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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감은 최고의 숙취 해소 식품이다

by 내오랜꿈 2017.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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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잘 되도 걱정 못 되도 걱정이란 말이 있다. 잘 되면 그만큼 가격이 폭락하기 때문. 농산물에도 수요, 공급의 법칙이 작용하는 이상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올 가을 남부지방은 비도 적었고 태풍 피해도 없었다. 비가 적게 오면 과실류 농사는 대부분 풍년이고 맛도 좋다. 감농사도 예외는 아니라 예년보다 풍년인데 문제는 역시 가격이다. 주변 재래시장이나 도로를 다니다 보면 대봉감 한 박스 10,000원이라는 팻말이 수없이 널려 있다. 큰 것은 50개 내외 한 박스 15,000원, 작은 것은 80개 내외 한 박스 10,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대봉감 한 박스에 4~5만 원은 기본이었다. 풍년이 들어도 3만원 이하로는 잘 내려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최상품이라도 2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 이쯤되면 단순히 풍년, 흉년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수급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10여 년 전부터 대봉감이 인기를 끌면서 남쪽지방으로 귀농을 선택한 사람들 중에는 감나무를 심은 경우가 꽤 많았다. '부유' 같은, 크고 당도를 높인 개량종 단감나무나 대봉감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때 심었던 감나무들이 자라 지금 한창 성숙기에 접어든 것이다. 그러니 대봉감의 가격 폭락은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대봉감만의 문제가 아니다.


블루베리나 블랙베리 같은 베리 종류들의 소비자 가격은 초창기보다 1/3 이하로 떨어졌고, 아로니아는 미처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공급과잉 사태로 울상인 농가들이 한둘이 아니다. 불루베리 시세가 좋다고 하니 경작하던 작물을 파헤치고 너도나도 베리 종류를 심은 탓이고, 베리보다 더 수익성이 좋다고 하니 앞뒤 재지 않고 너도나도 아로니아를 심은 탓이다. 돈 들여 심은 사람들은 죽어나고 묘목 팔아먹은 종묘상들만 배불린 꼴이다. 어쨌거나 본인들이 선택한 결과니 남 탓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여느 집처럼 우리 집 역시 이맘때 쯤이면 대봉감을 익혀 홍시로 만들어 먹곤 한다. 많지 않은 양이니 실내에 두기만 해도 순차적으로 서서히 홍시가 된다. 먹는 입장에서는 한꺼번에 홍시가 되는 것보다 오히려 시차를 두고 익는 게 더 좋다. 상업적 측면에서는 감을 홍시로 만들 때 에틸렌 처리를 한다. 원하는 시점에 맞추어 출하를 하기 위해서다. 농산물 유통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방법으로 키위 등 후숙이 필요한 과일에 사과를 같이 넣어 주면 좋다는 이유도 사과에서 에틸렌 가스가 분출되기 때문이다. 에틸렌의 아세트알데하이드(acetaldehyde) 반응을 통하여 감 속에 들어 있는 탄닌을 불용성으로 바꾸어 떫은맛을 제거하기 위한 것. 정확히 말하면 탄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탄닌의 분자구조를 크게 만들어 혀가 떫은맛을 못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혀의 미각수용체가 맛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내용물이 일정한 분자량 범위여야 하는데 분자량이 너무 작거나 너무 크면 맛을 느낄 수 없다. 암모니아 가스는 냄새로는 고약함을 느끼지만 맛을 느낄 수는 없고(기체는 맛을 느끼기에는 너무 분자량이 작다), 소뼈를 고아 만든 설렁탕이나 곰탕은 맛있다고 느끼지만 소뼈 그 자체는 너무 고분자 화합물이라 소뼈를 핥는다고 별다른 맛을 느낄 수는 없다.


어려운 용어 같지만 에틸렌의 아세트알데하이드 반응 하면 생각나는 게 없을까? 대부분 숙취가 생각날 것이다. 술을 많이 먹으면 다음날 숙취로 인해 고생한다. 머리도 아프고 활동력이나 두뇌회전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이러한 숙취 해소를 위해 숙취해소용으로 나온 음료를 마시거나 콩나물국이나 북엇국 등을 먹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계란 같은 고단백 음식이나 토마토, 아스파라거스 같은 채소를 먹는 경우도 있다. 숙취가 일어나는 원인을 생각하면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방법이다. 숙취는 에틸알코올을 섭취할 경우 우리 몸이 알코올을 분해할 때 생기는 아세트알데하이드 때문이라는 게 통설이다. 숙취를 없애려면 이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없애야 하는데 콩나물, 북어, 계란에는 모두 아스파라긴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아스파라거스에서 처음 추출된 것이라 아스파라긴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아스파라거스에도 당연히 많이 함유되어 있다. 아스파라긴산(정확한 명칭은 아스파르트산)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콩이나 육류 같은 고단백 음식에 많이 들어 있는데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분해하는 효소 생성에 작용한다고 한다. 그러니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육류나 콩류 같은 고단백 식품은 모두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 숙취 해소에 콩나물국이 더 좋으니 북엇국이 더 좋으니 하는 논쟁은 답이 없는,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그런데 탄닌은 알코올을 분해할 때 생기는 아세트알데하이드와 직접 반응한다. 콩나물 등에 풍부한 아스파라긴산이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분해하는 효소 생성 기제에 작용하는 것이라면 감에 풍부한 탄닌은 아세트알데하이드와 직접 결합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감이 아스파라긴산 함유 제품들보다 숙취 해소에 더 좋다는 말과 동의어다.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효소를 만드는 데 작용하는 것과 아세트알데하이드와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제거하는 데 더 많은 도움이 될까? 당연히 후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론적으로 따지면 콩나물국이나 북엇국보다는 감이 숙취 해소에 더 도움된다고 말할 수 있다.



뭐,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개인의 취향까지 간섭할 생각은 없다. 숙취의 정도나 증상도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고, 그 해소 방법도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니까. 우리의 숙취 해소 문화는 아직 두뇌 회복이나 머리 아픈 것 해소하는 것보다는 속을 푸는 데 더 적합한 국물을 선호하기도 하고. 나 역시 머리 아픈 것 해소하는 것보다는 속풀이 하는 게 더 급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 감 가격이 폭락해서 문제가 되고 있으니 감 소비를 촉진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감이 숙취 해소에 아주 좋다는 걸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홍보하는 건 어떨까 싶다. 몇 년 전까지 한두 개 제품뿐이던 숙취 음료 시장이 날로 커지면서 최근 신제품 출시가 이어지는 걸 보면 충분히 시도해봄직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의외로 어디어디에 좋다는 거에 약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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