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들어 하루를 빼고는 매일 아침기온이 영하의 온도다.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살지만 처음 겪는 일이다. 거의 매일을 북위 55도에 위치한 모스크바보다 낮은 온도로 아침을 맞은 셈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다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에 빚어진 일이란다. 덕분에 좀 더 속이 차라고 수확을 미뤄둔 김장배추는 얼었다 녹았다만 반복하고 있다. 물 안 주는 주인에, 가을 가뭄에, 12월 한파까지 우리 집 텃밭 배추는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어느덧 속이 덜 찬 배추로 김장하는 게 당연한 일이 돼 버렸다.
▲ 김장배추. 늘 속이 차다 만 듯한 느낌이다
십여 포기 남겨 두고 수확하니 대략 70여 포기인데 속이 제대로 찬 배추로 치면 한 20여 포기밖에 안 될 터. 그래도 다듬고 절이는 데 품이 들어가는 건 70포기나 매한가지인 듯하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 김장용 봉투에 절이는 방법을 택한 뒤로는 김장의 절반이라는 절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두어 번 굴려주면 되기 때문이다. 배추 절이는 동안 마늘, 양파, 생강, 쪽파, 갓 다듬고, 육수 끓이고, 찹쌀풀 쑤면 김장 양념소 만들 준비는 끝난다.
▲ 육수 만들기 : 멸치, 다시마, 표고버섯, 북어대가리, 파 뿌리 말린 것, 양파, 고추, 대파 등
▲ 태양초 고춧가루
우리 집 김장 양념소 비율은 고춧가루 3.5kg, 멸치젓갈 3.6L, 생새우 1.5~2kg, 마늘 1.5kg, 생강 300g, 양파 800g, 갓 400g, 쪽파 400g, 마른 청각 100g이 전부다. 고춧가루와 동량의 멸치젓갈을 넣는 것이 포인트. 여기에 멸치, 표고버섯, 황태 대가리, 다시마, 양파, 고추, 대파, 파 뿌리 말린 것 등으로 끓인 육수와 찹쌀풀로 양념소의 농도를 조절한다. 대충 7L 정도의 육수와 2L 정도의 찹쌀풀이 들어간다. 설탕이나 매실청 등 단 것은 일체 넣지 않는다. 멸치젓갈과 육수, 찹쌀풀만으로도 단맛과 감칠맛은 차고 넘친다.
이틀 동안 준비한 재료들을 가지고 양념소 바르고 김치통에 넣는 데 드는 시간은 고작 두세 시간 정도. 1년 먹거리를 마무리하는 것 치고는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수육 한 점에 막걸리 한 잔으로 고생했다며 옆지기와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진다.
해마다 김장 끝나면 한해가 끝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올해는 할 일이 남아서인지 조금 덜한 느낌이다. 아직 메주를 쑤지 않아서일까? 2017년의 물리적 시간은 이제 겨우 열흘 정도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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