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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메주 만들기(2017)

by 내오랜꿈 2017.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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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한해 농사는 메주를 쑤고 나서야 마무리 된다고 했다. 겨울이 오기 전 메주를 빚어 볏짚이나 새끼줄을 엮어 처마 밑에 매달아 말리는 풍경이 일상이던 시절은 어느덧 추억 속의 한 장면이 되었지만 겨울이면 메주콩 삶는 냄새가 그리워지는 건 여전하다. 하루 세 끼 밥 말고는 달리 먹을 게 없던 시절, 집밖으로만 돌던 아이들도 메주콩 삶는 날은 집을 떠나지 않았다. 삶은 메주콩 한 줌이라도 집어먹기 위해. 배고팠던 시절, 어머니께 야단 들어가며 집어먹던 그 메주콩 맛을 기억 하시는지...


된장은 어느 정도 남아 있는데 간장이 간당간당하기에 올해는 어떻게든 장을 담궈야 한다. 간장만 좀 넉넉하게 뺄 생각인지라 메주 몇 덩어리 사서 담글까도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귀찮은 메주 만들기를 시작하게 된다. 메주 쑤는 방법은 만드는 사람들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딱히 정해진 모범답안은 없다고 봐야 한다. 만드는 사람의 경험이 녹아든 저마다의 레시피가 모두 다 정답이다. 나의 경우는 메주콩을 씻어 솥에 넣은 다음 적당량의 물을 부어 두어 시간 불린 뒤 6시간 정도 삶는다. 처음 1시간은 끓기까지의 시간이니까 5시간 정도를 불조절하며 삶는다고 보면 된다.


불조절이 중요한 이유는 끓어넘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물을 더 부어야 하는 것은 물론 콩의 영양소가 손실되기에. 그래서 강한 화력이 아니라 뭉근한 불심이 필요하다. 이때 이전에 담근 된장의 윗부분, 소금을 쳐서 짜고 햇빛을 받아 검게 변색된 된장을 조금 넣어주면 쉽게 넘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맹신하지는 마시라. 무조건 불조절을 잘 해야 한다. 말이 쉽지 아궁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너댓 시간을 버텨야 한다. 남들은 어찌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변색된 된장을 조금 넣고 나서 끓어넘치지 않게 불조절 하며 메주콩을 삶는다. 몇 시간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다.



▲ 메주콩 씻어 두어 시간 불린 뒤 5~6시간 정도 삶고 1시간 뜸 들인다.


메주콩이 갈색빛이 도는 노란 빛깔을 띄면 불을 끄고 아궁이에 있는 숯불로 1시간 정도 뜸을 들인다. 이 뜸들이기도 당연히 솥의 상태를 살펴가면서 해야 한다. 밑불이 너무 세다면 바로 꺼내는 게 옳다. 밑바닥 콩을 다 태우고 싶지 않다면. 메주콩이 이 정도 삶아지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삶은 콩을 집어먹게 된다.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잠재해 있는 어릴 적 그 추억의 맛을 꺼집어내기라도 하는 듯.


삶은 메주콩을 스텐 대야에 넣고 비닐주머니 뒤집어쓴 발로 이리저리 밟아서 으깬다. 그 옛날엔 절구에 넣어 으깨었는데, 절구가 없으니 이런 편법을 쓰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든 메주 덩어리 10개. 콩 한 말을 삶아 청국장용으로 한 바구니 들어낸 양이니 제법 두툼한 크기로 만들어야 나오는 숫자다. 아마도 며칠 메주 표면을 말리면 개당 무게가 2~2.5Kg 정도 나가지 않을까 싶다. 짚 위에서 말리며 고초균(Bacillus subtilis)이 메주에 듬뿍 스며들게 만든 뒤 새끼줄에 매달아 한두 달 말리면 메주 만들기는 완성이다. 올해는 유기농 짚을 못 구한 까닭에 집 뒷산의 억새를 꺾어 왔다. 메주나 청국장 띄울 때 짚을 구하기 힘들다는 분들이 많은데 꼭 짚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마른 억새도 충분히 가능하다. 아니 더 깨끗하고 좋을 수도 있다. 메주나 청국장 발효에 관여하는 고초균(枯草菌)은 말 그대로 마른 풀에 많이 서식하는 세균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고초균은 공기 중에도 땅속에도 지하수에도 존재한다. 반드시 짚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란다.



▲ 집 뒷산에서 베어 온 마른 억새. 메주나 청국장 띄우는 데 꼭 짚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고초균은 비교적 고온에서도 잘 버티는(최적온도는 38~43℃지만 70℃ 정도까지도 죽지 않고 버틴다. 다만 30℃ 이하에서는 잘 번식하지 못 한다) 세균이지만 커다란 약점은 염분이다. 그래서 메주를 띄우거나 청국장 띄울 때 소금은 절대 금물이다. 소금에 무슨 발효를 촉진하는 미생물이 들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황당한 사람들도 있는데(솔직히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우리가 장이나 젓갈에 소금을 넣는 이유는 발효를 억제시키기 위해서다. 장 발효나 젓갈 발효는 대부분 유기산 발효이기 때문에 염분에 약하다. 장에 소금을 넣지 않는다면 지나친 유산균 발효로 금방 시어져 장을 먹을 수 없게 된다. 젓갈에 소금을 넣지 않는다면 어육의 단백질은 금방 부패해 버린다. 소금예찬론자들은 소금이 마치 발효과정에서 엄청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떠벌리고 있는데, 장이나 젓갈 담그는데 소금이 중요한 이유는 안타깝지만 그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부패 방지와 발효 억제를 위해서다. 소금을 찬미하는 건 뭐 자기들 자유니 내 뭐라 할 바 아닌데 이왕 하는 거 뭘 좀 제대로 알고들 하시기 바란다. 그래야 혹시라도 어리숙한 사람들이 그대들의 추종자가 될 확률이라도 있지 않겠는가.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시라. 우리가 음식을 오래 저장하고 싶을 때 염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당연히 미생물이 번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 아니던가. 소금에는 대부분의 미생물이 생존할 수 없기에 소금을 넣는 것이다. 그런데 소금예찬론자들은 이런 소금에 우리 몸에 좋은 미생물이 많이 들어 있단다. 장이나 젓갈에 소금을 넣는 이유도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이 소금에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란다. 참 나.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신이 절대자라면 소금예찬론자들에게 절대자는 무지와 아집이다. 어떻게 이런 소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난 쪽팔려서라도 못 하겠다. 이젠 메주 띄우고 청국장 띄우는 데도 소금 집어 넣어라 할까봐 겁난다.



▲ 메주 띄우기 시작한 지 3~4일 지나면 표면에 하얀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다. 메주 상태를 보아가며 보름 정도 띄운 뒤 짚에 엮어 말리면 메주 띄우기 완료.


아침부터 시작한 메주 만들기는 언제나 밤이 깊어서야 마치게 된다. 달리 빠르게 할 방법이 없는, 온전히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는 작업이 메주 만들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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