 청국장이라면 두부에 가까울 것이고, 제대로 발효되지 않은 청국장이라면 삶은 콩에 가까울 것이다.

 

청국장 발효기를 이용해 24시간, 36시간 만에 청국장을 만드니까 냄새도 안 나고 정말 좋다는 글들에 혹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뭐 그건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청국장은 그저 삶은 콩에 가깝지 제대로 발효된 청국장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드시기 바란다. 굳이 청국장 냄새가 문제라면 신김치를 이용한다든가 된장을 조금 넣는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삶은 콩 먹자고 애써 청국장 띄우는 고생 왜 하는지 모르겠다.

 

 

 

 

 

 

 

 

▲ 다 띄운 청국장을 으깨어 소분한 다음 보관하는 모습.

 

5. 우리 집 청국장 띄우는 과정

 

1) 좋은 메주콩을 잘 삶는 게 관건이다. 그래서 난 메주 만들 때마다 청국장을 띄운다. 청국장용으로 따로 삶을 때도 있지만 그 오랜 과정을 청국장 조금 만들기 위해 한다는 건 쉽지 않다. 메주콩 씻어 2시간 불리고 5~6시간 삶고 1시간 뜸 들이는 건 메주용 콩 삶을 때나 청국장용 콩 삶을 때나 똑같다. 고초균은 잘 삶아진 메주콩을 원하니까.

 

2) 삶은 메주콩은 스텐 그릇에 옮겨 담아 40~50℃ 정도까지 식힌 다음 바구니(스텐이나 플라스틱 바구니 둘 다 사용한다)에 짚이나 억새를 깔고 면보자기를 덮은 다음 삶은 콩을 옮긴다. 그런 다음 이불 하나를 둘러 씌워 청국장을 띄우기 시작한다. 이때 밑바닥에 짚이나 억새를 넣는 이유는 고초균 때문이기도 하지만 청국장 발효과정에서 나오는 수분흡수가 더 큰 목적이다. 삶은 콩을 식히기만 할 뿐이지 완전히 수분을 제거하지는 않기에 콩에서 진액 같은 게 바닥으로 흘러내려 지저분한 상태가 되면 아무래도 잡균이 증식하기 쉬울 거 같아 예방차원에서 넣는다.

 

또 우리 집은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다. 그만큼 습하다는 말이다. 습하다는 건 장 발효에서 가장 안 좋은 조건이다. 그래서 짚이나 억새를 잡균 증식보다 고초균 증식을 빨리 하기 위해 넣어준다. 건조한 산간지방에 살았더라면 아마도 짚 같은 거 안 넣고 띄웠을 것이다. 메주나 장 발효를 겨울철에 하는 주된 이유도 이와 같다. 청국장 발효는 햇빛이 필요치 않기에 도시의 아파트나 주택에서도 충분히 띄울 수 있다. 굳이 짚 같은 거 안 넣어도 된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지 고초균은 스스로 알아서 충분히 증식한다.

 

3) 청국장 띄우는 과정에서 온돌방에 불을 때거나 전기장판을 이용해서 인위적인 가온은 전혀 하지 않는다. 하루에 두어 번 열어 보면서 콩의 상태만 점검할 뿐이다. 48시간 정도 지나면서부터는 암모니아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마지막으로 상태를 점검한 다음부터는 발효가 끝날 때까지 열어보지 않는다.

 

4) 84시간 정도 지나면 청국장 띄우기를 끝내고 소분하여 포장한다. 이때 찧으면서 약간의 소금이나 고춧가루를 넣어주기도 한다. 소분한 청국장은 냉동실에 넣어 얼려서 보관한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기만 하면 된다. 보시다시피 처음 메주콩을 삶는 게 힘들지 그 나머지는 그냥 고초균, 공기, 온도 같은 자연조건이 알아서 발효시킨다. 중간중간 한 번씩 들여다 보는 수고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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